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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궁의 벽돌이 파손되자 드러난 600년 전의 비밀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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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궁의 벽돌이 파손되자 드러난 600년 전의 비밀은..?

hanyuku 2021. 2. 1.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의 고궁(故宫)은 명나라 왕조의 수도에 있는 궁궐이었습니다. 이 궁궐은 1406년에 축조하기 시작하여, 당시의 최첨단 기술로 14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 궁궐은 건립 이후 중국 땅 위에서 자리잡고 명나라 뿐만 아니라 후대의 청나라에서도 도성(都城)으로 여겨지며 약 600년간 존재해왔습니다. 그런데 고궁의 바닥 벽돌이 파손되어, 인부가 들춰내자 600년 전의 비밀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전문가들은 이것을 '주체심호한(朱棣心好狠)'이라고 하였습니다.

 

 

 

 

 

명나라 3대 황제인 주체(朱棣)가 당시 북경으로 천도한 이유는 당시 북방의 원나라 세력이 강해 주체가 북방 지역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남경(南京)에서 북벌대막을 위해 출병하려면 돈과 물자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아예 북쪽으로 도성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경(燕京, 북경의 옛 이름)은 그의 오랜 근거지인 반면, 남경은 오히려 주윤문(朱允炆, 명나라 2대 황제)의 오랜 근거지였지요. 그는 남경에서는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없어서 북쪽으로 천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남경은 너무 지나치게 작고 아늑한 맛이 있었는데, 수도로서는 사실 부족했던 점을 감안해 북경으로 천도를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북경 천도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북쪽에 견고한 도성을 쌓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북경은 명나라의 전선(前线)에 해당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튼튼하게 대비해야 했습니다. 이 점은 나중에 경성 보위전(京城保卫战)에서도 알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주체가 지은 이 북경의 궁궐은 그야말로 철옹성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수많은 건축 엔지니어들을 초빙하였는데, 예를 들면, 양청, 채신, 괴상(杨青、蔡信、蒯祥) 등입니다. 그중에서도 괴상은 영락(永乐) 연간 최고의 엔지니어였습니다. 그래서 이 궁궐은 거의 당시 명나라 최고의 건축 기술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고궁이 어떻게 600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것일까요?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고궁의 수리 경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고궁은 지금은 황실의 궁전이 아니라 온 국민이 둘러볼 수 있는 관광 명소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고궁은 관람객들이 관람하는 과정에서 일부 훼손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을 두고 전문적으로 고궁을 수리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600년 전 건축물이기 때문에 보수와 정비가 필수적이지요. 당시 고궁의 마루 한 구석이 심하게 훼손된 것을 발견하고 작업자들은 인부들을 배치하여 수리를 맡겼습니다.

 

 

원래는 지면을 모두 뜯어 다시 수리하자고 건의할 정도는 아닌데, 지면이 비교적 심하게 파괴되어 전문가들이 부득이하게 인부들에게 지면을 뜯어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해체로 인해 문제가 발견된 것입니다. 한 겹을 다 뜯어내고 또 한 겹이 있어서 인부들이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고 계속 작업을 진행하자, 사람들은 이 고궁 바닥의 아래가 무려 15겹의 층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죠! 주체는 대체 왜 이토록 많은 벽돌을 쌓게 한 것일까요? 그리고 또 그는 어떻게 이 비밀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꽁꽁 숨긴 걸까요?

 

 

 

 

 

사실 주체는 명나라의 법정 황위 계승자가 아니고, 진짜로 황제가 될 사람은 그의 맏형인 주표(朱标)였으며, 아버지 주원장(朱元璋)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아들도 주표였습니다. 그러나 주표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결국 황제가 주표의 적장자인 주윤문(朱允炆)에게 황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주체는 이에 대해 내심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지요.

 

 

게다가 주윤문이 황위에 오르자, 삭번운동(削藩运动)이 거세게 일어나 1399년 정난의 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주체가 주윤문을 꺾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것 역시 주체에게는 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암살할까봐 두려움에 떠는 마음의 병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던 것은 방효유(方孝孺)의 후손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궁을 지을 당시 특히 황궁의 보안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였고, 특히 지하에서 땅굴을 파고 나와 자신을 습격하지 못하도록 주의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대명경성공사 총설계사(大明京城工程总设计师)들은 거듭된 논의 끝에 현대 기계를 들고 땅굴을 파더라도 바닥을 뚫기 어렵고, 또한 땅바닥을 파는 동안 그 위의 사람들을 미리 깨울 수 있도록 벽돌 15층을 지하에 쌓았습니다.

 

 

이러한 구운 벽돌은 일반적으로 한 장 한 장이 모두 황금같은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 벽돌들은 전문적인 장소에 가서 흙을 파낸 후, 정교한 가공을 거쳐서 물을 넣고, 다른 재료의 흙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 여기에 기포가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1년 이상 걸리고, 그 다음엔 벽돌을 굽는 데만 해도 5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벽돌 한장의 총 제작 기간은 약 720여 일로, 이러한 제작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금보다 싸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느리게 만든 방식인 만큼, 이러한 제작 방식은 튼튼한 벽돌의 안전성을 보장합니다. 주체는 이러한 비밀이 새어 나갈까 봐 불안해하다가 인부들이 바닥을 모두 완성하고 나자 그들에게 약을 먹여서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로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글자를 아는 비율이 적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는 경성 바닥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까지 사용해가며 황궁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확실히 잔인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9171473679207580832%22%7D&n_type=-1&p_from=-1

 

故宫地砖损坏,工人撬开后发现600年前的秘密,专家:朱棣心好狠

故宫,是明朝的都城。它是朱棣于1406年开始建造的一座当时的“超级工程”,这座都城花了14年的时间才建成。不过,这座都城自建立以后就一直矗立在中国的大地上,不仅仅是明朝的都城,也

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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