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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피부색을 뛰어넘은 유쾌하고 소박한 사랑 이야기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사랑의 모습을 탐구해보고 싶다면, 천 사람의 마음 속에는 천 개의 사랑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고 햄릿에서 말합니다. 모든 사람마다 각자 다른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 같은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겠지요.
오늘 소개할 중국의 기사에서는 허난성(河南)의 한 농민이 우간다 처녀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현재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73년, 셰샤오웨이(谢晓伟)는 허난성 뤄양시 멍진현(河南省洛阳市孟津县)의 한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빈곤하여, 그는 몇 년 학교를 다니지도 못하고, 바로 외부로 나가 일을 하게 되었고, 그의 내성적인 성격은 그가 여자 아이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0이 다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비록 감정적인 면에서 그의 수확은 별 볼일 없었지만, 공사장에서 그는 정말 우수한 드릴 세공자였습니다.
2013년, 중국에서 "일대일로"를 내걸었을때, 이러한 정책 하에 우간다에 공항 고속도로가 본격적으로 지어지게 되었고, 중국의 엔지니어들과 기능공들이 대거 아프리카로 떠났는데, 그 중심에는 셰샤오웨이도 있었습니다.
이때, 하늘도 그에게 특별한 인연을 점지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우간다의 아가씨 나브리야가 이 공사 현장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 누런 피부의 중국 남자는 거의 40세가 다 되어 가지만, 나브리야의 눈에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고 합니다.
나브리야는 현지에서 미녀로 취급되었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했고, 밝은 성격을 지닌 아가씨였습니다. 그녀는 셰샤오웨이를 좋아하며 적극적으로 구애하였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던 그들은 간단한 이해로 나브리야의 특별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 관념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요, 나브리야는 요리를 돕는 일에 부지런하고 열심이었습니다. 이런 점은 셰샤오웨이에게 이 아프리카 아가씨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게 하였습니다.
식사를 하는 틈틈이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간단한 손짓을 하며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브리야는 20살 연상의 중국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평범한 하루를 골라 자신이 모은 돈으로 장미꽃 한 송이를 사서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셰샤오웨이에게 선물했습니다.
열정적인 나브리야를 마주하게 된 내성적인 셰샤오웨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했고, 공사장의 동료들은 더욱 떠들어댔습니다.
하지만 셰샤오웨이는 그녀의 구애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셰샤오웨이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이미 40세였고, 아프리카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 돌아가면, 보수적인 고향에서 얼마나 이를 두고 말이 많을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브리야는 거듭 자신은 셰샤오웨이를 기다려줄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고, 시간이 흐를수록, 셰샤오웨이는 자신이 정말로 이 아프리카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그도 더 이상 걱정하기를 포기하고 담담해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나브리야를 받아들이게 되었죠.
사귀던 중, 두 사람은 2014년 우간다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장모님은 중국인 사위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연말, 셰샤오웨이와 나브리야 부부는 귀여운 혼혈 아들을 출산하였습니다.
셰샤오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브리야에게 정말 고맙다. 만약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2015년, 우간다에 건설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완공되어, 셰샤오웨이는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나브리야는 망설임없이 아들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이역만리 떨어진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생활 습관이 다른 것 외에도 더욱 큰 문제는 바로 언어였습니다.
60대 후반의 시어머니는 나브리야의 의사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셰샤오웨이는 영어 사전을 한 권 사서, 아내에게 중국어를 조금씩 알려주었는데, 집에서는 공부를 하고, 슈퍼마켓에 가서 직접 보고 가르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6년째 중국에서 살고 있는 나브리야는, 이미 허난성의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알고 지낸 지는 8년이 되었고, 결혼한 지는 7년이 되었으며, 중국으로 온 지는 6년이 되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아들 둘을 두고 있는데요, 생활이 비록 부유하진 않더라도 행복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처자식이 생겼기 때문에, 셰샤오웨이는 더 이상 외부로 일하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2~30묘(亩)의 산초(花椒) 나무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산초가 익을 때면 나브리야는 마음이 들뜹니다.
