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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광서제의 호위무사였던 마지막 전통 무술의 고수 궁보전(宫宝田)의 이야기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화무술(中华武术)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데에는 예부터 지금까지 대대로 내려온 무술의 대가들의 분투와 노력이 있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무술이 마치 실전(失传)이라도 된 듯, 무술을 할 줄 아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무공을 할 줄 아는 이들이 역사적으로 전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추녀와 담벼락을 나는 듯이 넘나들고 일당십(一当十)을 해내는 무술의 대가들은 정말 누군가 해낼 수 있는 것일까요?
01. 대청(大清) 최후의 고수의 무예 연마
역사 속에서 중화무술은 확실히 존재했었고, 이전에도 많은 무학대사들이 개관(开馆)하여 분파를 형성하고 무예를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 때의 무예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신체 단련만을 위한 무예가 아닌, 정말로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가르쳤었죠. 고대 황궁에서는 황상과 중요 인물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궁중의 고수들이 그들을 밀착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요, 이러한 무리들은 전국을 통틀어 가장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청의 마지막 궁중 고수는 광서제(光绪帝)와 서태후의 안전을 지키는 시위총관 궁보전(侍卫总管宫宝田)이었으며, 그는 궁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로, 황제가 존경하는 어전4품인 대도시위(御前四品带刀侍卫)로서, 내우외환의 시절에도 여러 차례 황제를 위험 속에서 구해냈지만, 자신은 털끝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궁중의 고수는 왕조 시대마다 손꼽을 정도로 무예가 뛰어났는데요, 이들 중에서도 궁보전(宫宝田)은 무예가 뛰어나고 강하였습니다. 하지만 궁보전이 태어날 때부터 뛰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궁보전은 젊었을 때 궁궐 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요, 날마다 고된 일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광서제의 무술 스승인 이복(伊福)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복은 그를 보더니 골격이 아주 훌륭하다면서 무술을 배울 소질이 보인다며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무예를 가르쳤습니다.
광서제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선생이 어찌 평범한 사람이겠습니까. 이복은 만청(晚清)시기의 가장 명성이 높은 무학자 중 하나로, 무술세가(武术世家) 출신이며, 다섯 살 때부터 매일 무술을 연마하였고, 탄퇴(弹腿), 나한권(罗汉拳) 등 열여덟 가지 무예에 능통하였습니다. 훗날 그는 또 다른 무학종사(武学宗师)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팔괘장(八卦掌)을 익히게 되었고, 이때부터 천하무적수(天下无敌手)의 고수가 되었으며, 서태후에게 선택되어 아직 어린 광서제의 무술 스승이 되었습니다.
스승 이복에 비해 궁보전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히지 못하여 무술에 대한 기초는 별로 없었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는 이복의 정성어린 가르침으로 무공이 일취천리 발전하게 되었고, 10년 정도 지나자 자신의 스승인 이복을 무찌를 수 있게 되었으며, 중국 양자강 남북을 통틀어 그의 밑에서 몇 수 넘어가는 사람은 드물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복의 추천을 받아, 궁보전은 황제의 곁에서 밀착 호위를 맡는 호위가 되었고, 황제의 안전을 책임지고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황제를 보호하였습니다. 보호할 대상자가 없어지자 궁보전은 고향으로 돌아가 보통 사람처럼 일상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밀착 호위를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02. 몸을 크게 벌려 장쭤린(张作霖)의 총알을 맨몸으로 피하다
궁보전이 다시 산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중에는 대군벌(大军阀) 장쭤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장쭤린은 궁보전에게 산 밖으로 나가 자신의 경호원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였지만, 몸집이 그리 크지 않은 궁보전을 보자, 장쭤린은 과연 궁보전이 그렇게 소문으로만 듣던 그 인물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궁보전은 장쭤린의 의심스러운 마음을 한 눈에 간파하고 창으로 자신과 겨루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궁보전이 자발적으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보니 장쭤린은 그의 용기가 가상하다 여겼고, 두 사람은 약 30보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서서 장쭤린의 총이 더 빠른지 궁보전의 주먹이 더 빠른지 겨루기로 하였습니다. 장쭤린이 총 두 발을 쏘았는데, 모두 궁보전의 몸 옆으로 빗나갔고, 장쭤린이 세 번째 총을 쏘려 했을때, 궁보전은 이미 장쭤린의 몸 앞으로 달려와 그의 권총을 단번에 빼앗았습니다.
궁보전은 농담으로 만약 지금 내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1초 안에 손을 대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였고, 자신의 무예가 과연 당신의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거리가 조금 더 멀었다면, 자신은 당신의 총알을 피할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며, 아무리 무예가 강하다고 해도 현대의 무기와 맞서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03. 난세에서 양대(两代) 군벌을 보호하다가, 결국 고향으로 종적을 감추다
장쭤린은 이렇게 빠른 손놀림과 다리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군대의 훈련관으로 궁보전을 초청하였고, 그가 자신의 병사들을 훈련시켜 작전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장쭤린이 내건 조건은 무척 후했고, 궁보전은 이를 수락하여 장쭤린의 훈련관 겸 경호원이 되었습니다.
무예가 높고 강한 것은 냉병기(冷兵器) 시대에는 유용했을지 몰라도, 총화와 포탄을 사용하는 근현대 사회에서는 장쭤린의 권총은 피할 수 있었지만, 기관총으로 바꾼다면 궁보전도 맥을 못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궁보전은 싸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장쭤린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끌어내주었습니다.
훗날 장쭤린이 일본인의 폭탄을 맞아 죽자, 궁보전은 이일이 자신의 불찰이라고 자책하였습니다. 이후 궁보전은 다른 군벌인 장쉐량(张学良)의 초청을 받아 군에 들어갔는데, 몇 년 후에 스스로 나이가 들어 손발이 예전처럼 민첩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에 내려간 궁보전은 사람들에게 잊혀졌고, 궁중 고수들도 대부분 막을 내리게 디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궁보전이 고향에서 무술을 가르쳤다고 하지만, 몸을 단련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것일 뿐, 정식으로 제자를 받아본 적도 없었기에 자신의 무예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04. 맺음말
근대 이후, 중국이 서양 세계와 접목되면서, 태권도, 가라테 등 다른 나라의 무술이 중국에 들어오며 중국의 전통무술은 잊혀져갔고, 스스로 전통 무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어졌습니다. 그러나 대청 마지막 고수였던 궁보전의 몸놀림을 보면 전통 무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기사>
清朝最后一位大内高手,武艺究竟有多高强?说出来你别不信 (baidu.com)
清朝最后一位大内高手,武艺究竟有多高强?说出来你别不信
中华武术能够享誉世界,离不开从古至今一代又一代武术大师的奋斗与努力,但进入现代社会后,中华武术似乎像是失传了般,会武术的人越来越少了,以至于有人怀疑会武功的那些人在历史上
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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