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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배우 뤄하이총(罗海琼)의 인생 스토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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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배우 뤄하이총(罗海琼)의 인생 스토리

hanyuku 2021. 8. 6.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의 연예계에는 수많은 명작 드라마들에 출연하여 연기한 후거, 저우쉰, 천쿤, 리우이, 리우윈룽(胡歌、周迅、陈坤、陆毅、柳云龙) 등과 같은 쟁쟁한 여배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살펴볼 이 기사 속의 주인공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바로 뤄하이총(罗海琼)으로, 화이(华谊) 부회장의 아내입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녀가 연기했던 역할만 보면 '아, 그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배우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연화동자나타(莲花童子哪吒)>에서 뤄하이총이 연기한 쑤다지(苏妲己, 달기. 은나라 주왕의 비)는 "가장 청순한 여우같은 여자"로 통한다고 합니다.

 

 

 

 

<상무상우우상풍(像雾像雨又像风)>에서 뤄하이총은 팡쯔이(方紫怡) 역할을 맡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풍쟁(风筝)>에서 뤄하이총은 리우윈룽과 콤비로 열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실, 뤄하이총이 연기했던 캐릭터 하나하나가 풍성하고 다채로웠습니다. 다만 한창 잘 나가던 때, 결혼으로 인해 삶의 무게중심이 일에서 가정으로 옮겨갔고, 주연 역할은 갈수록 줄어들어 중국의 저우쉰이나 천쿤 같은 대 배우가 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47세인 뤄하이총은 무시할 수 없는 광채를 지니고 있다고 하네요. 오늘 살펴볼 기사에서는 뤄하이총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뤄하이총은 1973년 간쑤성 란저우(甘肃兰州)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해서 부모님이 일하는 직장의 삼촌들과 이모들에게 자주 춤을 추고 독무를 선보이며 무용가가 되는 것을 꿈꿨습니다.

 

 

 

 

 

뤄하이총의 아버지는 구급차 운전사이고, 어머니는 평범한 노동자였습니다. 게다가 언니 둘과 오빠 한 명이 있어서 넉넉지 않은 집안이었지만, 뤄하이총이 춤을 좋아하자, 부모님은 전폭적으로 그녀를 지원해주었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돈을 벌어 그녀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1985년, 뤄하이총이 12세때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의 언니가 그녀에게 세뱃돈을 주며 현지 무용에술학교에 지원하도록 해 주었고, 다행히도 그녀는 합격했습니다. 그때 뤄하이총은 자신이 무용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희망 가득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용예술학교에 입학한 뒤, 뤄하이총은 스승의 눈 밖에 났고, 연습실에서도 스승에 의해 구석에 배치되는 일이 잦아서 그녀의 마음 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씩 잃게 되엇습니다.

 

 

이때, 뤄하이총은 그녀의 은사인 리우샤오루(刘晓如) 선생을 만났습니다.

 

 

리우샤오루 선생이 뤄하이총을 처음 만난 날, 선생은 뤄하이총에게 "앞머리를 올려라." 라고 말했고, 뤄하이총은 그 말을 듣고 앞머리를 올렸고, 리우샤오루는 그녀의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며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얼마나 예쁜지 네가 봐봐라."

 

 

 

 

 

몇 년 후, 뤄하이총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리우샤오루 선생이 당시 자신을 보았던 눈빛에서 스스로가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었습니다.

 

 

 

 

 

 

뤄하이총은 옛 친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였을때, 사회자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자, 뤄하이총은 "리우샤오루 선생님"이라고 답했습니다.

 

 

예전에 무용예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뤄하이총은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녀는 줄곧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번은 리우샤오루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즉석에서 선발 시험을 한 차례 치른 적이 있었는데, 그 선발 시험은 매우 중요했었다고 합니다. 시험을 잘 본 사람은 베이징으로 파견되어 더욱 전문적인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걸린 시험이었던 것이죠.

