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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체구로 거대한 화물차를 운전하는 장린(张琳)의 불굴의 인생 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150몇 센티미터 키의 소녀와 9미터 60센티미터의 대형 트럭은 아무리 보아도 위화감 넘치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이 거대한 트럭에 훌쩍 올라탈 뿐만 아니라 혼자서 이 큰 차를 몰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배달해야 했습니다.
자그마한 몸집의 이 여성 트럭 운전사의 이름은 장린(张琳)이라고 합니다. 스물다섯 살의 그녀는 이미 두 번의 불쾌한 결혼 생활을 겪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처음에 결혼했을 때는 그녀의 부모로부터 그녀보다 10살 연상의 남자에게 6천 위안을 예물로 받고 팔려간 것과 다름없었다고 하네요.
팔자가 센 장린은 자신이 언젠가 오스카상을 받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속 여주인공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장린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녀는 왜 두 번이나 이혼하고 결국 트럭을 몰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또 무엇 때문에 오스카상을 수상한 감독에게 선택된 것일까요?
출신 가정
1996년, 장린은 윈난성 이량현(云南彝良县)의 샹바이수이촌(上白水村)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은 산천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늘은 바다처럼 푸른 곳이었죠.
그러나 그림같은 풍경의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무척 진부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장린의 부모가 그런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아들을 중시하고 딸을 경시하는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사람들이었는데요, 집에 맛있는 것이 있으면 모두 오빠에게 먼저 먹였고, 오빠가 먹고 남은 것이 없다면 장린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장린은 초등학교때 매일 하교하고 돌아오면 집에서 장작도 패고, 물도 끓이고, 밥도 하는 등 숙제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주말에 친구들이 강가에서 놀고 있어도, 장린은 큰 대야를 안고 빨래를 하고 있었죠.
장린의 어린 시절은 놀이 친구도, 간식도 없었습니다. 매번 오빠가 라탸오(辣条)를 먹는 것을 볼 때마다 장린은 군침만 흘리며 입맛을 다셨죠.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한번도 그녀에게 사준 적이 없었습니다. 몹시 먹어보고 싶었던 장린은 친구들에게 조금씩 맛보게 해달라고 애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는 동안, 장린은 점점 더 자랐고, 그녀는 중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학비를 못 내주겠다며 장린을 중퇴시켰습니다.
사실 장린은 부모님이 돈을 들여서 그녀를 공부시키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딸은 밑지는 상품(赔钱货)이라, 낳아도 쓸모 없고, 키워도 쓸모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린은 부모에게 효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6천위안을 위해 자신을 '팔아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날, 한 중매인이 장린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장린은 무척 의외라고 생각했는데요, 자신이 15살 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중매쟁이가 찾아왔나 싶었습니다.
중매쟁이는 남자측이 6천 위안어치 예물을 내놓겠다고 했다며 장린의 아버지에게 "계집애들이 시집 안가고 집에 남으면 빈둥빈둥 놀면서 밥만 축낸다"고 충고하였습니다.
장린은 이 말을 듣고는 약간 안심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집안에서 일도 안하고 밥만 축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녀는 매일같이 동이 트기 전부터 일어나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아침을 먹고 아빠와 함께 밭에 나가 농사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중매쟁이에게 한 말은 장린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습니다. "계집애야, 조만간 시집갈거다."
그렇게 6천 위안짜리 예물로 아버지는 열다섯 살 장린의 혼사를 정해버렸습니다. 장린은 남편이 무려 열 살이나 위라는 점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2011년, 15세의 장린은 시집가기 싫다고 온갖 애원을 하였지만, 부모님의 명을 바꾸지 못했고, 더군다나 자신의 집에서 남자 쪽으로부터 6천 위안어치 예물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10살 연상의 남편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생해왔던 이 소녀에겐 뜻밖에도 결혼 후의 생활이 친정 집에서의 생활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집안에 있을 때는 비록 못다한 일이 있어도 장린은 편안했습니다. 그러나 시댁에서 장린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하는데도 시어머니의 얼굴빛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편 식솔들의 식사 시중을 들 뿐만 아니라, 마구잡이로 시댁 식구들이 그녀를 꾸짖고 욕하는 일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시댁에서 매일같이 장린은 닭보다 일찍 일어나고, 개보다 늦게 잤습니다.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차리고, 남편과 시부모가 다 드셔야 비로소 그녀가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남은 반찬도 먹지 못해서 장린은 끓인 물에 쌀을 말아서 먹었습니다.
