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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yuku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에서 개인의 능력과 청나라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청나라 황제 12명(실제로는 13명)의 순위를 매겨보았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과연 그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재미삼아 살펴볼까요?^^ 1위. 청태조 누르하치(清太祖努尔哈赤) 청태조 누르하치가 없었다면, 이백여 년의 청나라 왕조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후세의 제왕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청태조 누르하치에 비할 바는 못되는 것이죠. 이 사람들은 어린시절 힘든 나날을 보냈었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명나라 왕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그는 불평 한 마디도 없이 명나라 요동총병 이성량(明朝辽东总兵李成梁)을 을 친아버지처럼 섬기며 기꺼이 이성량의 가노(家奴)가 되려 했습니다. 이후 이성량은 보다 못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의 마지막 봉건 왕조였던 청나라가 멸망한 후, 그 궁궐은 훗날 고궁으로 보존될 수 있었지만, 14만 명에 이르는 만주족 황실 구성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01 만주족은 현재 중국의 56개 민족 중 하나로, 총 인구가 1000만 을 넘어 중국에서 소수민족 중 두 번째로 많은 인구수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1644년 이전, 청나라가 아직 중원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그 인구수가 매우 적었다고 합니다.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면서부터 만주족 귀족들이 천하를 통치하기 시작했고, 만주족들도 광활한 중원의 대지에 의지하여 번성하게 되었고 인구가 증가하였습니다. 청나라 선통(宣统) 3년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난 후 불과 1년 만에 청나라 통치가 무너지게 되었고, 민국이 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오랫동안 세계 선두에 섰었고, 여러 면에서 세계 최고였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근대사에는 피눈물과 굴욕이 가득했고, 특히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오랜 쇄국 정책으로 세계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어쩔 수 없이 나라의 문을 열게 되었고, 자신의 정권을 공고히하기 위해 영토의 할양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많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특히, 청일전쟁 후, 중국은 유신(维新)을 한지 오래되지 않은 일본에게 패배하기까지 했는데, 서구 열강은 이로써 더욱 중국의 실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중국에서 얻어갈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열심히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중국에서 강제로 중국 영토를 임차하여 토지 이용을 통해 발전하..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이연영(李莲英, 1848-1911)은 중국 청나라의 태감(太监, 환관)이었습니다. 고대에는 태감이 기본적으로 궁중 내의 잡일을 책임졌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태감이라면 이연영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연영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다큐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4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Honourable Mention"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01 이연영은 9살에 입궁하였는데, 그가 거세되던 그 순간부터 그는 어린 시절의 즐거움도 없이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삶의 길을 걸었습니다. 함풍년간(咸丰年间)에 입궁한 그는, 이후 자희(慈禧, 자희태후)의 중시(重视)를 받았습니다. 자희는 그를 위해 심지어 태감품급(太监品级)에 관한 황실조제(皇家祖制)까지 타파했고, 이연..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만약 당신이 돈을 하느님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마치 악마처럼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헨리 필딩" 예나 지금이나 사회에는 항상 양극단이 존재했는데요, 한 극단에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한 쪽 극단에는 매우 빈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견해가 있을 수 없는데요,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부유한 사람도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근본은 모두 하나의 물건인 "돈" 때문입니다. 청나라 말기에 한 호설암(胡雪岩)이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원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귀인이 도와준 덕분에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 당시 부자의 반열에 올라섰고 청나라 말기의 갑부가 되었는데요, 평생의 고생 끝에 낙이 왔으..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에서 "지부(知府)"는 봉건왕조의 중요한 관직으로,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삼년청지부, 십만설화은(三年清知府,十万雪花银, 청지부 삼년이면, 십만 은화가 생긴다)"이라고들 하는데요, 비록 여기에서의 '청지부(清知府)'가 '청렴한 지부'나 혹은 '청나라 때의 지부'라는 뜻이 아니고, 당시에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오를 수 있어서 부끄러울 것 없이 많은 재물이 생기는 직책이라고 합니다. 법을 어기지 않고도 이렇게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지부가 돈을 많이 번다는 방증이겠지요. 그렇다면, 청나라 때 '지부'는 어떤 직책이었을까요? 이른바 '지부'란 말 그대로 '부(府, 관청)'의 장관이고, '부'의 1급은 청나라 대에 설치된 '성(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