 

 

뤄하이총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했습니다. 수업 후에는 힘을 다해 훈련 시간을 늘리기도 하였죠. 그녀는 자신의 실력으로 선발되길 원했지만, 가정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수업 시간 이후에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수 없었고,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효과가 미미했기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뤄하이총의 막막함을 발견한 리우샤오루 선생은 그녀에게 "내가 훈련을 도와줄 테니 낙심하지 말라."며 부드럽게 말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리우샤오루 선생님의 지도로 뤄하이총은 선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뤄하이총이 20년 후, 리우샤오루 선생을 다시 봤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만난 은사님의 손을 꼭 잡았다고 합니다.

 

 

 

 

 

리우샤오루 선생도 뤄하이총이 춤에 재능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뤄하이총은 결국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뤄하이총의 연기 경력에 대해 말해보자면, 사실 운명적이기도 합니다.

무용학원을 졸업한 뒤, 뤄하이총은 가무단(歌舞团)에 배치되었는데, 그 시절 그 일은 철밥통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태생적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무용단은 대부분 시골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큰 무대를 접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리고 가무단 사람들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뤄하이총은 현재 자신이 이곳에 있는다면 어떻게 될지 눈여겨 보았습니다. 젊을 때는 무대에 올라 춤을 출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무대에서 물러나야 하고, 다른 신인들의 화장을 도우는 사람이 되는게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활로를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춤을 좋아해서 1994년, 그녀는 베이징무용학원 진학을 선택했지만, 결국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몇 년 뒤, 뤄하이총은 은사인 리우샤오루와 마주쳤을때, 그녀 자신이 원래 춤을 못 추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우샤오루 선생은 사실 당시 뤄하이총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사정상 일이 지체되어 뤄하이총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했고, 수년 동안 죄책감을 느껴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린 과거의 이야기를 알게 된 뤄하이총은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는 게 아니라 리우 선생님의 은혜에 감동했기 때문이었죠. 뤄하이총은 착하고 감성적인 사람이고, 그녀의 선량하고 순진한 마음이 변한 적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뤄하이총은 베이징무용학원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다른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1994년 10월, 뤄하이총은 가무단을 따라 상하이에 가서 <돈황(敦煌)>을 공연하였고, 그러면서 상하이라는 대도시의 번화함을 보았고, 상하이연극학원에 입학하는 것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시험은 면접과 문화 시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면접은 그녀에겐 식은 죽 먹기였지만, 문제는 문화 시험이었습니다. 시험 전까지 그녀는 매일 힘들게 독서에 매달렸습니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역사 외우기에 골몰하느라 큰 트럭에 치일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뤄하이칭의 그러한 노력은 보답을 받게 되었고 상하이 연극학원 연기과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연극과 인연을 맺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1998년, 뤄하이총은 드라마 <혼계합군공(魂系哈军工)>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뤄하이총은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고, 이번에는 조연이 아니고 주연이었습니다. 그녀는 차오쥔(曹骏)과 함께 사극 <연화동자나타>에서 "후리징(狐狸精)"인 달기(妲己) 역을 연기하였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80, 90년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인물로 거듭났습니다.

 

 

 

 

 

2000년에는 연대극 <상무상우우상풍>에서 팡쯔이(方紫仪) 역을 맡아 연기하였습니다. 이 연극에는 천쿤, 리우이, 저우쉰, 리샤오란(陈坤、陆毅、周迅、李小冉) 등 오늘날 널리 알려진 스타들이 출연했었습니다.

 

 

극중 리우이와 천쿤은 뤄하이총을 사랑하며 열광적인 사랑을 펼쳤고, 뤄하이총은 팡쯔이의 청순한 매력을 한껏 발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 덕분에 뤄하이총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2005년에는 <호상호상담연애(好想好想谈恋爱)>에서 타오춘(陶春) 역을 연기하였고, 2005년 사극 미스터리 드라마 <대송제형관(大宋提刑官)>에서는 쑹츠(宋慈)의 조력자 주잉구(竹英姑)를 연기하였습니다.

2013년에는 첩보전극 <풍쟁>에서 한빙(韩冰) 역, 2015년에는 패션상전극(时装商战剧) <엽장(猎场)>에서 젠나(简娜) 역으로 후거(胡歌)와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뤄하이총이 <풍쟁>에 출연하게 된 배경에는 뤄하이총이 스스로 "이 연극으로 인해 행운을 얻고, 목숨을 잃었다"고 말할 정도로 뒷 이야기가 많다고 합니다.

