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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하문명(华夏文明)의 10대 수수께끼는?! 본문

Chinese Culture

화하문명(华夏文明)의 10대 수수께끼는?!

hanyuku 2021. 1. 19.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화하문명의 10대 수수께끼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바로 역사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화하문명의 10대 수수께끼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역경(易经)>의 수수께끼

 

 

 

 

 

<역경>은 <주역(周易)> 혹은 <역()>이라고도 불리며, 중국 전통문화와 사상문화에서 자연철학과 윤리실천의 기원이 되는 점괘술의 세계 최고의 유서 깊은 원작입니다. 옛날에는 제왕의 학문으로 정치가, 군사가, 상가(商家)의 필수적인 기법으로 시종일관 군경(群经)의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역사적인 원인 때문에, 연구의 단층이 생기고, 알맹이가 없어지기도 하였지요. 그래서 <하도(河图)>, <낙서(洛书)>, 선천괘, 후천괘, 및 육십사방진(先天卦、后天卦,以及六十四方阵) 등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책은 언제 완성된 것일까요? 그리고 저자는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복희씨(伏羲氏)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문왕(周文王)이라고도 하는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2. <산해경(山海经)>의 수수께끼

 

 

 

 

 

수많은 중국 고대 전적(典籍)들 가운데 <산해경>은 시종일관 난해한 이수(异数)였습니다. <산해경>은 예로부터 지리서(地理书)로 취급받았었지만, 학자들이 아무리 찾아봐도 그러한 산이 어디에 있는지, 물은 어디로 흐르는 것인지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신화에 대한 설명은 아직도 분분합니다. 옛사람들은 왜 이런 저작을 남겼을까요? 산해경의 저자와 책이 만들어진 시점도 불확실합니다.

 

 

<산해경>은 총 18권으로, <산경(山经)> 5권, <해경(海经)> 8권, <대황경(大荒经)> 5권이 있습니다. 내용은 삼라만상에 관한 것이며, 주로 고대 지리, 동물, 식물, 광산, 신화, 주술, 종교 등을 기술하고 있으며, 고사(古史), 의약, 민속, 민족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구체적인 완성 연대 및 저자는 이미 고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 <산해경>은 우리들의 눈에는 더욱 신화서(神话书)가 되어버렸습니다.

 

 

3. <추배도(推背图)>의 수수께끼

 

 

 

 

 

<추배도>는 중화 예언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기서(奇书) 중 하나로,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당나라 정관(贞观, 627~649년, 당 태종 이세민의 연호) 연간에 당나라와 후대의 중요 사건들을 예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에는 모두 60개의 그림이 있는데, 60개의 갑자와 괘를 각각 따서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정확한 예측 때문에 역대 왕조의 위정자들은 이에 놀라 줄곧 금서로 다루었었습니다. 과연 <추배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민간에 널리 알려진 <추배도>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청나라 학자인 김성탄(金圣叹)이 평어와 주해를 단 <추배도>가 있는데, 간단하게 줄여서 김판(金版)이라고 부릅니다. 또 하나는 이세유(李世瑜) 선생이 독일의 한 간행물에서 발견한 것으로서, 가장 원형과 가깝다고 알려진 판본으로,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판본이라고 합니다.

 

 

 

4. <하도(河图)>, <낙서(洛书)> 의 수수께끼

 

 

 

 

 

 

<하도>와 <낙서>는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두 폭의 신비로운 도안으로, 중화 문화의 역경팔괘와 음양오행술수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현존하는 관련 사료들을 보면, <하도>와 <낙서>의 근원은 유구하고, 미궁에 빠져있어서 분명하고 확실한 해답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상고시대의 복희씨(伏羲氏) 때, 낙양 동북의 맹진현(洛阳东北孟津县) 경내 황하에서 용마(龙马)가 떠올라, '하도'를 등에 지고 복희에게 바쳤습니다. 복희는 이를 팔괘로 분하였고, 후에 <주역>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우임금 시기에, 낙양 서낙녕현 낙하(洛阳西洛宁县洛河)에서 신구(神龟)가 나타나, 등에 '낙서'를 지고 와 우임금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우임금은 이것으로 치수(治水)에 성공하여 마침내 천하를 구주(九州, 중국 상고시대 행정구역)로 만들었습니다. <역·계사상(易·系辞上)>에서 말하기를, "황하에서 하도가 나왔고, 낙하에서 낙서가 나왔다고, 성인들이 이렇게 말하였다(河出图,洛出书,圣人则之)"라고 합니다.

