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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대만 가수 장우생(张雨生)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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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대만 가수 장우생(张雨生)

hanyuku 2020. 9. 28.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요즘 가요계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들의 팬들도 점차 시장의 영향력을 장악해가고 있는데요, 막강한 신 세력에 맞서 많은 구 세대 가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몸값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에서도 점차 많은 사람들이 옛 노래를 좋아하고 많이 듣고 있다는데요, 오늘 소개할 이 가수는 바로 중국 가요계에서 밝게 빛난 후 혜성처럼 떠나버린 장우생(张雨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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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생은 1966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모두 평범한 노동자였습니다. 비록 가정생활은 어려웠지만, 그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남동생 둘과 여동생 하나가 생겨서 장남인 그는 집안의 모든 일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시절 장래희망은 엔지니어였는데, 왜냐하면 엔지니어가 돈을 잘 버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각종 지식을 쌓았습니다. 생활 속에서 그는 여동생을 끔찍이도 아꼈습니다. 여동생은 자신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었지요. 두 사람은 늘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장우생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의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엔지니어가 되는 길을 밟고 있었습니다.

지식에 항상 목말라 있던 장우생은 다른 사람들이 노는 동안 줄곧 책을 들고 읽었는데, 그의 이와같은 노력은 선생님과 친구들도 모두 잘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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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뜻밖에도 14살이었던 여동생이 물에 빠져 영원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장우생은 몸져누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여동생이 나중에 자라서 스스로 무대위에 올라 노래하고 싶다던 꿈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여동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꼭 동생의 소원을 담아 무대위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는 대학교 3학년때 노래자랑에 나가 <타문(他们)>이라는 노래 한 곡으로 심사위원들과 학우들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고, 곧 전교의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부모님에게 이 꿈을 알렸다가 반대에 부딪혔고, 부모님은 나중에 가수가 되기는 커녕 학업마저 그르칠 수 있다며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권유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는 바에서 메인보컬로 노래를 불렀고, 한번은 공연도중 옹효량(翁孝良)을 만났습니다.

 

 

 

 

그는 당시 유명한 음악 제작자였는데, 장우생은 그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그 후 장우생의 <아적미래불시몽(我的未来不是梦)>이라는 곡이 탄생했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 장우생을 단숨에 탑스타로 만들어줬고, 모든 거리마다 이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이어서 대형 기획사에서 그를 앞다투어 모셔가려고 했는데, 그는 개인 앨범으로 <천천상니(天天想你)>를 발표했습니다. 이 싱글은 당시 30만장의 판매량을 돌파하며 1위를 차지했습니다.

 

 

 

 

거리마다 그의 음악으로 인기를 불태우며 그는 음악계에 자리를 잡았고, 영화 <칠필랑(七匹狼)>에도 출연하였습니다.

장우생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년간 내공이 쌓인 후 실력파 뮤지션으로 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해(大海)>, <매매만안(妹妹晚安)>, <아기대(我期待)> 등 명곡들을 성공적으로 작곡했고, 장우생은 음악 프로듀서로도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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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그의 새 작품을 기대하던 순간, 뜻밖에도 그의 발길이 뚝 끊어졌습니다.

장우생은 귀가 중에 음주운전으로 과속을 하던 중 브레이크를 잘못 밟아 분리대를 들이받았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1997년 11월 12일 오전 11시 48분, 여러 날 동안의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장우생은 사망했습니다.

병원 입구에는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었고, 각 방송사와 술집에서는 모두 장우생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이후 장우생의 친구의 증언으로 "그는 졸음운전만 했을 뿐,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라고 알려졌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팬들이 느꼈던 고통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던것은 그의 가족들이었겠지요.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여자친구와 졸업 후 돈을 모아 집을 사자는 두 사람의 약속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장우생이 세상을 떠난 후 여자친구는 홀로 주택 담보대출금을 갚겠다고 버티며,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든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0년 동안 독신으로 지냈던 그녀는 결국 장우생의 부모와 자신의 부모가 달래어 마음을 접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장우생의 부모는 딸을 잃은 슬픔에 더하여 또 다시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고, 장우생과 그의 여동생을 함께 묻고 그곳의 이름을 "우생원(雨生园)"이라 지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이곳에 배 나무를 심고 "우생리(雨生梨)"라 불렀고, 어머니는 아들딸을 돌보기 위해 묘지 부근에 방을 정리하고 잠시 거처하였습니다.

 

 

 

 

장우생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줄곧 이곳 우생원 묘지 부근에서 살면서 아들딸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9884037478408180864%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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