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yuku

19년만에 밝혀진 금괴 도둑의 진실?! 본문

China news

19년만에 밝혀진 금괴 도둑의 진실?!

hanyuku 2022. 1. 17.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와 이웃의 안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들은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행한 이기적인 일들이 일시적 충동이든, 미리 모의한 범행이었든, 법적 제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1980년, 한 50대 여성이 금 3근을 가지고 가 은행에서 환전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만 해도 금의 단가가 g당 100위안 정도였었고, 금 3근을 위안화로 바꾸면 15만위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은행원들은 이 상황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당시 1만 위안만 있어도 토호(土豪)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여성이 가져온 금은 순도가 무척 높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시중에 유통되던 금도 이렇게 순도가 높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이 정식 루트가 아닌 방법으로 입수한 금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직원은 즉시 상부에 보고하였고, 경찰서에 사람을 보내 신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안 요원의 준엄한 심문 아래 진상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원래 이 부인은 황쑤젼(黄素珍)이라는 이름으로, 615 공장에 다녔었다고 하는데요, 이 공장은 주로 금을 채취하여 금괴를 만드는 일을 했었습니다. 한 차례 심문이 끝난 뒤, 공안국은 곧바로 두 트럭의 공안을 보내 그녀의 숙소를 포위시켰습니다.

 

 

 

 

 

 

도둑맞은 황금의 수수께끼

 

 

마르크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화폐는 천성적으로 황금이 아니지만, 황금은 천성적으로 화폐이다." 지난 세기 중국은 금으로 각국과 경제 거래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615 공장은 금을 추출하여 금괴를 만드는 공장이었죠.

 

 

그 때의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여 오로지 조국 건설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누구도 공장안의 물건을 훔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서로 신뢰하고 있었죠.

 

 

그러나 1961년 3월 20일, 정상적으로 출근하던 궈자후이(郭家惠)는 일찍 도착한 동료로부터 공장의 금을 도둑맞았다는 통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궈자후이는 포장 팀장으로, 매일 퇴근 전 직접 물건을 체크하는 사람이었고, 분명히 어제 퇴근하기 전에 물건이 완전히 다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도둑을 맞게 된 것이었을까요?

 

 

 

 

 

그는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동료를 따라가보니, 현장은 아수라장이었고, 포장 상자 안에 있던 금괴 두 개를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작은 두 덩어리의 금괴이지만, 금은 밀도가 높고 부피가 작기 때문에 우습게 여길만한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은 이때만 해도 농업 분야의 피해로 주요 품목의 식량이 부족하였고, 금 800냥이면 외국에서 국민들의 식량으로 바꿔올 수 있는 가치였습니다.

 

 

궈자후이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는데, 결국 이 금 분실 사건은 중앙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공안원들은 엄청난 압력을 가하며 정밀 조사를 벌인 뒤, 공장 직원 중 한 명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황금을 잃어버리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궈자후이였기 때문에, 그가 가장 먼저 의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엄정한 심문과 수사 결과 그는 무혐의로 용의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진상이 명백히 드러나다

 

 

사건의 진전은 난항을 겪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절, 경찰은 전자 장비도 없었고, 첨단 기술 수사 기법도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범인의 심리적인 소질 역시도 무척 좋았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이나 범인을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공안은 19년이 지난 1980년에야 황쑤젼이라는 여성이 황금을 환전하러 갔을 때 비로소 사건의 경위를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황금은 황쑤젼의 남편 관칭창(关庆昌)이 훔쳤던 것이었습니다. 관칭창은 당시 615 공장 생산과 부과장으로서 일부 권한이 있었고, 황씨는 전해(电解) 작업장 노동자였습니다.