나브리야는 집에서 전업 주부로 일했는데요, 시어머니가 나이가 많으셔서 그녀는 항상 앞을 다투어 일을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어머니가 힘드시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장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장에 가면 모든 물건들을 다 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나브리야를 만나면, 항상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나브리야는 항상 열정적으로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네요.
그녀는 또 스스러에게 중국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용메이(咏梅)"라고 합니다.
처음 중국에 왔을땐, 면 요리에 익숙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국수를 밀어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용메이는 아직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아가씨 같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그녀는 모두 알고 있는데, 일이 없을 땐 마을 집집을 쏘다니며 구경을 한다고 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용메이의 몸매는 늘씬했었는데, 이제는 살이 좀 쪘습니다.
그녀는 이것을 "행복 살"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용메이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두 아들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두 손자들을 보면 환희를 감출 수가 없다고 하네요.
어릴 적부터 이중 언어 교육을 받은 아들들은, 하필이면 영어에 흥미가 없다고 합니다. 대신 허난성의 말에는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점에 용메이는 조바심이 나서 갖은 방법을 다 생각해보았고, 아들에게 영어를 배우게 하였습니다.
지금 큰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용메이는 매번 학교에 아들을 데리러 가는데요, 그곳에 가면 어린이들이 둘러싸고 구경한다고 합니다.
큰 아들이 축구를 좋아해서, 용메이는 매일 시간을 내서 아들과 함께 축구를 합니다.
어쩌면 간단한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로만 하는 것은 그렇겠지요.
그녀는 핸드폰으로 음악도 많이 듣고, 혼자 춤도 춥니다.
셰샤오웨이는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서 그녀가 춤추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녀도 떠들썩 하게 놀고 있으면, 그는 웃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이 아름답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아들과 함께 토끼에게 먹이도 주고요.
즐거울 때는 마음껏 한 계단씩 뛰어오릅니다.
춤 솜씨가 프로인지 아닌지는 신경쓰지 않아요.
그저 즐거우면 됩니다.
이러한 그녀의 밝고 명랑한 모습에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그녀의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었다고 합니다.
가끔은 남장도 하고, 남편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셰샤오웨이도 이러한 귀여운 아내의 장난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하네요.
그녀는 또 오토바이를 타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 이후엔 외출할 때 더욱 편해져서 좋다고 하네요.
스스로 감독, 연출, 연기를 다 맡아서 집에서 연극을 하는 며느리가 집에 있다면 누가 즐겁지 아니할까요.
또한, 용메이는 노인을 공경하는데, 셰샤오웨이의 가족들을 진심으로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고 세심하게 신경써줍니다.
2018년, 셰샤오웨이는 용메이를 데리고 중국 CCTV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향약(乡约)>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움을 샀습니다.
2020년, 셰샤오웨이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CCTV의 <황금100초(黄金100秒)>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곳에서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불렀는데,
두 사람의 사랑이 깃들어 낭만적인 색감이 짙게 배어나오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2021년, 읍내에서 "좋은 시어머니", "좋은 며느리" 선발대회에 용메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2020년 "좋은 며느리"에 최종 선발되어, 큰 붉은 꽃을 달고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읍내에서는 그녀에게 전자동 세탁기 한 대를 상품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국수로 셰샤오웨이에게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에서 그녀는 중국에서 아주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용메이는 외국인 체류 허가증을 받아, 두 아이들의 호적도 잘 처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소소한 하루는 오늘도 간단하고 또 행복합니다.
이 아프리카 며느리에게 셰샤오웨이도 무척 애지중지합니다.
용메이가 집을 그리워할까봐 걱정하기도 하죠.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우간다로 같이 돌아가자고 했는데요,
시어머니는 용메이를 칭찬하는데 입이 마를 날이 없다고 합니다.
부부 두 사람은 항상 웃고 있고, 용메이는 항상 남편을 정답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역만리 떨어진 중국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어떤 나라든, 어떤 피부색이든, 사랑은 영원한 화두입니다. 두 사람이 마음이 맞기만 한다면 아무리 힘든 나날도 꽃길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셰샤오웨이와 용메이를 보면, 그들에겐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참 행복한 사랑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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