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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의 넘버 원 여걸, 쓰투위롄(司徒玉莲)의 전설적인 인생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오늘 소개할 기사의 주인공은 마카오의 제 1의 도박왕(赌王)으로 불리는 진정한 여장부라고 합니다.
그녀는 홍콩 14K원로이자, 암흑가의 대부 후쉬용(胡须勇)의 의매(义妹)라고 하네요.
영화 <고혹자(古惑仔)>의 홍흥십삼매(洪兴十三妹)는 바로 그녀를 원형으로 한 캐릭터라고 합니다.
그녀는 바로 "여두목(大姐大)" 쓰투위롄(司徒玉莲)입니다.
마카오에는 도박왕 허훙션(何鸿燊) 외에도 쓰투위롄이라는 여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홍콩 및 마카오를 통틀어서 유일한 여장부였습니다.
진용(金庸) 선생의 <소오강호(笑傲江湖)>에 이런 한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있는 곳마다 원한이 있고, 원한이 있는 곳에는 강호가 있으니, 사람이 곧 강호이다.(只要有人的地方就有恩怨,有恩怨就会有江湖,人就是江湖。)"
홍콩에서는 수많은 조폭 영화를 찍었는데, 이 영화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피가 끓어오르고 설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의 소재들은 거의 실재한 사건들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한 여자가 이런 강호를 떠돌며 천지를 개척하고, 패업을 이룩할 수 있었다니, 이 얼마나 전설적인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누군가는 타이천란(太陈岚)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타이천란보다 홀로 자수성가하여 몸값 100억 위안에 이르게 된 마카오의 첫번째 여걸을 더욱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했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네요^^
01.
허베이성 바오딩 시의 바이양덴(河北省保定市的白洋淀)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까요? 90년대 초에 바이양덴 온천성(温泉城)은 바오딩 지역에서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바로 쓰투위롄이 4억 위안을 들여 지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쓰투위롄이 국내에 투자한 첫번째 프로젝트였기에,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화젯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다 들어가버렸지만, 쓰투위롄은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고 계속 홍콩과 마카오 땅을 돌아다녔습니다.
아마도 바오딩의 현지에는 아직도 많은 노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알고 싶은 사람들은 스스로 찾아서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쓰투위롄이 조폭의 정점에 오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녀 자신의 힘으로 오른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에게는 샹화창(向华强) 같은 아버지도 없었고, 배후에 신이안(新义安)같은 단체도 없었고, 막강한 가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 걸음씩 내딛으며 나아갔습니다.
최초의 쓰투위롄은 홍콩의 빈민굴인 수이보(水埗에서 성장하였는데, 이곳의 가정들은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쓰투위롄은 밑바닥에서 일찌감치 사람들을 접하며 세상물정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눈치를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곳 사람들의 가장 기초적인 능력이었죠.
지난 세기의 홍콩은 조폭들이 난무하던 시대였습니다. 현실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계 부자들까지도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리우자링(刘嘉玲) 사건, 이연걸의 매니저 차이쯔밍(蔡子明) 사건, 메이옌팡(梅艳芳)이 란구이팡(兰桂坊)에서 폭행당했던 사건 등 다양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빈민굴 수이보에서는 패거리끼리 치고받고 싸운 역사가 오래된 동네였는데요, 이곳에서 딱 알맞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죠.
10대 꽃다운 소녀였던 쓰투위롄은 놀라는 법이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환경에서 많이 보고 자란 덕분에 일처리를 할 때도 놀라지 않는 성격이 몸에 배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쓰투위롄은 혼란스러운 강호를 떠돌다가 18세가 되자 카지노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한발 더 나아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집안의 부담을 덜어주고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02.
카지노는 물고기와 용이 뒤섞인 곳으로, 안에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곳이야말로 가장 눈치를 보아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움을 사버리고 말기 때문이죠.
이런 환경에서도 쓰투위롄은 기민함으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4K 소속으로 알려진 후쉬용(胡须勇)과는 이곳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후쉬용은 아직 14K 조폭 두목도 아닌 무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쓰투위롄을 만나면서 남안지기(蓝颜知己)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출신과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에 후쉬용은 쓰투위롄을 자신의 의남매처럼 여겼습니다. 아직 실력은 없었지만, 감정은 친남매보다 훨씬 우애가 좋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후쉬용은 14K에서 유명해졌고, 한가할 때마다 쓰투위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쓰투위롄의 능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사업 역시도 서서히 향상되었습니다.
게다가 후쉬용은 14K에서 지위가 높아지면서 쓰투위롄도 점차 강호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원만하게 잘 다루는 쓰투위롄은 후쉬용에게 의지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떠돌면서 살아갔습니다.
