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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재벌 정가(郑家)의 상속권 문제?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는 사극이 자주 방영되었다는데요, 다양한 사극에서 궁투의 무서움에 영향을 받는 것은 황자 뿐만 아니라 후궁과 비빈에게도 해당되었습니다.
황자들, 비빈들은 그 만인지상의 자리를 놓고 싸우고, 형제들은 서로 속고 속이며, 설령 가장 친한 모자 관계에 있어서도 치밀한 계산이 이어졌습니다.
봉건제도가 폐지된 이후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권력 다툼의 궁투는 여전히 재벌가들 사이에도 존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기사의 정가(郑家) 상속권 쟁탈전은 가장 대표적인 궁투 중의 하나인데요, 정가 귀공자는 가문을 위해 천억 위안을 벌어들였지만, 정작 아버지의 사생아가 나타났다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가(郑家) 가업의 역사
이 귀공자는 바로 정즈강(郑志刚)인데, 이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의 할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바로 정위통(郑裕彤)인데요, 정위통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의 일생은 전설적인 색채로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정위통은 1925년 8월 26일 광둥 순더(广东顺德)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광저우(广州)에서 비단 장사를 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집안은 넉넉했지만, 상인의 집안에서 공부는 비교적 등한시 했었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1938년 항일전쟁이 일어나자 정위통은 마카오의 저우다푸 주바오진싱(周大福珠宝金行)으로 일을 하러 갔습니다.
이 저우다푸의 창립자는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이 된 저우즈위안(周至元)이었는데요, 이 주바오싱을 통해 정위통은 저우즈위안의 금쪽같은 딸 저우추이잉(周翠英)을 알게 되었고 두 젊은이는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몇 년간 연애를 하다 두 사람은 1943년에 결혼하였고, 1956년에는 저우다푸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상속권을 물려받길 기다리던 중 부친의 사생아가 나왔던 것이지요.
정위통은 저우다푸를 물려받은 이후 사조구족금(四条九足金)을 처음으로 만들어내었고, 이 덕분에 저우다푸의 이익을 몇 배로 늘렸습니다. 그는 또 196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드비어스 다이아몬드 원석 번호판을 가진 회사를 사들여 다이아몬드를 가공하여 홍콩에서 판매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동안 보석을 취급한 뒤, 정위통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는데, 그는 보석 판매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세계 전화 및 신세계 인터넷에 눈독을 들였고, 그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다양한 인재를 영입해 홍콩 최초의 신세계전화(新世界电话)와 신세계파워네트웍스(新世界传动网)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1998년, 정위통은 버스 부문과 합작하여 설립한 신세계제일버스는 중화버스가 운행하는 홍콩섬 구 버스노선과, 신세계 제일 카페리 및 홍콩 마카오 카페리 항로로 나뉩니다. 이 버스 회사는 홍콩구의 도로 운행이 편리해지게 만들었고, 2004년 정위통은 저우다푸 명의로 도시 버스를 인수하여, 홍콩 섬 구역의 버스 노선을 통일하였습니다.
정위통은 홍콩 뿐 아니라, 이웃집인 마카오에도 투자하여 수십 년간 마카오 관광 엔터테인먼트의 지분 5%를 지켜왔습니다. 1985년, 마카오 투자확대를 위해 목돈을 들여 저우다푸 명의로 마카오 수자원공사 지분 42%, 마카오 전력공사 지분 20%를 사들였습니다.
2011년 12월 15일 언론에 따르면, 정위통은 개인 재산을 이미 천억 홍콩달러로 늘려, 마치 인생의 승리자와 같았습니다.
기업을 거느리고 또 신기록을 세우다
정위통은 일생동안 정씨 집안 천하로 만들어 놓았고, 정씨 집안의 자손은 몇 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는 피로가 쌓여 병원에 입원하였고, 그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정씨 가문의 상속권은 뜨거운 쟁탈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정위통이 세상을 떠난 뒤, 상속권은 장남인 정자춘(郑家纯)에게 맡겨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정자춘은 허약하고 병이 많아 가족 기업을 인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상속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정자춘의 장남이자 유일한 아들인 정즈강이 될 텐데요, 정즈강은 수년간 외지에서 공부했고, 금융 재테크 전공을 전공하여 10여 년간의 학습을 통해 그는 비즈니스에 대한 특별한 견해를 갖게 되었고, 회사의 관리권을 그의 손에 넘겨주며 정위통은 안심하였습니다.