 

 

 

 

 

 

관칭창은 일찌감치 황금을 훔치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금이 입고되지 않았을 때, 그는 손을 쓸 수 있는 타이밍이 왔다는 것을 알았죠. 관칭창은 예전에 경찰이었기 때문에, 사건에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하고, 시간선을 흐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초저녁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저녁에 공장 안에서 샤워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날이 어두워진 틈을 타 공작원의 도구를 사무실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간 지 몇 분 되지 않아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 뒤 범행 도구를 가지고 가서 황금을 훔쳤습니다. 전체 범행 시간은 불과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분 뒤 그는 공장에서 800냥의 금을 가지고 나왔죠.

 

 

사실 그의 절도 수법이 매우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공안의 검문 검색이 있을 때, 금을 도둑맞았던 그 시간동안 그가 했던 일은 모두 알리바이가 입증이 되었죠. 그때 당시 노동자들은 손목시계나 휴대전화를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보았을 리가 없었고, 공장에도 감시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범행은 감쪽같이 덮어씌워졌습니다.

 

 

 

 

 

 

영화 <오살(误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남자 주인공들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서 시간을 헷갈리게 하고 알리바이를 심어놓았었습니다. 관칭창도 그랬으며, 그는 경찰 출신이었기 때문에 정찰에 대항하는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덕분에 그는 화를 면할 수 있었죠.

 

 

게다가 그의 뛰어난 활약과 적극적인 태도로 인해 경찰 업무를 도와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사건 현장의 신발 자국을 발견하여 공장 사람들의 신발 사이즈를 모두 집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도 다시 벗어나는데 성공하였죠.

 

 

 

 

 

 

당시 어떤 사람들은 혹시 수량을 잘못 센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고, 관칭창은 밤잠을 설치는 일을 막기 위해 상부에 곧바로 수량을 잘못 센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여러 방면의 압력에 못 이겨, 공장에서는 다시 한번 수량을 집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관칭창은 책임자로서 곧바로 뒷북을 쳤고, 수량 집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이를 묵인하였지만, 이러한 수작으로 범죄 행위가 영원히 묻힐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표현은 관칭창의 행동에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관칭창은 훔친 황금은 집에 숨겨둔 채 손도 대지 못하였습니다. 아마 도둑이 제 발 저렸는지, 그는 공장 사람들을 더욱 열정적으로 대하고, 윗사람들, 아랫사람들을 막론하고 평소에도 자신의 월급에서 돈을 꺼내어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을 돕곤 하였던 것이죠.

 

 

관칭창은 평소에는 적극적으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늘 누더기 같은 차림새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며 남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집에 있는 황금을 들키게 될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

 

 

 

 

 

1979년 초까지만 해도, 금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금을 도둑맞은 지로부터 거의 20여년이 지났습니다. 관칭창은 예전의 일은 이제 다 지나갔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고, 공장에서도 다시 직원들에게 집을 배정해주기 시작하였으니, 도둑맞았던 금도 돈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선 직책을 남용하여 몰래 금덩이를 녹여서 금괴로 나눈 뒤, 아내를 시켜 몰래 시내에서 환전을 하게 시켰습니다. 관칭창은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으나, 꼬리가 결국 붙잡히고 말았죠.

 

 

 

 

 

 

하늘의 그물이 넓고 성글지만, 결코 빠뜨리는 법은 없다고 합니다. 그물에서 벗어난 물고기는 결국 잡히고 말지요. 재판 결과 결국 관칭창은 무기징역과 종신 정치권리 박탈, 황쑤젼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시절, 중국은 아직 가난했습니다. 한 푼을 두 푼으로 쪼개어 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는데, 관칭창은 국가적인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의 돈을 훔쳤으니, 정말 이기적인 행동이었죠.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응분의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10245781811973191240%22%7D&n_type=-1&p_from=-1

 

1980年,一妇女拿3斤黄金换钱引怀疑,两卡车公安立刻包围其住所

从古至今,在历史的长河中总会发现个别自私自利的人,他们不顾祖国建设,也不顾他人安危。但不管他们是一时冲动,还是早有预谋犯下了罪行,终将逃不过法律的制裁。 1980年,一位5旬妇女

mbd.baidu.com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