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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에 자수성가하여 백만장자가 된 왕치청(王麒诚)의 인생 스토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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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에 자수성가하여 백만장자가 된 왕치청(王麒诚)의 인생 스토리

hanyuku 2022. 3. 22.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21세 때 지갑이 얇은데요, 중국 저장성(浙江) 청년 왕치청(王麒诚)은 21세 때 백만 위안의 자금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많이 알려져있진 않지만, 그가 남긴 말들은 무척 유명해서 많은 중국인들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중국 최고 부자가 된다는 것은, 분명히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일이다. 항저우(杭州)에는 최고 갑부 쫑칭허우(宗庆后)도 있고, 시후(西湖)의 최고 갑부가 되기도 어려운데, 마윈(马云)이 그곳 출신 최고 부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샤청구(下城区)의 최고 갑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해보련다."

 

 

다른 사람들의 작은 목표는 갑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별로 차이가 없어보이는데요, 2020년 왕치청 부부의 재산은 이미 180억 위안에 달한다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일까요?

 

 

 

 

 

 

 

21세의 일확천금

 

 

1980년에 왕치청은 저장성 항저우(浙江杭州)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3대째 장사를 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 평범한 보통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시 가족들이 집 한 채를 장만하려고 하였는데, 돈이 모자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입을 열자, 이런 행동은 친구들에게 빈정거림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때 왕치청은 비록 나이는 많지 않았지만, 자극을 받았고 반드시 많은 돈을 벌어서 가족들이 잘 살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왕치청은 가족들에게 크게 신경쓰게 하지 않았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1999년,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저장대학(浙江大学)에 입학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들 대학에서의 여유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보상처럼 여기며 제약없이 자유롭게 먹고 즐길 수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왕치청은 이것 역시도 작은 사회라고 생각하였고, 진짜로 사회에 나가기 전에 미리 단련시켜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그는 학생회 실천부 부장(实践部部长)을 맡았는데, 주요 업무는 학교에 후원금을 받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저장 대학은 간판도 좋고, 적지 않은 기업들이 투자를 원하지만, 소통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일을 맡았던 왕치청은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거물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왕치청의 씀씀이도 커지고 있었죠.

 

 

다른 사람과 업무 이야기를 하러 가면, 어찌됐든 자신이 한턱 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그러다보니 한 달에 몇 백 위안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때의 왕치청은 자신이 100만 위안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2001년, 그는 학교 밖에서 친구를 한 명 사귀었는데, 친구의 회사에서는 광섬유 트랜시버 설비를 전문적으로 연구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당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라 대도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요, 왕치청은 이 사업 기회를 눈치채고 싼값에 사고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차익을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업무를 시작했을 때, 적지 않은 회사로부터 거절당했습니다. 종이 한 장에 쓰여진 자질들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남들의 눈에 너무 가짜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작은 지역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더 돋보이도록 외적인 이미지를 가꾸어 체면치레를 세웠고, 그렇게 여러 차례 거친 끝에 리수이텔레콤(丽水电信)과의 소통을 통해 수주하였고, 그는 8개월 만에 100만 위안을 벌어들였습니다. 2000년대 초, 왕치청은 이미 포드를 몰고 저장대 캠퍼스를 누비며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금융 수재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장사판에서 뒹굴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그는 같은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이었던 우옌(吴艳)을 좋아했는데요, 그는 돈이 있든 없든 적극적으로 구애했고, 또 다시 장사에서 했었던 것처럼 방법을 연출해서 결국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는데 성공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우옌은 공기업에 입사했고, 왕치청은 가족들의 주선을 뿌리치고 스스로 창업의 길을 택했습니다.

