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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를 이어온 부의 비밀, 중국계 베이(贝)씨 가문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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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를 이어온 부의 비밀, 중국계 베이(贝)씨 가문 이야기

hanyuku 2022. 2. 21.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인들도 흔히 말하는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옛말처럼, 많은 부자들은 3대를 넘기지 못하지만, 예외적으로 소수의 부자들은 3대를 넘어서도 자기 집안의 가업을 키워 대대로 물려주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홍콩 최고 부자 리자청(李嘉诚)과 그의 두 아들들 모두 훌륭하였고, 그의 두 아들들은 아버지의 도움 없이도 자신만의 사업을 만들어냈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유명한 재벌인 저우다푸(周大福) 브랜드의 창업자 정위통(郑裕彤)처럼 그의 후손들도 우수합니다.

 

 

그 외에도 또 다른 한 가문이 있는데요, 이 가문은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징크스를 깼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던 두 가문을 제치고 17대에 이르는 동안 쭉 부자라고 하는데요, 이 가문은 바로 쑤저우(苏州)의 베이(贝)씨 가문입니다.

 

 

 

 

 

건축의 대가 베이위밍(贝聿铭)

 

 

중국인들에게 아마 베이씨 가문은 비교적 생소할지도 모르는데요, "현대 건축의 마지막 대가(现代建筑的最后大师)"라고 불리는 베이위밍 선생이 바로 베이씨 가문의 15대라고 합니다.

 

 

그는 국내외에서 명성이 자자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이기도 하지만, 베이위밍의 뛰어난 업적은 건축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베이위밍은 1917년 광저우에서 태어났는데, 가정환경이 유복했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고 자랐습니다.

 

 

학창시절, 그는 같은 졸업생들 중 최고 성적을 받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건축 학과에 진학한 뒤, MIT 공대와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 건축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업의 기초가 튼튼해지자, 그는 학문연구에서 실천적 건축 분야로 옮겨갔고, 뛰어난 디자인 솜씨로 건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한동안 분투한 끝에, 베이위밍은 자신의 건축 회사를 설립하였고, 미국건축학회 금상, 프랑스 건축학회 금상, 심지어 프리즈커상 등 그의 뛰어난 건축 재능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현대 건축의 마지막 대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해외 각지에 널리 퍼져 있는데요, 워싱턴 국립예술관 동관,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케니디 도서관 등 다양한 곳에 소장되어 있으며, 중국 내에는 향산 호텔, 쑤저우 박물관, 홍콩 중앙은행빌딩(香山饭店、苏州博物馆、香港中银大厦) 등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건물들은 한 시대의 축소판 같았고, 베이위밍의 이름은 마치 전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국내외서 해외까지 뻗어나갔습니다.

 

 

 

 

 

거의 1천 채의 집을 가진 가족

 

 

베에위밍 가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가문의 시조는 저장성 진화부 란시현의 베이란당(浙江金华府兰溪县的贝兰堂)으로, 현재 사람들이 부르는 베이씨 가문 사람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명나라 때 쑤저우에 정착하였는데, 처음에는 의료업을 하며 약을 팔아서 부자가 되었는데, 이렇게 발전해나가다가 청나라 건륭제 연간즈음에 이미 쑤저우 4대 부자 가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베이룬셩(贝润生)은 베이씨 가문의 13대 사람으로, "안료대왕(颜料大王)"이라고 불렸는데요, 그는 80만 은전을 주고 쑤저우의 유명한 정원인 사자림(狮子林)을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정원을 간단하게 보수한 후, 자기 가문의 자산으로 삼았습니다.

 

 

 

 

 

베이룬셩의 딸이 결혼할 당시, 그는 자신의 이름 하에 "극동 제일의 저택"이라는 푸른 집(绿房子)을 딸에게 혼수품으로 선물하였고, 이 외에도 베이룬셩이 소유한 다른 부동산들도 소장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1920년대, 베이룬셩은 자신의 막대한 자금을 집 건축에 쏟아부었고, 그는 상하이, 쑤저우 등지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훗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부동산 거물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 베이룬셩은 상하이 시내에 거의 천 채에 가까운 집이 있었고, 부동산 총면적은 16만 제곱미터에 달했습니다.

 

 

 

 

 

이런 집안에서 자라면서 베이위밍은 이러한 오래된 건축물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베이위밍은 어린 시절에 거의 매년 베이룬셩의 사자림에서 살았는데, 그러한 생활 속에서 베이위밍은 이 정원의 뒤에 있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이러한 것은 그의 건축 심미(审美)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버드에 다닌 후손들

 

 

베이리타이(贝理泰)는 베이룬셩보다 4살 위며, 비즈니스 마인드가 뛰어난 상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15년 상업저축은행을 설립하였고, 그의 후손들도 대부분 은행업에서 일하는 등 남다른 성과를 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취를 이룬 것은 그의 셋째 아들인 베이주이(贝祖诒)인데요, 그가 바로 앞서 소개했던 베이위밍의 아버지입니다.

 

 

베이주이는 1892년생으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추었던 그는 쑤저우 둥우대학(东吴大学)을 졸업한 뒤, 우수한 학업 성적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중국은행 베이징 본점에 입사하였습니다. 그곳에서도 업적이 뛰어나서 그는 홍콩에 중국은행 홍콩지점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후에 베이주이 역시도 자신의 업종을 누비며 분투하였으며, 베이주이는 중국은행 총지배인 및 중앙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성공한 사업가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1973년, 베이주이는 온 가족을 데리고 뉴욕으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베이씨 가문의 후대들은 외국에서 생활하며 하버드대에 진학하여 공부하였습니다.

 

 

베이위밍 이후, 그의 세 아들 베이딩중, 베이젠중, 베이리중(贝定中、贝建中、贝礼中)을 포함하여 여러 후손들이 건축 관련 분야에 종사하였으며, 선조의 가업을 물려받고, 학업에도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베이씨 가문의 17대손이자 베이위밍의 손녀인 올리비아 (Olivia Pei) 역시 가족의 훌륭한 전통을 이어 하버드대에 진학하였습니다.

 

 

하지만 올리비아 페이는 아버지 세대에서 관심을 가졌던 건축학에 비해 현재 인기있는 전공인 국제관계학 및 관련 역사학과 국제무역과 같은 비즈니스 분야에 더욱 흥미를 가졌고, 아버지 세대의 가업을 물려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발전하고 있다고 하네요.

 

 

 

 

 

17대를 부유하게 잘 살아온 베이씨 가문의 발전은 중국의 발전 역사처럼 험난한 과정이었지만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가문은 단지 그들의 재산만이 아니라 온 가문이 끊임없이 자기 분야에서 분투하며 자아를 추구하는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가문의 정신이 바로 17대를 이어온 부의 열쇠일지도 모릅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pageType=1&context=%7B%22nid%22%3A%22news_9383911871212422008%22,%22ssid%22%3A%22%22%7D

 

富到17代的家族:在上海有近1000栋房屋,子孙后代都入哈佛读书

中国人常说的一句老话“富不过三代”,许多富贵家庭大都不会富裕超过三代,但也有一些家族有例外,他们不仅一直保持富庶超过了三代,而且也将自己家族的企业发扬光大,一代一代的传承

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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