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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 시골마을의 노인과 소녀의 나이차를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시대가 갈수록 사람들의 생각이 개방적으로 변해왔는데요, 특히 연예계에서 나이 많은 남편과 나이 어린 부인의 결혼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들을 보는 시각은 아직까진 썩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후난성 닝샹현(湖南省宁乡县)의 한 작은 산골 마을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데요, 한 맨발의 의사 원창린(文长林)이 꽃다운 나이의 소녀 장펑(张凤)을 아내로 맞아들여 지역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두 사람은 결혼 후 귀여운 아들까지 하나 낳았다고 하네요.
7년이 지난 오늘날, 두 사람의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영리하고 남들과도 잘 어울리는 소년이라고 하네요. 지금은 70이 넘은 원창린은 여전히 정정하다고 하는데요, 그와 그의 아내는 함께 상의한 끝에 아직 젊을 때 쓰촨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원창린과 장펑의 감정 생활은 매우 유쾌하다고 하네요.
1. 장펑의 초년시절
1987년, 창사성 닝샹현(长沙省宁乡县)의 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장펑은 어린 시절 가정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가족의 생활은 더욱 어려웠다고 하네요. 그 세월동안 집안의 짐을 짊어지게 된 장펑의 아버지는 어린 장펑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자펑이 13살 되던 해, 아버지마저 갑자기 중풍에 걸려 쓰러지는 바람에 가족들은 의지할 곳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장펑도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장펑의 오빠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돈을 마련해 형제들을 돌볼 수 없었고, 그때문에 미성년자인 장펑이 가족들을 부양해야할 짐을 떠맡아야 했습니다.
그 힘든 세월 동안 장펑은 농사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봤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일찍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이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인데요, 장펑 역시도 이러한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장펑은 아버지의 병환을 덜어주기 위해 동네 의사 원창린의 도움을 자주 받았었는데요, 그들의 집안 형편을 보고나서 원창린은 자진해서 병원비를 감면해주었다고 합니다.
2. 극진한 배려
장펑의 아버지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원창린도 장펑을 극진히 챙겨주었는데요, 이 불쌍한 소녀는 집안에서 오랫동안 관심과 애정이 부족했었던 탓에 무척이나 여위고 허약했었습니다. 그래서 치료 과정에서 또 다른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창린은 자발적으로 장펑의 한약을 달여주는 물론, 가족들의 생활고도 해결해주었다네요.
그렇게 지내면서 장펑은 그에게 인간다운 따뜻함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친밀감도 점차 쌓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장펑네 가족들을 돕는 친척과 친구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원창린은 장펑이 열여섯 살 때 생전 처음으로 생일 케이크를 먹게 해주는 등 잊지 못할 생일도 선사해주었다고 하네요.
장펑을 더욱 놀라고 기쁘게 해주었던것은, 원창린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그녀의 아버지가 기적처럼 병상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천천히 걸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집안일도 할 수 있게 되었죠. 딸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난 후, 장펑의 아버지는 농번기에 가을 걷이를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결국 세상을 떠났고, 장펑은 이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3. 외지로 일하러 나가다
아버지를 잃은 장펑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다행히도 원창린이 제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원창린의 도움으로 또 다시 고비를 넘겼을 뿐만아니라, 마음 속에도 막연한 감정이 피어올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제 장펑의 나이가 들어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펑의 가정형편을 보고 대다수 많은 사람들은 뒷걸음치곤 했습니다. 이것은 장펑으로 하여금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장펑은 외지로 나가 대도시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펑이 마을 사람들을 따라 도시로 나오자, 그녀는 전혀 안도감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깊은 밤, 혼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장펑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적막감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월급으로 휴대전화를 한 대 샀을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걸고 싶었던 사람이 원창린이었다고 합니다.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던 원창린도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이 분가하자, 장펑의 아르바이트 생활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듣고 싶어했습니다.
4. 부부가 되다
그러는 동안 장펑은 점점 더 원창린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원창린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장펑의 전화가 오지 않을때면 걱정이 앞서는 막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2010년, 장펑은 휴대 전화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몇 달 동안 원창린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지만 원창린은 걱정이 많아졌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장펑이 일하는 곳을 알아내 기차를 타고 광둥성 선전에 도착하여 장펑을 찾아갔습니다. 상황의 전말을 파악하게 된 원창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펑에게 새 휴대전화를 사주고는 서둘러 고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을 겪은 뒤,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 장펑은 원창린에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비록 엄청나게 컸지만, 장펑의 부탁을 들어준 원창린은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장펑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에도 행복하게 살았고, 장펑은 원창린의 아들도 하나 낳아주었는데, 그 아이가 이제 일곱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맺음말
장펑은 지난 6월, 원창린과 함께 <로예유약(鲁豫有约)>이라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보기에 그들 가족은 조손 3세대로 보였지만, 원창린은 별다른 어색함 없이 아들의 손을 잡고 평범한 아버지처럼 행동하여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고 하네요.
미래에 대한 계획에 관해서는, 장펑 역시도 자신만의 답안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들은 현재 젊은 시간을 보물처럼 아끼고, 함께 밖으로 나가 걸으며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고 합니다. 원창린과 장펑이 만난 지 십수 년이 흘렀지만, 그들 두 사람은 여전히 애정이 좋아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합니다. 비록 나이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서로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은 본받을만한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2012年,湖南少女主动嫁给70岁老头,婚后生下儿子,现今怎么样了
随着时代的不断发展,人们的思想越来越开放,尤其是在演艺圈当中,很多老夫少妻的现状,也让观众们见怪不怪了。不过在湖南省宁乡县的一个小山村里,却有一位赤脚医生文长林,迎娶了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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