후쉬용의 실력이 점점 커져 14K의 거물이 되었을 때, 그는 카지노를 열 계획이었는데, 이것 역시 쓰투위롄에게 맡겼습니다.
그녀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고 호탕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여장부 기질이 배어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물이 남자 때문에 넘어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쓰투위롄이 26살 때, 한 부잣집 자제인 쩡궈위(曾国宇)가 그녀를 좋아하게 되어, 맹렬한 애정공세를 펼쳤고, 본래 낮은 사회계층이었던 그녀는 결국 쩡궈위의 구애에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쩡궈위와 결혼한 후 쓰투위롄은 은퇴하고, 마음편히 집안에서 남편을 내조하는 재벌가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03.
가정에서 쓰투위롄과 쩡궈위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씩을 낳았죠.
부잣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큰 기쁨이자, 발판이었고, 아이를 많이 낳은 쓰투위롄 역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생각지 못한 것은 시정(市井) 출신인 그녀가 가진 관념은 명문가의 관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현모양처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명문가에서 원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열심히 노력했기에, 결국 이 결혼 생활은 이혼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명문가를 떠났을 때, 그녀는 32세였고, 세 아이를 데리고 나와 혼자서 키웠습니다.
그때 당시의 강호는 6년 전에 그녀가 몸담았던 강호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후쉬용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었죠.
아이를 키우기 위해 그녀는 예전에 몸담았던 직업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시댁을 피해 마카오로 떠났습니다.
마카오에서 카지노에 들어가려면, 홍콩과는 다르게 허훙션(何鸿燊)의 승낙이 떨어져야 했습니다.
이미 14K의 두목이 된 후쉬용은 의남매인 쓰투위롄을 대신하여 도박왕 허훙션을 추천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4K는 홍콩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는데요, 후쉬용은 체면을 차리기 위해 쓰투위롄을 내려보내면서 경영하기 어려운 곳에는 그가 많이 신경을 써주었다고 합니다.
이쪽 업계의 울타리는 너무 복잡하여, 한 여자가 그 안에 들어가 숟가락을 나누려 한다면, 그 난이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장사에서 참담한 상황이 이어지자, 쓰투위롄은 이것이 거대한 도전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전에 그녀는 경험이 풍부하였고, 자신만의 수단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인수한 후,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녀의 경영 하에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여 뜨거운 도박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허훙션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있었다니 무척이나 놀랐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허훙션도 쓰투위롄을 존경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04.
점차 판도를 개척하게 된 쓰투위롄은 권내에서도 지위와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쓰투위롄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졔스웨이(街市伟)"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보탬이 조금이라도 되어줄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것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었죠.
이 졔스웨이라는 사람도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한때 돼지를 잡고 돼지고기를 팔았었는데, 졔스웨이라는 별명 역시도 그의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성격이 강직했던 그는 돼지고기를 팔다가 가격 문제로 한 손님과 다투게 되었고, 곧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그후, 졔스웨이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가 이쪽 암흑가에 합류하여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시간이 흐르자, 마카오로 돌아가 허훙션에게 향했죠.
허훙션의 추천으로 쓰투위롄과 졔스웨이는 마치 손발이 척척 잘 맞는 사람이 어울린 것처럼 신속하게 천지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개장과 동시에 두 사람은 사랑의 불꽃을 튀겼고,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죠.
하지만, 또 생각지 못했던 점은 아이들이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투위롄은 그와 결혼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고집은 나중에 복병을 낳게 됩니다.
1988년, 도박왕 허훙션의 개혁으로 마카오의 카지노 업계는 카지노의 도급을 허용하여 서로 비례해서 나누도록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이는 바로 호시탐탐 숟가락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기회가 되었죠.
쓰투위롄은 졔스웨이와 함께 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거듭났고, 마카오의 거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쓰투위롄은 도박왕 허훙션이 아닌, 자신만의 문호를 세워 "중간상"이 되었죠.
05.
이 업계 자체가 매우 난잡했기 때문에, 경영을 온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 역시 많은 "뎨마즈(叠码仔)"를 모집하였습니다.
점점 쓰투위롄이 유명해지면서, 그녀에게 "여자 도박왕(女赌王)"이라는 별명도 붙게 되었죠.
카지노 업계가 그 자체로 큰 케이크이고, 먹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거물들 뿐이었습니다.
쓰투위롄과 졔스웨이의 경영 하에서도, 마카오의 14K 조폭과 많은 마찰을 빚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결국 이익에 직면하여 쌍방이 관여되니까 자주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주의할 점은, 홍콩 14K와 마카오 14K는 같은 분파가 아니며, 14K는 많은 지점이 있기 때문에, 쓰투위롄이 후쉬용과 친하다고 한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마카오 역시 쉽지 않은 곳이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쓰투위롄은 벙야쥐(崩牙驹)를 찾았습니다.
