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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귀족의 전통을 이어온 야오잔(腰站)마을의 이야기

hanyuku 2022. 1. 26.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개혁개방이 되고 누구나 평등한 현대 중국 사회에서 황친귀족(皇亲贵族)의 후손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을 "오내애신각라(吾乃爱新觉罗)의 후손"이라고 칭한다면, 분명히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당신이 오내애신각라의 후손이면 나는 공산주의의 후계자다"라고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진보하였지만 여전히 이들 황친귀족의 후손들은 명맥이 끊기지 않고 어느 한 구석에 존재하며 예전 황실의 생존 방식을 계승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랴오닝성(辽宁省) 안에 있는 세상과 단절된 이 마을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하네요. 이 마을 대부분 사람들이 정통 황실의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는데요, 그들은 수백 년동안 왜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외부 사람들과 통혼(通婚)하지 않겠다고 고집한 것은 뿌리깊은 계급사상이 원인인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01. 황친귀족의 세외도원(世外桃源)

 

 

 

이 마을은 랴오닝성 푸슌시(辽宁省抚顺市)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의 이름은 야오잔촌(腰战村)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3백여년 전 강희(康熙) 황제때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당시 청나라는 한창 번화한 치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강희제는 영릉(永陵)을 지키기 위해 애신각라 아탑(爱新觉罗阿塔)을 보내 영릉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청나라의 영릉은 누르하치의 4대 황릉으로, 그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다른 형제들, 그리고 황위 경쟁 관계들을 살펴보니 이 아탑이라는 자가 위협할만한 것도 없고 아주 적임자였습니다.

 

 

 

 

 

아탑은 영릉을 지키면서도 궁궐 밖으로 나가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임명받은 직후, 자신의 아이 7명을 데리고 황릉을 지키기 위해 출발하였고, 랴오닝성의 한 곳을 지나면서 눈 앞의 광경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토양이 비옥하고 초목이 무성하며 새가 지저귀고, 꽃향기가 만발한 이곳은 아탑의 풍부한 상상력을 만족시켰죠.

 

 

기분이 좋았던 그는 유창한 한어(汉语)로 "차지해야겠다(要占要占啊。)"고 말하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탑은 이곳을 차지하여 번영하려고 하였고, 그래서 이 이름도 없었던 지역은 그가 내뱉은 말의 발음을 따와서 "야오잔(腰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릉을 지키는 일은 황가의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강희제는 아탑의 일손이 부족할까 염려되어 다시 사람들을 보내 6대파벌(六大派系)을 결집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봉건사회에서는 황릉을 지키는데 시위, 하인, 계집종 등을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한 팀에 100호(号)가 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6대 파벌이 호탕하게 이곳에 도착하자, 점차 작은 무리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번영하기에 적합하였으며, 이 황친귀족들은 생활의 고요함과 안락함을 누린 후 다시는 궁궐로 돌아오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오잔촌은 이들의 개간 덕분에 곧 큰 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의 실제 모습은 대체 어떠할까요?

 

 

 

 

02. 고풍스러움에 둘러싸인 황실대촌(皇室大村)

 

 

 

당신이 만약 이 마을에 입성하여 본다면, 왜 이들이 수도의 번화함을 버리고 은둔을 감행하였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마을은 조용하고, 상냥하며 깨끗하였습니다. 청나라 시기의 사합원(四合院)이 많이 남아있고, 따뜻한 만자항(万字炕)들, 많은 가정의 창문에는 붉은 종이로 만든 반장창화(盘肠窗花)가 여전히 붙어있어서 순식간에 청나라로 건너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도착한 이들을 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은 한문화(汉文化)에 적응하여 한문(汉文)을 유창하게 구상하는 인자해 보이는 얼굴의 마을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청나라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더욱 깊이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집 안에는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적지 않았는데요, 용을 조각한 정교한 병풍, 붉은 목재 의자,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노란색 마고자를 입고 있어서, 현대적인 사회 분위기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야오잔촌 황친귀족들의 광망(光茫)은 비록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점차 잠겨들고 있지만, 그 후손들은 조상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옛 집들은 비록 오랜 세월동안 수리되지 않았지만, 그 후손들은 여전히 전통을 수호하는 노력을 하고 있고, 문화재국에서 제때에 개입하여 수많은 위태로운 집들을 수리하여 야오잔촌의 옛집들을 보존하고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수백 년 전만 해도 사람들 위에 군림하던 황친귀족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신분을 어떻게 볼까요?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신분에 대해 물어보니 대부분 "나는 만청 후손이고, 보통 사람일 뿐, 황실은 이미 옛말입니다."라며 얼버무렸습니다.

 

 

과거 조상들의 휘황찬란함에 종지부를 찍은 듯한 말투는 더 이상 그들이 황실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들의 마을에는 여전히 많은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03. 전통 풍습의 백년 전승

 

 

 

이 마을에 전해지는 한 구절이 있다고 하는데요. "기인들의 예는 수가 많다지만, 조가의 예는 더욱 많다(旗人礼数大,肇家礼更大。)" 이 말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뒤에 비로소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 촌락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한문화(汉文化)가 마을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황실 후손들은 약점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성을 조(肇)씨로 바꾸었습니다.

 

 

야오잔촌의 혈맥은 순수한 황실귀족이 대부분이라고 하며, 대부분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조씨 가문들 사람들은 거의 모두들 만주족이라고 합니다. 혈맥의 순수함을 중시하는 만청의 후예들은 남자들이 반드시 만청 후예를 아내로 맞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 지언정, 외부인과 결혼하는 것은 싫다는 믿음을 가지고 대를 이어왔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야오잔촌 주민들은 외부인들과 통혼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인과 통혼하면 혈맥이 불순해진다는 이유 때문에 야오잔촌의 절반 이상이 만청 귀족들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마을 노인들은 자녀들에게도 혼인 문제에 대해 무척 중요하게 가르치곤 하였습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이 정신은 사람들이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전통을 지키게끔 하였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렇듯 수세대 이어진 전통은 근친결혼이나 다름없게 되어, 후손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핏줄은 순수할지라도, 아이가 기형아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학이 보편화된 새로운 시대에는 근친혼의 폐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지만, 핏줄의 정통을 고집하는 노인들의 고집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외부인을 아내로 얻은 남자들은 집안의 노인들로부터 불효라고 지적받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봉건적 굴레에 반항하고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04. 맺음말

 

 

야오잔촌의 이러한 혈통 고집을 접한 수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새로운 시대가 우리를 구했다"며 감개무량해했다고 합니다.

 

 

야오잔촌은 황친귀족의 산물이고, 시대의 허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중화인민공화국의 시대에는 청나라의 그러한 형식주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청귀족 후손들에게는 그러한 전통이 그들의 신앙이고 조상에 대한 추모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관여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정성이든, 고집이든간에 최대한의 존중을 해야 한다고도 하지요. 어떤 주장이든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pageType=1&context=%7B%22nid%22%3A%22news_8774188985010673452%22,%22ssid%22%3A%22%22%7D

 

在辽宁的这个村庄,村民全是清朝皇室后代,至今拒绝与外界通婚

在改革开放、人人平等的现代社会,皇亲贵族的后代在时代潮流中已退出历史舞台,如果有人自称“吾乃爱新觉罗的后代”,必定会引起周边人的不屑:你是爱新觉罗的后代,我还是“共产主义

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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