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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의 묘실 문 열쇠의 비밀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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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의 묘실 문 열쇠의 비밀은?

hanyuku 2020. 6. 18.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고대 중국 황제들은 기본적으로 즉위할때부터 묫자리를 찾고, 능묘를 지었다고 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좋은 재료를 실어와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장인들을 불러와 황제를 위해 일하게 했는데, 가장 처참한 것은 능묘를 힘들게 겨우 지은 장인들이 황제가 승하한 후 황제의 관과 함께 순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는 말처럼, 장인들은 죽고 싶지 않아서 '묘수'를 생각해 냈고, 더없이 무거운 묘실 문이 닫힌 뒤에도 탈출이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황제가 왜 장인들을 함께 순장했을까요?

 

 

황제의 능묘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함께 묻힙니다. 그래서 능묘를 보호하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요, 장인들은 능묘를 만들었으니 능묘의 구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에 어떤 기관들이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장인들이 황제가 묻힌 후에 나쁜 마음을 먹고 묘실에 들어와서 보물을 훔쳐갈까 염려하여 그들을 함께 순장하였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능묘 장인들을 대규모로 살해한 것은 진 2세 후해(秦二世胡亥), 징기스칸, 자희태후 정도로 흔치 않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너무나 가혹하고 국가 발전에도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왕들은 순장제를 버리고 장인들을 내보내도록 허락했지만, 앞 사람들은 모두 나가고 마지막에 문을 닫는 장인은 어떻게 할까요?

(참고로 황제의 묘실 문은 밖에서 열리지 않도록 안에서 닫고 잠그는 구조라고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자래석(自来石)'입니다. 정릉 지하궁전에는 석문이 2개 있는데, 높이는 3.3m에 폭은 1.8m이며, 석문의 외부에는 어떠한 자물쇠나 전대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문은 안에서 닫은 것이 분명하지만, 석문은 돌덩이로 받치고 있어서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장인은 어떻게 나갔을까요?

 

 

 

 

전문가들의 거듭된 관찰 끝에 문 틈에서 오묘한 비밀이 발견되었고, 실험을 거쳐 전문가들은 그 장치를 복원해냈습니다.

 

 

먼저 석문 문축의 위쪽 하단을 모두 '공 모양'으로 만든 다음, 두 개의 석문 가운데 문틈에 표면이 두드러져 있는 홈을 하나씩 만드는데, 반드시 이 둘이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 후, 석문 안의 중심선에서 멀지않은 지면에 '앞은 얕고 뒤는 깊은 홈'을 하나 만들어서 준비 작업을 마칩니다.

 

 

 

 

닫는 석문 앞에서는 장인이 먼저 그 돌을 바닥의 홈에 넣고, 앞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유지하게 하여 돌문과 딱 접촉하게 한 후에 장인은 떠날 수 있게 됩니다. 기울어진 돌쩌귀가 압력을 가하면 문축 끝의 공 모양 롤러볼도 제 역할을 하여 두 개의 돌쩌귀 사이에 있는 볼록한 홈에 닿을 때까지 석문을 자동으로 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고분의 문은 영원히 닫히게 되고, 절대로 바깥에서 열 수 없는 문이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돌쩌귀와 롤러볼, 그리고 홈을 사용하여 자동관문을 만들어낸 고대 장인들의 지혜에 탄복하게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꺽쇠 열쇠입니다. 1956년 국무원(国务院)의 승인으로 전문적인 고고학팀이 명정릉(明定陵)을 찾아 고고학적 발굴에 착수했습니다. 이곳에서 신기한 '꺽쇠 열쇠'가 드러났습니다.

 

 

고고학팀원들이 정릉 지하궁전의 마지막 대문 앞에 와서 모두 함께 밀어보았는데도 대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문 안에 첫번째 방법으로 소개되었던 조석(条石)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고고학팀 대장인 조기창(赵其昌)은 어떤 '열쇠'나 '비밀번호'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결국 광대한 사료 속에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노력을 들여 숭정황제의 장례기록에서 '열쇠'를 찾아냈습니다.

 

 

 

사료에서 숭정황제가 능묘를 건설하지 않아 전귀비(田贵妃) 묘에 묻히게 되었고, 장인들이 전귀비 묘의 문 앞까지 내려와서 문이 막혔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들은 꺽쇠 열쇠라는 물건으로 석문을 열고 숭정의 관을 놓고서, 열쇠를 뽑아 석문을 닫고 떠났습니다.

 

 

'꺽쇠', 말 그대로 구부러진 쇠를 말합니다. 조기창은 실험에 착수한 끝에 작은 손가락만한 굵은 철근을 구해 꼭대기를 'U'자 모양으로 구부려서 마치 반이 빠진 것 같은 모양의 열쇠를 만들었습니다. 10월 5일, 고고학팀 대원들이 이 열쇠를 가지고 능묘 문앞에 와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열쇠를 끼워넣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꺽쇠 열쇠가 문틈을 통과하게 하고, 돌부리에 닿게 한 다음, 'U'자를 가로질러 돌부리를 씌운 후, 안으로 계속 밀어넣어 돌쩌기를 세웠습니다. 열쇠를 쥔 조기창 대장은 움직이지 않은채 다른 대원들을 불러 문을 밀게 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무게의 무거운 석문이 열렸습니다. 옛 사람들의 지혜에 탄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9960867008732613823%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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