장린이 아이를 낳을 때도, 그녀의 시어머니는 하루도 그녀를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막 아이를 낳고 나서도 장린은 산후조리는 커녕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바빴고, 조금만 쉬려고 해도 시어머니에게 욕을 먹었습니다.
장린은 자신의 인생이 이런 것이 점점 운명이라고 여겼습니다. 한평생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지만, 꾸역꾸역 살아내면 흘러가는 것도 인생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결혼 이듬해,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서 함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더니, 장린을 때렸습니다. 깡마른 장린은 저항하기 어려워 급히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걸었고, 친정집에 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친정 식구들이 그녀를 도와주기는 커녕,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다시 시댁으로 돌려보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남편이 너무 심하게 손을 대서 장린은 세 번이나 얻어맏고 친정으로 도망쳤는데도, 매번 친정에서는 오빠에 의해 다시 시댁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장린은 자신이 의지할 친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편의 가정폭력도 더욱 심해졌습니다. 가장 심했을 때는 장린은 보름 동안이나 침대에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계속되는 가정 폭력에 대응할 힘도 없는 절망 속에서, 장린은 점점 이 집에 실망감이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탈출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신이 남편에게 매를 맞아서 산채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린은 자신이 모은 돈 500위안을 가지고 몰래 집을 나왔고, 항저우로 가는 기차표를 사서 그 끔찍한 집에서 탈출했습니다.
도망치다
장린은 처음으로 먼 길을 떠났고, 무방비 상태였던 그녀는 기차 안에서 누군가에게 지갑을 도둑맞았습니다. 간신히 호랑이 아가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에 장린은 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죠.
무일푼인 장린은 나흘 동안 항저우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나흘 동안 그녀는 한 입도 먹지 못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숨이 턱에 닿을 정도였던 장린은 한 국수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가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국수 한 그릇만 끓여달라고 애원하며 나중에 돈을 벌면 꼭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행색이 초라하고 입술빛이 하얗게 질린 장린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는 직접 국수 한 그릇을 끓여주는가 하면, 국수집 아르바이트생으로 그녀를 받아주었습니다. 나흘 동안 풍찬노숙을 하던 장린은 마침내 항저우에 첫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식당에서 일하다가 식당의 너무 낮은 월급에 만족하지 못한 장린은 주인 아주머니와 결별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녀는 전자공장에서도 일했고, 카센터에서도 일했고, 가사도우미로도 일했는데, 남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들을 모두 도맡아 하길 원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장린은 이런 날들이 무척 자유로워서 고향집보다도 좀 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퇴근 후에 장린은 짧은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후 그녀는 짧은 동영상으로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법을 배웠죠.
장린의 짧은 영상 아래이는 천쉰(陈勋)이라는 남자의 댓글이 자주 달렸습니다. 그리고 점차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 장린은 천쉰이 트럭을 몰던 모습이 멋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천쉰도 고생하면서도 명랑하게 말하고 잘 웃는 이 소녀를 좋아한지 오래였습니다.
두 사람은 금세 사귀귀로 확정지었습니다. 장린은 자신이 결혼한 적이 있고, 아들도 하나 있다는 사실을 천쉰에게 털어놓았지만, 천쉰은 장린의 과거는 개의치 않는다고 하였고,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장린은 이 말을 듣고 감동하였고, 이렇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귄 지 두 달 만에 장린과 천쉰은 깜짝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색다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장린과 천쉰이 탄 화물차 위에는 "520(중국어로 사랑해와 발음이 비슷하여 쓰이는 숫자 뜻)"이라고 꽃으로 장식이 되어있었는데요, 이것은 천쉰의 장린에 대한 고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뒤따르는 화물차 행렬에는 색색깔 풍선이 달려있고, 화물차 운전자만의 낭만을 뽐내었습니다.
