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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주워 국가에 헌납한 웨이전팡(魏振芳)의 이야기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14~15세기부터 인도의 다이아몬드가 유럽으로 들어간 후, 이후 수백년 동안 다이아몬드는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수많은 왕실과 귀족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반면, 그 기저에는 다이아몬드를 찾아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 중국 북방지역에 살던 한 소녀가 16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주워다가 국가에 헌납했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45년이 흐른 오늘날, 이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헌납했던 그 소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가요? 그녀는 그 당시에 자신이 했던 결정을 후회하고 있을까요?
사실 다이아몬드의 생산지라하면, 대부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올리지만, 중국 역시 세계에서 다이아몬드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나라들 중 하나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다이아몬드 광물자원은 주로 세 군데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하나는 랴오닝성 와팡덴시(辽宁瓦房店市)이고, 이곳의 다이아몬드 주얼리급 함유량은 70% 이상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곳은 후난성 위안수이리우역(湖南沅水流域)인데요, 이곳은 보석급의 다이아몬드 함유량이 무려 80%에 달할정도로 높다고 합니다.
또 다른 곳은 바로 산둥성 멍인현(山东蒙阴县)부터 린슈현(临沭县) 일대인데요, 오늘 소개할 기사에서 등장하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다이아몬드 특징은 바로 크기가 크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생산한 다이아몬드 중 50캐럿 이상인 다이아몬드는 거의 이 일대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합니다.
오늘 살펴볼 기사의 주인공 웨이전팡(魏振芳)이 국가에 헌납한 다이아몬드는 바로 린슈현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 다이아몬드는 무려 160캐럿으로,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중 두 번째로 큰 것이라고 합니다.
1977년, 21세의 웨이전팡은 산둥성 린슈현 창린촌(山东省临沭县常林村)의 평범한 아가씨였습니다. 집안에서 4남 4녀 중 막내딸로 어릴 때부터 총애를 받고 자랐죠.
그렇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행동하기는 커녕, 정직하고 선량하여 인민공사(公社)안에서도 성실하기로 소문이 난 아가씨였습니다.
12월 21일, 웨이전팡과 인민공사 여자 동지가 아침 일찍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햇빛이 밝고 따사로워서 비교적 온화한 날시였는데, 오후 서너시가 되었을 때 매서운 찬바람이 들판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차가운 공기 때문에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덜덜 떨면서 옷을 여미고 일해야 했습니다.
그날은 바로 동지 전날이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돼지고기와 대파를 준비해놓고, 일을 끝낸 후에는 집에 가서 고기를 다지고 만두 소를 조리한 후, 다음날 푸짐하게 먹을 명절 음식을 생각하며 들떠있었습니다.
오후 5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지만, 웨이전팡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의 고통과 노고를 덜어드리고자, 매번 자기 앞에 할당된 일을 모두 끝마쳐야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일을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옆쪽의 작은 땅을 갈아엎는 것을 잊어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호미를 들고 다시 걸어갔습니다. 이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주위 사람들도 거의 다 가버린 후였습니다.
그녀가 땅을 반쯤 갈아엎었을 때, 갑자기 호미가 딱딱한 돌멩이에 부딪혀 손이 저려왔습니다. 그녀가 급히 웅크리고 앉아서 살펴보니, 호미의 날카로운 부분에 작은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녀는 더이상 힘을 쓰지 않고, 그 '돌'을 둘러싸고 호미로 캐냈는데요, 이윽고 주위의 흙이 깨끗하게 치워지고 돌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반짝이는 물건이었습니다.
그 물건은 손바닥만한 크기였고, 표면은 흙투성이였지만, 깨끗이 닦아내니 유리처럼 투명하고 예쁜 빛이 나서 웨이전팡은 그것을 손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비록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동네 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린슈현에 광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파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그 '돌'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호미를 놓고 부모님을 찾아가니, 웨이전팡의 부모님은 안채에서 만두를 빚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두건 속에서 꺼낸 '돌'을 보고 어리둥절해했습니다.
린슈현에 보석이 있다는 것은 현지에서는 비밀도 아니었지만, 흔치않은 일임에는 분명하였습니다. 웨이전팡의 아버지도 젊었을 때 우연히 한번 본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는 딸이 들고 있던 돌멩이를 깨끗이 씻고 한참을 들여다보고나서 비로소 이것이 값진 보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가져온 것은 과연 복일까요, 화일까요? 웨이전팡의 아버지의 마음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값비싼 보물을 하나 주워왔는데도 왜 웨이전팡의 아버지는 마냥 기뻐하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항일전쟁 때부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38년, 창린촌에서 멀지 않은 모퇀촌(莫疃村)에선 끔찍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마을의 뤄덴방(罗佃邦) 노인 일가족 7명이 모두 살해되는 처참한 사건이었죠. 이 참사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인 "금계 다이아몬드(金鸡钻石)"와도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1년 전 가을, 뤄덴방 노인은 금계령(金鸡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산골짜기에서 빛이 계속 반사가 되어서 짜증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풀숲에 뛰어들어 한참을 뒤진 끝에 빛의 근원지를 찾았는데, 알고보니 반짝이는 돌멩이였습니다. 당시 노인들은 그것이 다이아몬드라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마을에 가지고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마을에는 당시 왕샨신(王善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줄곧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가죽 제품들을 팔던 사람으로 견문이 넓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뤄덴방 노인의 집에 보석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속여서 보석을 싸게 손에 넣은 뒤, 상하이의 외국인에게 되팔 수 있다면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될 것이니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행동에 옮겼는데요, 그는 곧 고향으로 돌아가 뤄덴방 노인을 찾아가 40묘(亩)의 토지와 두 마리의 소, 차 한 대를 내주는 댓가로 뤄덴방 노인이 가지고 있는 '돌'을 사겠다고 흥정하였습니다.