 

 

5. 봉황의 원형에 관한 수수께끼

 

 

 

 

 

 

중국에서 신화 속 봉황은 남쪽의 단혈산에서 자라고, 오색 찬란하며, 노래와 춤에 능하고, 천하가 태평하다는 징조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에서는 태양 숭배와 관련하여, 고대 이집트인들이 봉황을 불생불사와 연관시켰다고도 전해집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봉황이 부활과 사후 생명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봉황은 중화민족의 전통문화 중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항상 용과 함께 불리고 있습니다. 봉황은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하여 조류의 왕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봉황 같은 새는 없는 것으로 옛 사람들이 허구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비록 허구라고는 하지만, 상상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봉황은 어떤 새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을까요? 봉황은 꿩을 주체로 하여 매 등 다양한 새의 전형적인 모습을 융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봉황의 원형과 관련해선 멸종된 거조, 극락조, 타조(灭绝的巨鸟、极乐鸟、鸵鸟)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6. 염라대왕의 원형에 대한 수수께끼

 

 

 

 

 

장강(长江)의 중류, 삼협(三峡)에 임박한 풍도(酆都)라는 작은 지역은 산을 뒤로하고 강에 인접해있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곳은 염라대왕이 있는 구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은 당송을 시작으로, "옥황전", "염왕전", "음양계"(“玉皇殿”、“阎王殿”、“阴阳界”) 등 크고 작은 48개의 묘가 차례로 세워져 있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귀성(鬼城)"이라고 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우두머리를 염라대왕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염라대왕은 전설에 의하면 본인은 "제1전에 있었는데, 억울하게 죽었고, 여러번 다시 태어나며 누명을 씻어서, 이 궁전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당시대 이래로, 청대애 이르기까지 여러 염라대왕 원형설이 유행하였습니다. 하나는 한나라를 사로잡은 용맹한 수나라 장수이고, 둘째는 북송의 명재상 구준(寇准)입니다. 셋째는 북송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이고, 넷째는 북송의 용도각 직학사 포증(龙图阁直学士包拯)입니다. 다섯째는 남송의 강승상(江丞相)입니다.

 

 

염라대왕의 직위는 이 다섯명이 돌아가며 각각 잘 짜여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의 실제 모습은 아직 통일된 설이 없습니다.

 

 

7. 아방궁(阿房宫) 소각 수수께끼

 

 

 

 

아방궁은 중국에서 '천하 제일궁(天下第一宫)'으로 불립니다. 수천 년 동안, <아방궁부(阿房宫赋)>에 나오는 '초인일화, 가련초토(楚人一炬,可怜焦土)'는 아방궁의 마지막 운명의 증거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자들이 답사하는 과정에서 아방궁이 소각된 흔적이 없다고 전해지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항우소아방궁(项羽烧阿房宫)은 아마도 사람들이 상상해낸 것일 뿐, 아방궁은 여태까지 소각된 증거가 없거나, 혹은 전혀 건립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방궁이 존재했던 것인지에 관해서는 역사적 근거가 더 발견되어야만 천년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입니다.

 

 

 

8. 항우(项羽)가 강동을 건너지 않으려 했다는 수수께끼

 

 

 

 

 

"지금까지는 항우는 강동을 건너려 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초한의 항우는 패하여 결국 오강(乌江)에서 자결하게 되었는데요, 항우는 왜 오강을 건너지 않았을까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갖가지 설을 제기해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서초패왕(西楚霸王)이 강동(江东)을 건너지 않은 것은, 우희(虞姬)가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제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항우가 오강을 건너려하지 않은 것이 고귀한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기도 하며, 백성들의 전쟁 고난을 하루 빨리 해소하기 위해서라고도 생각합니다.

 

 

항우는 왜 오강을 건너지 않은 걸까요? 수천년 동안 문인들이나 시인들이나 역사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9. 매비(梅妃)의 수수께끼

 

 

 

 

당 현종 이융기(唐玄宗李隆基)의 애비(爱妃)를 언급하면, 사람들은 "춘소고단일고기(春宵苦短日高起), 종차군왕불조조(从此君王不早朝)"의 귀비 양옥환(贵妃杨玉环)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후대에 전해져 수많은 시, 문, 사, 곡, 소설, 희곡, 민간전설, 신화 이야기(诗、文、词、曲、小说、戏剧、民间传说乃至神话故事) 등의 각종 방식으로 기술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옥환에 앞서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매비 강채평(梅妃江采萍)도 있었습니다. 양옥환이 입궁한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이 총애를 받게 되자 그들은 궁중에서 서로 절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옥환이 총애를 독차지한 후, 매비는 동궁에서 홀로 살다가 불명예스럽게 죽게 되었는데, 그녀의 비참한 처지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남겨주었습니다.

 

 

10. "금궤지맹(金匮之盟)"의 수수께끼

 

 

 

 

 

송 태조 조광윤(宋太祖赵匡胤)이 병사한 후, 황위를 동생인 조광의(赵光义)가 물려받았는데, 조광의가 황위를 물려받은 것은, "금궤지맹"의 명을 받을어 태후(太后)를 봉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후인들이 "금궤지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 사건은 오리무중이 되었습니다.

 

 

<송사(宋史)>에는 "금궤지맹"의 이야기가 도처에 있는데요, <두태후전(杜太后传)>에는 "건륭3년(建隆三年, 기원전 961년)에 태후가 병들어 태조는 늘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태후가 자신의 명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재상 조보(赵普)를 궁에 불러들였다. 태후가 태조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천하를 얻었는지 아는가?" 태조 왈: "내가 천하를 얻은 자인 것은, 모두 선조와 태후의 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이른바 "금궤지맹"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 맹약의 원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역사의 비밀은 바로 그것을 되돌릴 수 없고, 진정으로 탐지해내기 어려우며, 단지 오랜 노력 하에 당시의 원형을 조금씩 알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9391219341430870560%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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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d.baidu.com

 

지금까지 화하문명의 10대 수수께끼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재미있으셨나요?^^

역사 속에 수수께끼로 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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