장린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쉰의 조수석에 손을 꼭 껴안고 앉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천쉰은 자신의 눈에 장린이 제일 예쁜 아가씨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일찍 삶의 짐을 짊어졌던 이 소녀는 마침내 자신의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장린은 남편의 트럭 조수석에 앉아만 있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화물차를 운전하여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천쉰은 그게 싫었습니다. 그는 여자는 화물차를 운전할 수 없으니 남자가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린은 집에서 아이랑 남편만 돌보는 것이 싫었고, 돈을 벌고 싶고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천쉰과 여러 차례 상의도 했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장린에게 운전면허도 따지 못했지 않냐고 하였죠. 그래서 장린은 천쉰 몰래 B2면허를 따러 갔습니다. 운전면허 취득 비용은 비쌌고, 장린은 돈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장린은 열심히 공부해서 한 과목도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면허를 땄습니다. 운전면허 코치조차 여자인데도 다른 많은 남자들보다 빨리 땄다며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운전면허를 따게 된 것은 장린의 첫걸음일 뿐, 트럭 운전사가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장린에게는 면허증을 따는 것보다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장린은 세 군데 팀에 면접을 보았지만, 어느 한 팀에서도 그녀를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운전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그녀가 여자 운전사인데다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가 화물이 가득 든 화물차를 운전하는 고생을 감당하지 못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린은 여러 차례 벽에 부딪힌 후 낙담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은 것일까요? 운전 면허증을 땄는데도 왜 그들은 자신이 남자보다 못하다고, 시도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일까요?
어느 날 밤, 장린은 이전에 지원했던 한 택배회사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한 통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 예약해두었던 운전기사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가게 되었는데, 장린에게 나와서 차를 좀 운전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죠. 처음으로 차를 운전할 기회를 얻은 장린은 얼른 하겠다고 승낙하였습니다.
이 임무를 장린이 무척 잘 해내자, 택배 회사는 아주 만족하였고, 이로써 결국 장린은 택배 회사의 화물차 운전기사로 정식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장린의 주행 코스는 원저우(温州)와 취안저우(泉州) 사이이며, 매일 밤 11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7시 정도까지 운행합니다. 장린은 밤에 차를 몰면 졸음이 오기 쉬운데, 그때마다 매운 고추를 먹으며 스스로를 자극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장린에게 여자 혼자 밤에 운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장린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두려울게 어디 있겠어요, 빨리 뛰어서 돈 벌 생각만 했습니다."
화물차를 몰고 가는 동안, 장린은 여관에서 묵은 적이 없습니다. 씻어야 할 때는 휴게소에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씻었고, 옷이 더러워지면 휴게소에서 빨아서 차에 널어놓았습니다. 가는 길에 장린의 숙식은 모두 트럭 안에서 해결했습니다.
장린은 돈을 아끼기 위해 길이 9미터 60센티, 높이 3~4미터에 달하는 트럭을 매번 직접 세차했습니다. 장린은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버텨야 한다며 돈을 벌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운송 코스가 달라서 장린과 천쉰은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날 수가 있다고 합니다. 부부간의 만남은 더욱 기다려지고, 매번 만날 때마다 만나는 시간은 짧지만 이것은 두 사람이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합니다.
1년 후, 부부는 트럭 운전으로 번 돈으로 자기 소유의 아우디 차를 구입하였습니다.
천쉰은 사륜구동 차를 몰고 장린을 데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바닷가로 놀러갔습니다. 장린의 생일도 기억하며 천쉰은 정성껏 이벤트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살뜰히 챙겨주는 남편을 보며 장린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다시 이혼
그러나, 고향에 내려가는 여정은 이렇게 사랑하던 부부의 이별을 이끌어냈습니다.
장린은 고향을 떠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신분증을 한번 다시 재발급할 때 몰래 돌아갔던 적 외에는 부모님이 계시는 그곳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었습니다.