 

 

 

 

 

<풍쟁>은 원래 커란(柯蓝)이 출연하기로 했었지만, 촬영 중 커란이 발을 다쳐서 하차하는 바람에 연기자를 바꿔야 했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감독 리우윈룽에게 뤄하이총을 추천했고, 이들은 뤄하이총의 남편을 찾아가 그녀에게 대본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뤄하이총은 이 극이 이미 절반쯤 촬영되었다는 이야기만 듣고는 대본은 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연극은 안 받아요, 안 맞아요. 날 찾으려면 미리 찾았어야죠!"

 

 

 

 

 

 

하지만 나중에 그녀는 남편의 계속되는 부탁을 참지 못하고 대본을 읽어보았습니다. 3회의 대본을 보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프로듀서랑 약속해요. 어떤 배역을 맡든 갑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리우윈룽은 그녀를 한번 보더니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상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또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와 메이크업을 해보라고 하였고, 머리를 짧게 자르라고 조언했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후, 감독이 다시 와서 보더니 "내일 촬영할 테니 한 번 해보세요." 라고 했습니다.

 

 

뤄하이총은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감독님, 대본을 아직 다 못 봤는데, 제가 등장하는 부분을 못 봤어요."

 

 

하지만 감독은 괜찮다며 먼저 찍어보자고 하였습니다.

 

 

한번 촬영을 해 보더니, 감독은 뤄하이총이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뤄하이총은 그렇게 <풍쟁>의 한빙 역할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방송된 직후, 큰 인기를 끌며 급부상하였습니다. 그리고 뤄하이총은 이 드라마에서 한빙 역을 훌륭히 소화하여 제24회 화딩상 "중국근대제재(中国近代题材) 드라마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일에서 이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니 뤄하이총처럼 우수한 배우라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뤄하이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생활의 중심은 시종일관 가정에 있었죠.

 

 

 

 

3.

 

 

 

세월은 흔적도 없이 흘러갔고, 뤄하이총에게는 사랑스러운 두 딸과 그녀를 끔찍이 아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뤄하이총은 그녀의 남편과의 만남이 우스갯소리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한 번은 매니저가 식사 약속을 했는데, 온 사람들 중에 화이(华谊) 부회장 페이치(费麒)가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이 농담으로 뤄하이총과 페이치가 눈과 코가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를 주목하게 되었고, 점점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죠.

 

 

2010년,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했을 당시 뤄하이총은 37세였습니다.

 

 

 

 

 

그들이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인 2009년 10월, 화이 브라더스(华谊兄弟)가 상장되었고, 54만주를 가지고 있던 뤄하이총은 주주 순위 4위로 올랐고, 이로써 중국 연예계 절반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뤄하이총은 자만하지 않고 항상 겸손했습니다. 결혼한 후 그녀는 일에서 가정으로 무게중심을 옮겼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던 뤄하이총은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일을 접고 가정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한 방송에서 뤄하이총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많은 엄마들처럼 매일 아침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저녁에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러 가며, 딸들의 모든 일과 공부, 생활에 함께 참여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였습니다.

 

 

 

 

 

뤄하이총은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지만, 아이가 어려울 때 필요한 도움을 줘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터득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뤄하이총은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하는 것을 "관리동년(管理童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이 단계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함께 하는 것과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뤄하이총은 아이에게 발레와 피아노를 선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선물을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고 합니다. 여자 아이가 성장하면서 많은 일을 겪어야 하는데요,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며, 삶의 여러 종류의 변고를 겪어야 하지요. 그런데 늘 스스로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항상 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뤄하이총의 교육 방식에 대해 남편 페이치도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들은 여전히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고 있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뤄하이총이 운이 좋은 것이 그녀가 시집을 잘 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 자체가 훌륭하고 현명하고, 활달하기 때문에 그녀 자신의 인생 무대를 밝게 빛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뤄하이총의 은사가 그녀에 대해 내린 평가처럼 말이지요. "이 아이의 첫 인상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녀는 눈으로 말을 할 수 있어서 마치 유리잔 속의 물처럼 투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9114751970102908650%22%7D&n_type=-1&p_fr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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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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