 

 

스스로 창업하고 회사가 상장하다

 

 

그동안 광섬유 설비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는 이번엔 창업의 목표를 스마트 산업에 두었습니다. 22세의 나이로 이미 차이푸이(蔡福益), 화룬 부동산(华润地产)과 연합하여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이때 그는 가볍게 100만 위안을 선뜻 낼 수 있었습니다. 업계에 이 회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는 자신의 팀을 이끌고 사업을 찾아다니며 틈틈이 입찰에 나섰고, 많게는 사흘에 한 번꼴로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경쟁력과 영향력은 다른 공기업에 비할 바가 못되었습니다. 그때 왕치청은 좋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체면을 포장하는 것으로, 돈이 많아 보이게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내용이 풍부한 입찰서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성의 있는 민간기업을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이 역시 그에게 첫 번째 업무인 푸양화팅윈딩(富阳华庭云顶)의 스마트 건물 건축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었고, 화상대면강의, 보안, 기계실 등 수많은 공사를 했는데, 이 입찰서들은 모두 왕치청 혼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갑 회사들에게 그들 회사에 왕치청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왕치청은 미소를 지으며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는데요, 사실 그의 팀에 왕치청 본인까지 합해서 세 명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4000여만 짜리의 입찰에 당첨되었고, 이듬해에는 2억 짜리 입찰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 이러한 입찰 덕분에 그들 기업은 본궤도에 오를 수 있었고, 이후 스마트 홈이 보편화되면서 회사의 성장도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인터뷰에서, 왕치청의 아내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는 매우 지독한 사람이라고 하였는데요, 남에게도 독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는 더욱 독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일년 내내 밤샘 작업과 휴식을 반납하고, 적어도 세 가지 약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약물의 영향 때문인지 젊은 나이의 왕치청은 이미 후덕하게 살이 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독기는 헛되지 않았고, 2009년이 되자 회사는 직원 150명에 1억 위안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스마트 건설 선두 업체로 부상하였습니다. 회사가 점점 더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왕치청은 상장을 염두에 두었는데요. 2021년에 심천 증시에 상장하여 중국에서 제 1위 80년대생 출신 상장 그룹 실질 지배인이 되었고, 이때 회사의 시가 총액은 16억 위안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창업가들이 반평생에 걸쳐 이룩하는 일을 그는 10년 만에 완주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그는 만족하지 않았고, 32세가 되었을 땐 건방지게도 3년 안에 회사의 시가 총액이 100억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적지 않은 차이인데요, 더군다가 현재 시가 총액의 몇 배나 뛰어오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치청이 일자리를 잃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2015년이 되자 회사의 시가 총액은 정말로 200억 위안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왕치청&우옌 부부는 2016년에 245억 위안으로 <후룬 80년대생 자수성가 부호 순위>에서 1위에 올라, 당시 가장 부유한 80년대생 자수성가 부호가 되었습니다.

 

 

스마트 사업을 오래 하다보니, 그는 회사 내 모든 직책을 그만두고, 이번엔 영상 미디어 분야로 진출하였고, 1억 위안을 투자하여 미디어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데이터 창출에 능했던 그는 많은 연예인들과 선수들과 계약하였습니다. 이 덕분에 2016년 왕치청 부부의 재산은 245억에 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왕치청이 큰 야심을 품지 않았더라면, 그는 칭송받는 사업가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각종 투자 행위로 인해 회사는 침체에 빠졌고, 게다가 불겁 거래 때문에 100여만 위안의 벌금을 물게 되는 등, 승승장구하던 그는 최근 2년 넘게 SNS에 글 하나도 게시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업을 이룩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처럼, 정책적 배당금 하에 파죽지세로 성장하다가, 결국 자신의 빠른 확장으로 슬럼프에 빠져버린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직 젊은 나이인 만큼 그 이해관계를 정확히 헤아려 기세를 가다듬는다면, 예전의 영광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고기사>

80后夫妻白手起家,创业10年即上市,最高财富245亿,为啥这么牛 (baidu.com)

 

80后夫妻白手起家,创业10年即上市,最高财富245亿,为啥这么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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