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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재벌 궈허넨(郭鹤年)과 그의 딸 궈옌광(郭燕光)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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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재벌 궈허넨(郭鹤年)과 그의 딸 궈옌광(郭燕光) 이야기

hanyuku 2022. 1. 25.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홍콩의 최고로 이름난 규수들 중, 궈옌광(郭燕光)은 아마 가장 저평가된 인물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홍콩에는 이름난 규수들이 무척 많은 반면에 궈옌광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렇듯 겸손한 태도 덕분에 궈옌광은 사람들을 감복하게 했다고 하네요.

 

 

궈옌광의 출신은 정상급 엘리트 출신인데요, 그녀의 아버지는 말레이시아 최고 부자인 궈허넨(郭鹤年)입니다. 궈허넨의 재산은 홍콩의 유명한 재벌인 리자청(李嘉诚)과 마찬가지로 크게 저평가되어 있다고 합니다. 마카오의 유명한 카지노 재벌 허훙션(何鸿燊)은 78세에 허차오신(何超欣)을 낳았다고 하는데요, 궈옌광은 아버지 궈허넨이 67세에 낳은 딸이라고 합니다.

 

 

 

 

 

궈타이밍(郭台铭)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갔을 때,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궈타이밍이 궈허넨에게 특별히 식사를 대접했던 적이 있었다는데요. 이 당시 궈허넨은 80대 초반이었는데, 여전히 정신이 맑고 정정했다고 합니다. 궈허넨은 자신의 어린 딸 궈옌광의 애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궈옌광이 주걸륜을 좋아한다고 말하였고, 자신도 주걸륜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궈타이밍은 궈허넨이 이렇게 나이가 많은 줄은 몰랐다고 하네요.

 

 

궈허넨이 말하길, 자신과 딸 궈옌광 사이에는 세대 차이가 전혀 없다고 하였습니다. 궈타이밍도 궈허넨에게 물들었던 것인지,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에서 헤어난 후, 24세 연하의 새 아내를 얻어 세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궈허넨은 연간 100억 위안에 가까운 임대 수입을 얻을 수 있고, 베이징의 유명한 궈마오(国贸)만으로도 20~30억 위안의 임대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그가 지배하고 있는 자리 건설(嘉里建设)이 중국과 해외의 많은 부동산업을 장악하고 있어서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선양(北京、上海、杭州、沈阳) 등 많은 곳의 자리 센터(嘉里中心)가 궈허넨의 자산이라고 합니다.

 

 

중국 궈마오(中国国贸)는 연간 20~30억의 임대 수입을 받을 수 있고, 자리 건설은 연간 50~60억 위안의 임대 수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궈허넨은 그야말로 숨겨진 재벌이었죠. 이 외에도 궈허넨은 전세계 설탕 공업의 7분의 1을 장악하고 있고, 동남아에 큰 제분공장, 목재 공장, 해운 회사 등을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국가에도 애국심이 각별한 사람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인의 빛이라고 합니다.

 

 

또한 중국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진룽위(金龙鱼) 역시도 궈허넨의 자산이라고 합니다. 진룽위의 시장 가치는 수천억 위안에 달하는데요, 이것은 중국 최대의 양유 브랜드로, 매년 이윤이 수십억 위안에 달한다고 합니다.

 

 

 

 

 

궈옌광은 비록 이렇게 돈 많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전혀 응석받이로 자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이었던 궈옌광은 자라서 혼자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 홍콩으로 돌아왔습니다. 궈허넨 가족들은 일찌감치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떠났지만, 궈허넨은 홍콩에 장기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궈옌광은 어려서부터 홍콩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졸업 후에 홍콩으로 돌아와 창업했다고 합니다. 궈옌광은 가족회사에서 일하기는 싫었고, 다른 재벌가로 시집가서 젊은 할머니처럼 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궈옌광은 스스로 창업하는 길을 택했다고 하네요. 궈옌광은 홍콩에 중고 명품 온라인샵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잘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궈옌광도 자신의 노력으로 부자가 되었죠.

 

 

궈옌광은 독립적이고 개성있는 사람으로서, 표준적인 90년대 생이라고 합니다. 특히 그녀는 무척 미인이기도 하다는데요, 이렇게 훌륭한 젊은이에게는 앞으로 무한한 미래 발전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궈옌광은 아마도 제2의 허차오총(何超琼)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의 궈옌광은 허차오총만큼 되려면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기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궈허넨의 나이가 이미 99세가 되어서, 궈옌광을 제대로 중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궈옌광은 재계에서 전도유망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 궈허넨 본인 스스로는 상업의 귀재였으며, 그의 비즈니스 역시도 식량, 석유, 부동산 등 외에도 호텔, 공업 등 수많은 업종에 걸쳐 있다고 합니다.

 

 

70년대 궈허넨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가는 설탕이 매우 부족했었는데, 그래서 '꽌시(关系)'를 통해 궈허넨에게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국가에서는 그에게 국제 시장에서 저가로 설탕을 사주길 바랐고, 외환 시장에서 500만 달러를 벌어와주길 바랐습니다.

 

 

 

 

 

당시 중국의 국가 외환 보유액은 겨우 2~3천만 달러에 불과했는데요, 500만 달러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당시 궈허넨에게 국가에서 과업을 내주면서, 싼 값에 물건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한 셈입니다. 이 임무는 불가능해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궈허넨은 결국 완수해냈습니다.

 

 

 

 

 

 

궈허넨은 당시 일부러 유럽으로 달려갔지만, 오히러 브라질로 설탕을 사러 비밀리에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궈허넨은 설탕업 거물들과 유럽에서 술잔을 주고 받으며 교류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가 이미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궈허넨은 이렇게 해서 국제적으로 설탕 가격 파동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저가 매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나중에 거물들이 발견하였을 때는 궈허넨은 이미 수매 임무를 끝낸 후였습니다. 설탕업계의 큰손들이 끊임없이 설탕의 가격을 올렸지만, 궈허넨은 이미 임무를 완수한 상태라 오히려 설탕값이 오르자 그는 외환시장에서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도 성공하였습니다. 결국 궈허넨은 국가를 도와 이 일을 크게 성공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고 하네요. 정말 애국심만으로 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pageType=1&context=%7B%22nid%22%3A%22news_9531721577336352641%22,%22ssid%22%3A%22%22%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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