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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yuku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의 56개 민족 중 하나인 몽골족은 역사상 줄곧 "말 등위의 민족"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은 건장한 체격에, 강하고 튼튼한 신체를 지녔으며, 전장에서는 용감히 싸웠고 아시아 유럽대륙에서도 적지 않은 전설을 만들어왔습니다. 특히 냉병기 시대(冷兵器时代, 총이나 화약을 사용하지 않고 싸우던 시절)에는 뛰어난 기마술로 전장에서 승승장구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몽골족이 중국의 여러 민족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중국에 몽골인들이 가장 많은 것은 아닙니다. 인구 조사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몽골족은 거의 1000만 명 수준으로 나타나지만, 이는 큰 수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바로 몽골인이 가장 많은 국가가 인도라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전체 몽골인의 후예가 3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절대 뒤로 되돌릴 수 없다는 불가역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으며, 특히 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과거에 일어난 일은 되풀이하기 어렵게 되지요. 고대에 대한 탐구는 책의 단편적인 부분이나 일부 유물에 그치고, 이러한 자료들은 고분 발굴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고분 1기가 성공적으로 열리면서 역사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당혹감을 주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이것이 바로 인류가 끊임없이 탐지하고 발전하는 근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은 고대 오랜 기간동안 도굴범들이 기승을 부려 많은 문화재의 묘혈이 파괴되었지만, 정부가 즉시 발견하여 응급처치를 하고 역사의 신비를 살려낸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이연영(李莲英, 1848-1911)은 중국 청나라의 태감(太监, 환관)이었습니다. 고대에는 태감이 기본적으로 궁중 내의 잡일을 책임졌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태감이라면 이연영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연영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다큐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4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Honourable Mention"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01 이연영은 9살에 입궁하였는데, 그가 거세되던 그 순간부터 그는 어린 시절의 즐거움도 없이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삶의 길을 걸었습니다. 함풍년간(咸丰年间)에 입궁한 그는, 이후 자희(慈禧, 자희태후)의 중시(重视)를 받았습니다. 자희는 그를 위해 심지어 태감품급(太监品级)에 관한 황실조제(皇家祖制)까지 타파했고, 이연..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무측천(武则天)은 중국 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여성이었을 것입니다. 14세에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나이에 입궁하여 당태종 이세민(唐太宗李世民)의 여인이 되었고, 이후 그녀의 인생은 겉과 속이 다른 간사한 여인으로의 성장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입궁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이 여자가 두 남편을 섬기며 부자(父子) 두 황제의 여자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바보같이 순수하던 어린 소녀가 권세를 위해 자신의 자식을 직접 죽일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총애를 받지 못하는 무재인(武才人) 무측천이 입궁하면서부터 태종 이세민이 승하할 때까지 12년 동안 무측천은 임신하지 않았고, 신분도 줄곧 재인(才人)이었습니다. 그 기간동..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지리적인 재조합과 분리는 정치 관계의 부속물이었습니다. 중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성제(省制)의 변화를 말하자면, 어떤 것은 사라지고 축소되고 있을 뿐, 확대된 적은 없습니다. 한지(汉地)의 면적 만큼 인구 1위의 성인 쓰촨(四川)성이 빈약해진 것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관습과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충칭시(重庆市)를 중심으로 한 둥촨(东川) 지역을 잃고 난 뒤 쓰촨성 사람들이 이른바 충칭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지금의 충칭 사람들과 쓰촨 사람들은 하나일까요? 충칭은 현재 중국에서 보기 드문 직할시의 하나로, 경제 발전 방면에서 청두(成都)를 훨씬 능가하며, 북경, 상해에 버금가는 국제 대도시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이러한 부(财富)의 우월감 때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대만의 국민당을 장개석이 이끌 당시 중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송미령(宋美龄)은 무한한 영광을 누렸는데요, 미국인들이 그녀를 "아시아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부를 정도로 그녀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당시 "부인 외교" 공세를 펼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과 연설로 수많은 미국인들을 매료시켰고, 험난한 항전 속에 놓인 중국에 귀중한 원조를 얻어냈습니다. 중국에 참전하러 온 미군들은 퍼스트 레이디를 흔히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모두들 그녀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3년, 송미령은 106세의 나이로 세상을 더났습니다. 세계 2차대전 때의 풍운아들 중, 그녀는 남들보다 20~30년이나 늦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1897년에 태어나 3개의 세기를 뛰어넘어 긴 여정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