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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深圳)에 후난(湖南) 사람이 많은 이유?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 선전(深圳)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후난(湖南)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나 직장을 옮길 때 보면 샹탄(湘潭), 창샤(长沙), 천저우(郴州), 화이화(怀化) 등 후난의 각 도시 출신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더욱 커진다고 하는데요.
백화점, 산책로, 먹자골목 등을 걸으면서 후난요리 전문점, 창샤 스타일 음식점, 후난 쌀국수집 등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밖에 나가면, 길거리의 포장마차나, 가게들, 과일을 파는 상점 등등 곳곳에서 들려오는 말투들이 모두 한 지방에서 온 것 같이 들려오는데요, 물어보면 하나같이 모두 후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01. 선전의 10명 중 3명은 후난 사람이다
선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2019년 선전에 상주하고 있는 인구 1348.88만 명 중 849.1만 명이 외지인이라고 합니다.
이 849.1만 명의 외지인들 중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있는데, 광둥, 후베이, 쓰촨, 허난(广东、湖北、四川、河南) 등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 중 후난 사람들이 외래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어서, 약 3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네요.
후난의 많은 3,4선 도시들의 총 인구가 300만 명이 안 되고, 창샤의 상주인구 역시 800만 명인데 비해서 선전에만 무려 300만 명에 육박하는 후난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선전의 10명의 외래인구 중 3명이 후난사람인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전의 후난 사람들은 각 업종에 분포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창업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공장의 생산라인 노동자이며, IT 기업의 프로그래며, 길거리 상가의 작은 가게 사장님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네티즌은 자신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담임 선생님이 후난 사람이었다는 글도 올라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인구수가 선전의 곳곳에 후난 요리 전문점들이 꽃피우게 하였습니다.
대중의 평가를 들어보면, 약 7000여 개의 후난 요리 전문점이 있는데, 그 수량은 창샤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후난 요리 전문점은 대부분 후난 사람들이 열었는데요, 그들은 선전에 와서 후난의 맛(湖南的味道)을 살렸고, 이것은 또한 선전의 맛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후난 사람들은 선전에 와도 고향을 떠난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하네요.
02. 300만 후난 사람들은 왜 선전을 선택한걸까?
요 몇 년 동안, 갈수록 많은 후난의 젊은이들이 선전에 와서 일하고,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들을 모두 거느리고 와서 중장년층까지도 모두 함께 일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길래 이렇게 많은 후난 사람들이 선전에 오게된 걸까요?
사실 두 지역간 거리가 가까운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후난성은 광둥성과 인접한 이웃 형제나 다름없고, 기후가 비슷하여 베이징이나 상하이 보다는 광둥으로 가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겠지요.
둘째는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입니다. 12306이 개통되고 나서, 선전에서 후난까지 열차가 하루 100번 이상 운행되고 있어서 고향에 가기 편하고, 고속철이 개통된 후 두 지역간 거리가 4시간 미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선전에는 일자리 수요가 많고, 후난보다 일할 기회가 더 많다는 점과, 지자체의 좋은 정책도 한 가지 이유로 꼽힙니다.
현재 중국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받는 교육은 훨씬 진보적인데요, 예를 들어 건축 설계, 뉴미디어, IT, 전자상거래 등과 같은 업종들은 후난에서는 잘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선전에서는 더욱 나은 자원이 있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선전을 선호할 수 있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가까운 친척과 친구가 광둥성에 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고향 사람들이 또 다른 고향 사람들을 데리고있거나, 친척이 친척을 데리고 있기 때문에, 서로 보살펴 줄 사람이 있다면 자연히 광둥에 가는 사람도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물론, 선전 외에도 후난 사람들은 광둥성의 다른 도시들, 예를 들면 광저우 포샨 둥관(广州佛山东莞) 등에도 후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서남북 중에서 부자들은 광둥으로 온다(东南西北中,发财来广东)"는 이 말은, 후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03. 선전이라는 곳은 후난 사람들의 "지반(地盘)"이다.
선전에 후난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말은, 거리마다 후난 요리 전문점이 많다는 것이 아니고, 푸텐의 스샤춘(福田的石厦村)을 말합니다. 바로 전설의 "띠거춘(的哥村, 택시기사 마을)"이죠.
90년대 부터, 이미 후난 요우현(攸县)사람들이 선전에 와서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스샤춘에 정착하여 후난 사투리를 써 가며 선전 곳곳을 누비며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렸고, 자신의 땀방울로 인생 첫 금맥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때 택시 사업은 매우 쉬워서, 매달 만여 위안의 순 수입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고향을 등지고 올라온 시골 사람들에게 선전의 택시 시장은 온통 황금밭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많은 요우현 사람들이 고향 친척들을 따라 스샤춘으로 와서 택시기사가 되었습니다.
한때 스샤춘에는 요우현 출신의 택시 운전기사가 3000여 명에 달했고, 그 사람들의 가족과 다른 일을 하는 요우현 사람들을 포함하여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였었습니다. 그래서 후난 본토 요우현 외에 가장 밀집도가 높은 요우현인들의 밀집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스샤춘에 가면, 여전히 후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데요, 채소 시장에 가면 향간(香干), 납육(腊肉), 홍고추(红辣椒) 같은 후난의 특색있는 음식들이 도처에 널려있고, 마을의 식당, 가게, 채소가게 까지도 직접 '요우현(攸县)'이라는 말을 써서 거의 후난 사람들의 지반(地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로, 후난 사람들의 "고생을 참고,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거칠고 억센" 개성 때문에, 적지 않은 후난 사람들이 자신의 힘든 노동에 의지하여 선전에 집을 사고, 차도 사고, 저축까지도 조금 남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아마도, 선전에 그렇게 많은 후난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정신과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이 뼛속에 깊이 있어서, 이것이 선전과 일종의 정신적인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후난 사람들은 "고생을 참고,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거칠고 억센" 이 성격으로 그들이 대도시에 가서 더욱 개척하기를 원하게 되었고, 이것이 지금의 선전의 '띠거춘'을 형성하고 선전에서 창업과 사업을 하는 후난인들이 많아지게 되어 도시의 건설에 크게 기여하게 된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선전은 다양한 문화와 인재가 모여들고, 다양한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용광로 같은 곳이지요.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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