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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4대천왕 장학우의 부인 라미미(罗美薇)는 어떤 사람일까?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홍콩의 4대 천왕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왕들의 아내들이라 하면 아마 그렇게 잘 알고있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유덕화의 아내 주려천(朱丽倩)이나 곽부성의 아내 방원(方媛)이나, 장학우의 아내 라미미(罗美薇)를 막론하고 모두 천왕 본인들만큼 눈에 띄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미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심귀방서가(开心鬼放暑假)>의 카이신샤오뉘 팀(开心少女组)의 멤버로 알려져 있지만, 홍콩 4대 천왕 중 노래의 신 장학우의 부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분 외에도 라미미는 3년 동안 21명의 고용인을 바꿔치울 정도로 업계에서는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있다고 하네요.
이런 결벽증에 거의 병적인 수준인 라미미는 대체 어떤 이유로 35년간 장학우의 총애를 받았을까요? 그들은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장학우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요, 연애부터 시작해서 결혼 이후까지 서로가 늘 한결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미미가 슬럼프 시절을 겪던 그 당시의 장학우를 잊지 않았다고 하네요.
01.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다
홍콩 출신인 라미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뒤, 어린 나이에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자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살아온 경험 때문에 라미미는 예민하고 강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유년 시절의 가정 환경이 라미미에게 끼친 영향력은 막강해서, 아름다운 미인으로 태어난 라미미였지만, 그녀는 본디 사랑과 안정감이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뛰어난 미모 덕분에 젊은 시절 그녀의 주변에는 연모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라미미는 포부가 원대했고, 그녀는 당시 화려하고 눈부신 홍콩의 연예계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라미미는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갈 기회를 잡게 되었고, 그렇게 라미미는 자신의 잠재적 재능을 알아봐줄 백락 황백명(伯乐黄百鸣)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음치여서 가요계에서 톱스타의 길을 걷지 못한다고 하였지만, 젊고 스타일리시한 외모와 패션으로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미미가 히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회사는 영화 한 편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영화 덕분에 라미미를 히트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여배우들을 끌어모으고 있었죠. 영화속 신나는 소녀들은 발랄하고 각기 다른 콘셉트로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라미미는 본격적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학우는 라미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데뷔가 순조로웠습니다. 그때 장학우도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첫 앨범이 대박이었습니다. 풋내기 신인으로서 이 정도의 성적이면 무척이나 훌륭했죠.
영화 <개심귀방서가(开心鬼放暑假)>의 반응이 폭발적이자, 회사에서는 또 시리즈 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인 라미미는 무한한 잠재력과 시청자들의 사랑 덕분에 조연에서 벗어나 영화 주연 여배우로 낙점되었습니다.
라미미는 회사의 중책을 저버리지 않았고, 영화속에서 때로는 시크하게, 때로는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영화 밖 인터뷰에서도 당당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명해진 라미미는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고 황백명이 키워준 도움에 대해 줄곧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황백명이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렇게 영화 출연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대스타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커리어가 더욱 잘 나가게된 그녀는 허관창(何冠昌)을 의부(义父)로 삼게 되었고, 매염방(梅艳芳)과 자매결연을 맺는 등 더욱 많은 사람들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비록 매염방과는 혈연은없었지만, 가족처럼 느껴졌고, 매염방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러한 가족애는 이어졌다고 합니다.
02. 첫눈에 반해 평생의 사랑을 결정하게 된 두 사람
회사 덕분에 큰 사랑을 받은 라미미는 더 많은 콘텐츠와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러다가 <치심적아(痴心的我)>라는 영화에서 장학우와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연기자로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때의 장학우는 홍콩 음악계의 춘추전국시대에 변방의 들러리처럼 활용되던 새싹에 불과했고,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던 라미미와는 비교될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당시 라미미는 가화영화사 허관창의 수양딸일 뿐만 아니라 매염방의 의자매이자, 회사에서도 최고 인기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매체에서는 그녀를 두고 장만옥, 종초홍, 유가령(张曼玉、钟楚红、刘嘉玲)과 같은 '홍콩에서 가장 유망한 여배우'로 그녀를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장학우는 여자친구의 커리어가 그렇게 잘 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여전히 그저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보며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장학우가 라미미에게 첫눈에 반해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큰 점이 장학우를 좌절하게 했죠.
연애가 깊어가며 라미미의 커리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장학우는 오히려 커리어 슬럼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장학우는 매일 알코올로 자신을 마비시킬 수 밖에 없었고, 매일 술에 취해있으면서 갈수록 의기소침해져갔습니다.
라미미는 남자친구를 자극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기 위해 결별을 선언하였고, 장학우에게 "술만 끊으면, 아직 여지가 남아있다"고 하였습니다. 여자친구에게 푹 빠져있던 장학우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즉시 술을 끊기로 결정했고, 여자친구를 위한 노래 가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라미미는 이런 방법으로 장학우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을 뿐,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을 통해 장학우를 돕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도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장학우는 그 후 더 열심히 노력하여 <급아친애적(给我亲爱的)> 이라는 앨범으로 컴백했고, 그후 커리어도 새롭게 태어난 듯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습니다.
03. 전성기를 달린 후, 뒤로 물러나 천왕 배후의 여인이 되다.
이후 장학우는 다시 라미미에게 구애하였는데, 한번 이별을 겪은 이후 장학우는 라미미를 더욱 아끼고 두 사람의 감정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라미미는 장학우가 다시 일선에 복귀하자, 장학우의 커리어를 돕기 위해 스스로 연예계를 은퇴하여 막후로 돌아섰습니다.
이후 장학우의 노래는 중화권을 풍미하며 여명, 유덕화, 곽부성과 함께 4대 천왕을 이루는 등 연예계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0년 간의 열애 끝에 극비리에 런던에서 결혼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조촐했다고 합니다.
결혼 후 라미미는 더욱 몸을 사리고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가 소원해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때, 장학우는 행성 하나를 라미미의 영문 이름으로 명명하여 애정을 과시하였고, 라미미는 장학우의 딸 둘을 차례로 낳는 등, 연예계에서 두 사람은 모범적인 부부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장학우는 라미미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과 무한한 포용력으로 라미미의 결벽증을 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라미미는 집 밖에 나가면 반드시 소독품을 챙겨야 하고, 헬스장에 다니는데 열심인데도 불구하고 헬스장에선 목욕도 하지 않고, 외식 할 때도 식기를 챙겨다니며, 집에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소독을 한다고 합니다.
집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녀는 3년동안 무려 21명의 고용인을 바꿨다고 합니다. 그녀의 결벽증은 물건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와 같다는데요, 결벽증이 병적인 라미미를 대하면 보통 사람들은 이런 극단적인 결벽증을 참지 못했을 테지만, 장학우는 오히려 이러한 고단함마저 달갑게 여기며 줄곧 포용해왔다고 합니다.
다른 천왕의 부인의 유명세와는 달리, 라미미는 결혼 후에도 몇 년째 몸을 사리고 있지만, 장학우에게 35년간 변치않는 애정을 받고 있습니다. 장학우가 부르는 사랑 노래는 모두 한 사람을 향한 것이니, 연애 전이나 결혼 후나 라미미는 인생 최고의 승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참고기사>
3年换21名佣人,洁癖到病态的她,凭什么被张学友独宠35年?
当说到四大天王的时候,大家肯定毫不陌生甚至滔滔不绝。然而,说到天王们的老婆们,大家肯定就一知半解了。不论是刘德华的妻子朱丽倩还是郭富城的老婆方媛,亦或是张学友的妻子罗美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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