정위통은 이 손자를 눈여겨 보았었고, 병이 위중해진 이후, 바로 손자에게 회사를 넘겼습니다. 정즈강은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등 자신의 능력으로 할아버지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습니다.
정즈강은 가족기업을 인수받기 전, 실제로 투자도 해보았었는데요, 그는 외국에서 돌아와 사업 자금으로 돈을 달라고 했고, 홍콩에서 에술적인 k11 매장을 운영하면서 2년도 안되어 이익을 내기 시작해, 홍콩에서 가장 인기있는 백화점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홍콩에서 성공을 거둔 후, 그는 본토 10여 개 도시를 답사했고, 그 결과에 따라 경영 모델을 조정해 중국 내 10여 개 도시에 성공적으로 상륙하였고, 최근 몇 년간 k11에서만으로도 정즈강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정즈강은 경영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 외에도 조용한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인물임에도 경호원 없이 집을 나서며, 회사에서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이는 옅은 색의 정장을 입습니다.
역시 그 실용적이고 겸손한 행동으로 정위통의 손자에 대한 믿음은 각별했습니다. 그래서 병위 위중해지자 정위통은 손자에게 회사 일을 맡겼고,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정즈랑은 k11업무를 제쳐두고 가족 기업을 승계받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승계받은 지 일주일도 안 돼,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는 할아버지의 투자 방식을 바꿔, 2012년부터 투자를 대폭 늘렸습니다.
이 밖에도 정즈강은 항저우에 투자하여, 고급 도시 종합체를 만들었고, 이 도시 종합체는 인근 도시들을 대거 묶어 주변 소도시들을 발전시켰습니다.
도시 종합체의 운영이 안정된 후, 그는 또 온라인 전자상거래의 상업적 기회를 보고 가능한 한 빨리 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 저우다푸의 보석상점의 명성을 이용하여 전자상거래 발전을 추진하였습니다. 전자상거래의 발전이 안정된 후에는, 저우다푸의 지명도와 판매량도 계속 상승하였고, 정즈강이라는 작은 변화가 정씨 가문으로 하여금 천 억 이상을 벌게 하였습니다.
사생아의 출현
따지고 보면, 정즈강은 천 억을 벌어다주었고, 상속권은 이변이 없는 한 그의 몫이고, 가족 사업이 언제 그에게 승계될지는 시간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2016년 홍콩에서 정위통이 사망하자, 상속인 지위는 자연스럽게 장남인 정자춘에게 돌아갔습니다. 정위통의 장례식에 정자춘은 느닷없이 두 아들을 데려왔는데, 이 두 아들은 그와 왕졔위(王婕妤)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로 알려졌습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점은 바로 정자춘이 두 사생아의 이름을 정위통의 부고에 적었다는 것이지요.
그의 행보로 인해, 정즈강에게 속했던 후계자 자리는 불투명해졌지만, 현재까지 정가의 기업은 모두 정즈강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생아 2명이 더 나온다 해도 그가 이길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또한 정즈강의 실력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으로서, 가족들에게 천 억을 벌어다 준 능력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막을 모르는 두명의 다른 사생아 아들들보다 훨씬 더 후계자로 적합합니다.
정씨 집안과 같은 재벌가문은 자자손손 모두 그 가업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지만, 부귀의 뒤에는 한 집안의 계승권을 두고 유혈 낭자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정즈강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진중하고 대담하며, 젊었을 때의 정위통같지만, 그의 아버지인 정자춘은 두 명의 사생아를 데리고 돌아와 아들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정씨 집안처럼 상속권 다툼의 골이 깊은 사건은 한 둘이 아닌데요, 기사를 쓴 기자는 "입현불립장(立贤不立长, 나이가 아닌 현명한 순으로 세운다)"이야말로 상속권을 물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출발점은 모두 기업을 위해 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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