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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흉노족은 오늘날 어느 민족일까?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匈奴未灭,何以家为(흉노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어찌 집을 위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은 한무제 때 흉노와 맞서 싸운 영웅 곽거병(霍去病)이 했던 호언장담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흉노족은 한나라 왕조때의 골칫거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역사에서 흉노족은 골칫거리일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진나라 초기부터 흉노족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었는데, 그들은 북방의 유목민족으로 중원의 정권을 괴롭혀왔습니다.
진시황 때는 북쪽으로 장성을 쌓아 흉노족을 막았고, 한나라 때에는 흉노족과의 화친을 통해 침략의 고통을 어느정도 완화시켰습니다. 한무제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흉노족을 패배시킬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 왕조는 여전히 흉노족에게 시시각각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와 함께, 역대 왕조들은 흉노족에 대해 일정한 대응책을 마련했으나, 후세 왕조의 탄압에 밀려 옛날 한때 난폭했던 흉노족은 중국 역사에서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흉노족에 대한 전설만이 남아있을 뿐이죠.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흉노족은 역사상 크고 작은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흉노의 전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요? 고대의 흉노족은 현대의 어느 민족일까요? 그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사실, 고대 흉노적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들의 기원과 결말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1. 흉노의 기원과 발전
'흉노'하면, 중국 북부에 위치한 강력한 유목민족으로 전투력이 강해서 한때 중원의 정권을 위협했던 민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흉노에 대해 사람들은 특별히 좋은 인상이 없고, 사납고 야만적이며,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모습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실, 흉노와 화하민족(华夏民族)은 동종(同宗)으로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기·흉노열전(史记·匈奴列传)>에 의하면, "흉노, 그 선조인 하후씨 묘족은 순유라고 한다. 당우 이상의 시기에는 산융, 험윤, 훈육이 있었고, 북만에 거주하며 목축에 따라 이동한다.(匈奴,其先祖夏后氏之苗裔也,曰淳维。唐虞以上有山戎、猃狁、荤粥,居于北蛮,随畜牧而转移。)"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즉, 흉노도 염황(炎黄, 중화민족의 선조)의 자손이며, 하나라 말기에 중국 북부로 건너가서 살았는데, 그들은 당시 북부의 거친 땅에 거주하면서 유목을 생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흉노'라고 불렸습니다.
사실, 진나라 이전에는 흉노가 북방의 거친 땅의 유목민족이었을 뿐, 당시에는 중원지역 제후들의 패권 다툼에 개입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진시황이 6개국을 통일한 이후에야 비로소 북쪽의 흉노는 발전하고 점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흉노가 커진 것을 안중에 두고 있던 진시황은 진나라가 세워지자 30만 진나라의 정예를 이끌고 장성을 쌓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한나라 초는 흉노의 침략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로, 당시 흉노의 수령은 유방의 부인인 여치를 뺏겠다고 큰소리쳤지만, 한나라 개국군 장교들은 아무런 실질적인 의사표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번쾌(樊哙) 한 사람만이 10만 병사를 내어 흉노를 공격하고 싶다고 주장했지만, 번쾌도 말만 했을뿐 흉노와 어떠한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한나라에서는 일부 귀족 여인을 흉노 족장에게 시집보내고, 흉노와 잠정적인 화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때 한나라와 흉노의 관계는 풍전등화와 같아서 한무제 때 중원왕조와 흉노와의 관계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흉노는 더 이상 곳곳에서 중원왕조를 짓누르는 유목민족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무제 때 명장(名将)이 배출된 덕분에 중원 왕조도 흉노에게 "우리 한 나라를 범하는 자, 멀리 있어도 반드시 징벌한다(犯我大汉者,虽远必诛。)"는 것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이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나라 이후 골치아픈 흉노 문제가 점차 해결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한무제 때는 어떻게 흉노를 다스렸을까요?