뤄덴방 노인은 세상 물정을 잘 알지는 못하였지만, 마을의 이름난 '똑똑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물건을 주며 자신의 돌을 사겠다는데, 그 돌은 분명히 매우 값어치가 있을 것 같아서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가보로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샨신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인이 쳐들어 오자, 그는 마을의 촌장 주시핀(朱喜品)과 함께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들은 뤄덴방을 납치하여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라고 협박했고, 심지어는 심하게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뤄덴방은 늙은 노인에 불과했고, 온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를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왕샨신 등은 악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문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밤의 어둠을 틈타 뤄씨 집안 가족을 몰살시켜버렸죠.
웨이전팡의 아버지는 당시 스무 살 남짓한 나이였는데, 호기심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직후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도 해봤었기 때문에 상당히 잘 알고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딸이 보석을 가져오자, 그는 마음 속에서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하여 잠시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웨이전팡과 이미 가정을 이룬 몇몇 아들들을 불러 한데 모여 앉게 하였고, 이 보석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함께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몇몇 아들들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보고는 값비싼 것이라고 생각하여 모두들 집에 놔둬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웨이씨 집안은 평범한 농민 가정이었습니다. 자연 재해가 닥쳐왔을때는, 어머니가 임신한 채로 아이를 몇 명이나 데리고 외지에 나가서 일하여 벌어먹고 살았고, 천신만고 끝에 아이들을 몇 명이나 키워낸 집이었죠. 이를 보면 이 집안의 형편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이아몬드가 엄청난 부귀로 바뀔 수 있다면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매에게 뤄덴방 노인의 비참한 이야기를 이야기해주자, 아이들은 잠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한 가족이 심사숙고한 끝에, 뤄씨 집안처럼 비극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이 다이아몬드를 밖에 나가 팔면 안된다는데에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를 발견해서도 안 되므로, 당분간 여러 형제가 번갈아가며 관리하기로 하였죠.
그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죠. 이들 일가족의 이상한 행동이 오히려 눈에 띄어 현지 지도자들에게 보고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것은 인근 803 광산의 책임자인 통 서기(童书记)였습니다. 그는 이 다이아몬드가 한 농민의 수중에 남아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였고, 가장 좋은 귀향처는 국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주치민(朱奇民) 린이시 당서기(临沂市委书记)에게 전보를 보내어 이 사실을 알렸고, 주 서기는 이 다이아몬드의 크기를 알고는 매우 중시하여 즉시 주셩리(朱胜利) 등의 인물들을 창린촌에 파견하여 이 일을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12월 24일, 창린촌에 도착한 일행은 인민공사 당서기 솬더인(玄德印)과 리자팅(李加廷)을 찾아가 용건을 설명하고, 시 위원회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였습니다.
사실을 확인하고는, 전문 인력이 검사하여 보석의 품질을 결정하였습니다.
웨이전팡 가족의 안전을 지키고 불법행위자와 투기꾼들의 불법 범죄를 막기 위해, 그들은 웨이전팡 가족들을 설득하여 다이아몬드를 국가에 맡기도록 하였습니다.
리자팅이 사람들을 데리고 웨이씨 가족들의 집에 찾아갔을 때, 웨이씨 가족의 아버지는 다이아몬드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행을 안으로 초대했죠.
앉자마자, 리자팅이 입을 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웨이씨, 듣자하니 따님이 땅에서 돌을 하나 파냈다던데요?"
