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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출신 화빈 그룹 회장 옌빈(严彬)의 인생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레드불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위세가 대단했었지만, 이것은 중국 시장에서 레드불을 위해 막후에서 밀어주었던 옌빈(严彬)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들인 보람이 있듯, 레드불의 중국 유입은 옌빈의 부를 축적하는 길에 디딤돌이 되어주었고, 이후 옌빈의 결정은 1년 가까이 지난 후 그를 1150억 위안의 몸값으로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재 67세인 옌빈은 환갑이 넘도록 미혼인데다, 아이도 없어서 천억 대의 재산을 가졌어도 물려줄 사람이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1. 태국에 처음 들어와서, 피를 팔아 생계를 꾸리다
1954년, 옌빈은 산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모두 농민이었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넉넉지 못했습니다.
속담에 농촌 아이들은 일찍이 집안일을 맡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 당시 옌빈은 비록 나이는 매우 어렸지만, 배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노고가 눈에 익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조숙하며, 돈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옌빈은 나이가 조금 든 후에는 돈을 벌기 위해 타향인 태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처음 태국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고향을 떠났던 옌빈은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비까지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에서 일했고, 이후 낮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거리에서 노숙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월급날이 되었지만, 사장은 그의 인생이 여물지 않았다고 업신여기며 월급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옌빈은 분개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혼자서는 힘이 너무 미미했고, 태국으로 오는 길에 옌빈이 당했던 부당한 대우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이러한 것들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는 억울함을 묵묵히 참고 내공을 쌓아 언젠가 터뜨릴 그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사장이 임금을 주지 않았지만, 생활은 계속 되어야 했고,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 옌빈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피를 팔며 한 동안을 보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차이나타운의 한 식당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그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옌빈은 운수가 트인 듯 차근차근 생활이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옌빈은 어렵게 얻은 달콤함을 각별히 아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일하는 것이 너무나 좋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안 되어 가게의 부점장이 되었고, 몇 년 뒤에는 자신이 모아놓은 돈이 생기자 현지에 집도 샀습니다. 옌빈이 집을 마련한 직후 집값이 30%나 뛰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 기회를 틈타 집을 팔고 기회를 잡았고, 손에 쥔 돈으로 부동산 회사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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