벙야쥐 역시 14K의 우두머리로, 당시 진입경쟁을 위해 모딩핑(摩顶平)과 충돌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기지 못했고 심지어 멸망할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쓰투위롄이 벙야쥐를 찾아왔을 때, 벙야쥐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쓰투위롄은 벙야쥐와 손을 잡고 모딩핑을 철저히 몰아내었고, 결국 그를 마카오 14K의 두목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 덕분에 벙야쥐는 매번 쓰투위롄을 만날 때마다 "따자졔(大家姐, 큰누님)"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마카오에서 쓰투위롄의 제1 여걸이라는 입지는 점차 굳어져갔습니다.
다만,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던 쓰투위롄이 결혼 생활에 빨간 불이 켜질 줄은 몰랐죠.
여자가 강하고, 남자가 약하기 때문에 결혼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남편인 졔스웨이는 남몰래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고, 또한 손님을 그의 개인 장소로 끌고가서 더욱 흥청망청 바람을 피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를 폭로한 것은 뜻밖에도 쓰투위롄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쓰투위롄이 발견하자, 이 결혼은 곧 파멸을 맞게 되었습니다.
06.
졔스웨이가 쓰투위롄을 떠난 뒤에, 그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고, 쓰투위롄 때문에 곳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괴롭혔습니다.
반면, 쓰투위롄은 마카오 카지노에서 도박왕 허훙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녀는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며 세기건업 그룹(世纪建业集团)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룹 내에는 이미 상장된 회사도 많고, 쓰투위롄의 몸값도 100억 위안이 넘게 되었죠.
2000년, 허훙션의 네번째 부인 량안치(梁安琪)가 조직한 테이프 컷팅식 행사에서 쓰투위롄은 다시 한번 졔스웨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졔스웨이는 이미지를 확 바꾼 듯 이전의 "백정" 때와는 달리 성공한 사람들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그들이 이혼했던 이유가 사실은 그녀의 아들의 음모였다는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은 다시 사랑의 불꽃이 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원한이 많았지만, 그 자리에서 만나 해후를 풀고난 뒤, 쓰투웨이는 졔스웨이와 다시 재혼하기 위해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세 자녀 모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들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그녀는 신탁의 방식으로 자녀 3명의 이름 하에 재산을 모두 이전해주었다고 합니다.
2004년, 졔스웨이의 초라한 모습을 본 쓰투위롄은 돈으로 졔스웨이의 거취를 돕고 싶었지만, 재산은 이미 모두 자녀들에게 있어서 자녀들에게 찾아갈 수 밖에 없었는데요, 자녀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개인 명의로 아들에게 빚을 지고 1300만 위안을 빌려서 졔스웨이를 도와줘야 했습니다.
2005년, 쓰투위롄의 생일 잔치에 자녀 셋이 모두 들어가지도 않고 소란을 피웠고, 생일 잔치에서 식중독에 걸려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사한 결과 이것도 세 자녀들이 모두 설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때, 이들의 모자관계는 빙점(冰点)까지 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 자녀들은 2001년부터 회사 자산을 빼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야 비로소 쓰투위롄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죠.
궁여지책으로, 그녀는 재산을 구하는 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소장 한 장으로 세 자녀를 모두 법정에 세우게 되었죠. 여기까지 오게 된 쓰투위롄은 정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07.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쓰투위롄은 모습을 감추고 막후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환갑인데, 계속 현역에 있기에도 역부족이었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강호는 점차 밋밋해졌고, 벙야쥐 역시 출옥하였지만, 14K의 맏형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업가로 변신하였습니다.
벙야쥐가 여는 연회석마다 쓰투위롄은 수석에 앉았고, 게다가 많은 거물들 중에서 그녀만이 여장부 하나로 유달리 눈에 띄었습니다.
2016년 14K 조폭 두목 후쉬용의 장례식에도 쓰투위롄이 참석하였습니다.
후쉬용이 죽기 전, 그의 가족은 모두 쓰투위롄에게 위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후쉬용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쓰투위롄이 있으니 그의 가족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후쉬용의 장례식장에서도 그녀는 자필로 10자를 써서 그를 애도하였다고 합니다.
쪽방촌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강호에 뛰어든 "따자졔"의 인생스토리를 보며, 두 번의 결혼과, 자녀들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전설적인 인생이야기를 보면, 과연 누가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 비길 수 있을까요? 정말 '전설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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