그러자 웨이씨 아버지도 부인하지 않고 웃으며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리자팅은 또한 "지도자가 이것이 다이아몬드라고 의심할 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니 빨리 꺼내서 검사하게 해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웨이전팡은 단순히 다이아몬드가 나라에 중요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집안 식구들이 이 일을 숨기기로 했기 때문에 한쪽에 앉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리자팅 등의 사람들은 웨이전팡의 표정을 보고 마음 속으로 확증을 굳힌 뒤, 전문가에게 다이아몬드를 건네달라며 웨이전팡쪽으로 설득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마을 읍내에도 잘 안 갔었던 웨이전팡은 이렇게 많은 지도자들이 이곳에 찾아와 둘러앉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아버지에게 구원의 눈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웨이전팡의 아버지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여러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며, 웨이전팡의 오빠 집에 가서 다이아몬드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웨이전팡은 오빠 세 명의 집을 돌아다녔지만, 그들은 그녀가 다이아몬드를 사기당해서 가져가는 걸까봐 못가져가게 막았습니다. 두 세 시간이 흐른 뒤, 웨이전팡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시 위원회 책임자들은 결국 몇 조로 나뉘어 웨이전팡의 세 오빠들의 집에서 따로 처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다이아몬드때문에 예전의 뤄씨 노인의 일처럼 온 가족이 살해당할 것을 우려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날 저녁, 웨이씨네 본가에 모인 관계자들은 웨이씨네 집에서 발견한 이 다이아몬드가 중국 내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중 두 번째로 큰 것이라 국보라고 할 수 있으며, 불법 행위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국가적으로 중대한 손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이아몬드가 웨이씨 집안 가족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니, 당과 국가에 맡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두 시간 넘게 여러 사람들이 설득한 끝에, 웨이씨네 장남은 품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냈습니다.
검사 요원이 기계를 꺼내어 감식한 뒤, "이 다이아몬드는 아주 희귀한 천연 특대 다이아몬드로, 무게는 158.768캐럿이며,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 잠시 조용하던 차에, 웨이씨 아버지가 "이런 다이아몬드를 우리 집에서 기부했어요!"라고 말하자, 그의 말은 마치 뜨거운 기름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모두의 환호성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맺음말
웨이진팡 일가는 수억 위안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아낌없이 헌납하여 당과 정부를 기쁘게 하였고, 국가 지도자는 직접 이 다이아몬드의 이름을 '창린 다이아몬드(常林钻石)'라고 지었습니다.
웨이전팡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중공 린이지 위원회와 현, 인민공사 당위(中共临沂地委和县、公社党委)에서는 경축대회를 열어 그녀에게 붉은 꽃을 내려주었고, 모든 간부와 사원들에게도 그녀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호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현지 정부에서 그녀를 위해 1000위안의 물질적 보상을 준비하였으며, 또 다른 지도자는 그녀에게 또 다른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의 가정을 위해 이득이 되는 것을 말하여 가정환경을 개선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웨이전팡은 우리 공동체에 트랙터 한 대를 사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녀의 마음씨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후 웨이전팡은 전국 각지에 초청되어 다이아몬드를 주워 국가에 헌납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며 헌신적인 애국 정신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정부는 헌납자에게 소득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웨이전팡을 도와 그녀를 '비호구(非户口)'로 농사를 돌려주었고, 현지 공장에 출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행적은 다시 공장에도 알려졌고, 사람들은 그녀를 여성들의 귀감이라고 찬양하였으며, 만장일치로 노조 여성위원장으로 그녀를 추대하였습니다.
1978년 8월, 전국 제4차 부녀대표대회(全国第四次妇女代表大会)가 베이징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대회당에는 등불이 번쩍였고, 웨이전팡은 특별 초청 대표로 참석하였는데, 온가족이 흠모하는 화 주석(华主席)은 물론, 덩잉차오, 차이창(邓颖超、蔡畅) 등 중국 여성 지도자들의 접견도 받았습니다.
1995년 9월 16일에는,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반변천(半边天)>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전문적으로 중국 여성들의 영웅적인 모델들을 취재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웨이전팡의 미담도 다시 한번 민간에 전해져 많은 이들의 감탄을 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웨이전팡의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방송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이 중병에 걸린 것이 밝혀졌죠.
처음에는 자리에 누워 약을 먹다가, 1999년 말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 웨이전팡은 겨우 40대 초반이었고, 남편의 병환을 위해 저축했던 돈을 모두 써버렸다고 합니다. 집안에 아이도 아직 어렸는데, 일순간 모든 무거운 짐이 그녀 혼자의 어깨에 지워지게 되었죠.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매일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며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만약 다이아몬드가 아직 당신에게 남아있다면, 당신의 삶은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졌을텐데, 기부하고나서 후회하진 않나요?"
그러자 웨이전팡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국가에 속한 것이고, 저는 단지 그것을 발견한 것뿐이에요. 그러니 그것이 제 소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녀는 이미 66세가 되어 손녀의 재롱을 받으며 은퇴 생활을 하고 있다는데요, 그녀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와 같은 행동으로 어떤 사람은 부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다이아몬드보다 영혼이 더욱 값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참고기사>
45年前,那个捡到158克拉特大钻石,捐给国家的女孩,如今怎样了
“钻石恒久远,一颗永流传”。 自十四五世纪印度的钻石进入欧洲之后,数百年来,钻石一直被人们视为权力与财富的象征,引得无数王室贵族为之疯狂。 底层的淘钻者们为求一夜暴富,辛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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