지금 장린의 생활은 이미 매우 좋아졌고,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을 보러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비록 그들은 그녀를 나쁘게 대했지만, 그녀를 낳아 키운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효성을 다하려고 했던 것이죠. 사실 장린은 자신의 아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고향에 돌아온 장린은 부모님의 그동안의 나쁜 대접은 다 잊은 듯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에게 크고 작은 보따리에 싸온 먹을 것들을 드리고, 집안을 치워주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새옷도 사서 입혀주었고, 그들에게 바깥 세상과 자신의 몇 년 동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예전의 불쾌함에 대해서 장린은 따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언제나 가족이라고 생각했죠.
부모님을 본 이후, 장린은 쉬지않고 학교로 달려가 아들을 보았습니다. 몇 년 만에 아이는 많이 자랐지만, 아들은 엄마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교실 밖 복도에서 장린은 쪼그리고 앉아서 아들을 껴안고 흐느끼며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아이는 얌전하게 그녀가 안고 있는대로 내버려 둔 채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습니다.
수업이 시작된 후, 아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주변의 학우들과 함께 본문을 읽다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교과서에 떨어뜨렸습니다. 어린 아이는 목에 메어 본문을 읽으면서 소매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창밖에서 이를 본 장린은 순식간에 눈물을 참고있던 둑이 터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난 동안 그녀는 누구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할 수 있었지만, 유독 아들에게만은 그렇지 못했고, 마음에 쌓인 빚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바탕 울고 난 후, 장린은 거리로 나가 아들을 위한 물건을 이것저것 샀습니다. 책, 간식, 장난감, 옷, 그리고 자전거 한 대까지요.
아들이 학교를 마친 후, 장린은 아이를 데리고 정원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아들이 똑똑하고 영민해서 자전거도 탈 줄 안다며 칭찬해주었습니다. 모자의 간극이 조금씩 허물어지자 장린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 천쉰은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는 장린에게 과거는 끝난거 아니냐며, 다시 그 아이의 엄마가 되겠다고 한다면 이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장린은 남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장린의 과거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었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장린은 어떻게 자기 아이인데 모른채 떠나버릴 수 있냐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천쉰은 장린의 과거를 개의치 않아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우는 것을 자신이 괄시당하는 것처럼 느꼈고, 장린이 전 남편의 아이와 관계를 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도 장린은 자신이 10개월 동안 임신해서 배아파 낳은 아이인데 그녀는 그렇게 모질게 굴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 때문에 여러 차례 말다툼을 하였고, 매번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습니다. 3개월 후, 몸과 마음이 지친 장린은 결국 이혼을 선택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이 없었던 장린은 자신이 겪었던 고생을 자신의 아들에게는 절대 겪지 않게 해줄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아이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장린은 이미 베테랑 화물차 운전기사가 되어, 작은 몸집으로도 짐을 싣고 내릴 때 여느 남자 못지 않습니다. 그녀는 비록 스물다섯 살이지만, 운전 경력이 이미 5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경력이 쌓이니 월 급여도 만오천 위안 정도에 이르게 되었죠. 매달 지출을 좀더 아낀다면 한달에 만 위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장린은 아들이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자신의 노력으로 차를 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을 산에서 모셔와 곁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드리고 싶을 정도라고 합니다.
장린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 운명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탁하지 않고 자신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능력과 노력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착실히 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장린의 이와 같은 불굴의 에너지는 성차별에서 비롯된 불공정한 정신을 홀로 타파하였고, 오스카상을 수상한 감독 말콤 클락(奥斯卡获奖导演柯文斯)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다큐멘터리 <시미유염지상(柴米油盐之上)>의 여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장린은 자신 뿐만 아니라, 수천만 분투하는 여성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꽃 한 송이 한 송이에는 모두 활짝 피어날 권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행적으로 세계에 증명하였습니다.
<참고기사>
96年云南姑娘:因6000元被“卖”,两次离婚,今被奥斯卡导演选中
一个一米五几的女孩与一辆九米六长的大卡车,怎么看都是充满违和的美女与野兽的搭配。可是女孩不仅要坐上这辆巨大的卡车,她还要独自开着这个大家伙,走南闯北的送货。 这个身量娇小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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