실제로 위청(卫青), 곽거병(霍去病)이 북상하여 흉노에 맞서 싸운 사건에서 한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흉노에 대한 한나라의 치명타
한무제 때, 위청과 곽거병은 북상하여 흉노를 쳤습니다. 흉노에 맞서 싸우다가 흉노를 크게 이긴 일은 흉노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게 되었습니다. 한무제 원수 4년(汉武帝元狩四年), 흉노는 이미 막남에서 완전히 퇴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무제 때 흉노가 중원지역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와 흉노는 서로 잘 지내면서 중원 왕조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오히려 흉노가 한나라와 친교를 구하고, 친족을 통해 두 집안이 화친을 맺기를 원했죠.
이후 흉노는 남흉노와 북흉노로 나뉘어졌습니다. 흉노의 분열로 인해 지난날 횡행하던 유목 민족이 다른 민족들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면서 오환(乌桓) 사람들은 흉노의 지반을 빼앗아 흉노를 후퇴시켰고, 한나라 왕조는 흉노를 분화시켜 북흉노를 사막 북쪽에, 남흉노를 하조(河套)지역에 있게 하였습니다. 흉노의 옛 영광은 빛을 잃게 되었죠.
자연재해와 전란이 발생함에 따라 흉노는 이미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졌습니다. 북흉노는 특히 북방의 황량한 땅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재해는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어쩔수 없이 한나라에 의탁하여 한나라의 물자 원조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북흉노 중 일부 사람들은 서쪽으로 향해 카자흐스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북흉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었지만, 중원 왕조의 눈 아래에 있던 흉노족들의 생활도 결코 편치 않았습니다.
동한 말, 천하대란 때는 조조에게 직접 귀순해 철저히 분화되었고, 이후 남흉노는 철저히 한화되어 다른 민족에 녹아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그토록 강했던 흉노가 한무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질 것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끊임없는 연구와 사료 조사를 거쳐, 흉노의 흔적을 찾는데 성공했습니다.
3. 흉노는 어디로 갔는가?
흉노는 한나라 때 종말을 맞이하여, 한나라 황제의 강건책과 온건책을 거쳐 남북 흉노로 나뉘게 되었는데, 그 이후 흉노는 더 이상 예전의 강력한 유목민족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점점 분화되고 해체되어 흉노족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북흉노는 둘로 나뉘었고 일부는 화친을 이유로 한나라 왕조에 귀순해 56개 민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일부 흉노는 유럽을 거쳐 카자흐스탄 인근까지 갔습니다. 즉, 흉노의 일부가 유럽인의 선조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조지역에 사는 남흉노의 운명은 북흉노와 비교됩니다. 그들은 장거리를 넘나들거나 외국으로 유랑하지 않고 점차 중화민족에 동화되어 중화민족의 한 종류가 되었습니다.
후에 중원왕조는 오호란화(五胡乱华)를 겪었는데, 이때의 남흉노는 찬란한 영광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세월의 영광을 딛고 남흉노의 역사는 중화민족에 녹아들어 끝나게 되었습니다.
천백년의 변천과 발전을 거쳐 흉노인은 지금의 어느 민족이 되었는가 이야기해보면, 사실 명확한 결론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역사상의 자료를 바탕으로 흉노의 발전상을 통해 짐작해보았을 뿐입니다.
기존에는 흉노족이 현재의 만주족, 몽골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의 만주족, 몽골족은 과거 흉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겠지요.
민족 융합이 진전되면서 흉노인들도 점차 한족의 성씨를 갖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중화민족 속에 녹아들어있습니다. 중국 섬서성, 산서성, 산동성과 복건성 등지에 흩어져 있던 남흉노의 후예들은 다른 민족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으며, 오늘날 그들의 생활 방식은 다른 민족들과 똑같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이 그 옛날 괘씸한 흉노인의 후예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흉노는 중원 왕조를 끊임없이 괴롭혀서 중원 왕조의 통치에 큰 어려움을 주었지만, 한무제 이후 흉노족의 토벌에 성공하면서 그 관계는 역전되었습니다.
흉노는 세월을 거쳐 분화되고 중화민족의 일부로 녹아들었으며, 문화가 동화되면서 예전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현재 흉노족이 어떤 민족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렇게까지 동화된 것을 보아 문화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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