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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발명가의 꿈을 이뤄낸 중국 산둥성의 리치청(李其成) 할아버지 이야기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오늘 소개할 중국 기사의 인물은 바로, 산둥(山东)성의 한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은퇴한 이후에도 누추한 차고에서 몇 년 동안 뚝딱거리며 발명품을 만들어냈고, 손쉽게 여러 국가 특허를 획득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공장들이 이 할아버지를 방문하여 특허를 사가고, 합작 요청을 하고, 또 많은 매체와 왕훙들도 이 할아버지와 함께 전문적으로 촬영을 하였다고 하는데요, 이 할아버지의 별명도 바로 "하드코어 할아버지(硬核大爷)"라고 합니다.
이 산둥성의 하드코어 할아버지는 어떻게 현지의 "데이터 담당(流量担当)"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도대체 무엇을 발명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은퇴 교사로서 발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살펴볼 이 기사에서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검은색 셔츠로 깔끔하게 입은 산둥의 하드코어 할아버지의 이름은 리치청(李其成)입니다. 이 점잖은 노인의 첫인상은 하루 종일 마당에서 발명품을 만드는 할아버지와 연결짓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기자가 리치청 할아버지의 집 마당에 처음 들어왔을때, 높은 대나무 한 무더기와 들쭉날쭉한 화초들, 징후(京胡), 낚싯대, 그리고 어린 손자의 장난감이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정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커다란 기계였는데요, 이것은 신형 건조 열교환설비라고 합니다.
바로 이 신비로운 기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집에서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산둥성의 할아버지를 유명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것은 대체 무슨 보물일까요? 은퇴한 교사인 할아버지가 왜 퇴직한 이후 몇 년 동안 이것을 발명하려고 했었던 것일까요?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그의 수년 전 꿈부터 이야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 명의 은퇴한 교사로서, 리치청은 평생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한해, 또 한해, 수많은 아이들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었고, 많은 학생들이 전국 각지의 대들보로 자라났습니다.
리치청은 영어 전공 교사였지만, 어릴 때부터 물리, 화학 등 이공계 전공에 관심이 많았고, 은퇴 후 어릴 적부터 발명에 전념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소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바로 이 산둥성의 할아버지에게 다시 빛을 발하게 해주었습니다. 리치청은 징후를 연주하고, 낚시를 즐기고, 채소를 심고, 손자를 돌봐주기도 하였지만, 그가 은퇴한 후 대부분의 시간은 발명품을 만드는 데 할애하였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주의깊게 관찰하는 그의 생활 습관은 그가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직결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서는 국가차원에서 에너지 절약과 유해물질 감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요, 리치청의 수많은 발명품 창출도 바로 이 에너지 절감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느 해 겨울, 리치청은 집에서 전통 난로에 숯불을 피워 따뜻하게 하다가, 굴뚝에서 가스가 많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리치청은 대량의 에너지 자원이 소비되지만, 집 안은 생각보다 따뜻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였죠.
"현재 국가에서는 에너지 절약과 유해물질 배출량 감축을 부르짖는데, 이렇게 많은 열량이 빠져나가니 너무 낭비 아닌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이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실천에 나섰습니다. 그는 파이프를 개량한 도면을 만든 뒤, 곧바로 재료를 사와서 자신의 차고에서 발명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노력으로 방열 효율이 더 높고, 연소 원가를 더 절감할 수 있는 열 파이프가 완성되었습니다.
"차라리 열을 많이 절약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열 교환장비를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집안의 열 교환 배관 개조를 마치고 난 후, 그는 다시 새롭고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새로운 종류의 열교환 설비를 연구 개발하여, 그것을 각 분야의 업계에서 응용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더욱 많은 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었죠.
이렇게 꿈을 정하고 나자, 이 산둥성의 할아버지는 또 다시 곧장 자신의 차고로 들어가 각종 서적을 뒤적이며, 각종 재료들을 시험해보며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리치청 할아버지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종이와 펜으로 그렸습니다.
리치청 할아버지가 걸어가는 발명의 길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발명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징후를 연주하고, 화초를 키우고, 어린 손자와 놀아주면서 마음을 비웠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어려움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좌절을 많이 겪었지만, 어느 발명가가 난관을 극복하지도 않고 발명을 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처음엔 전문 장비와 공구도 없었고, 일부 전문 장비를 갖춘 곳들에 비해 연구개발 환경이 열악하여 여러 난제가 한꺼번에 쏟아졌었지만, 그래도 마음가짐은 늘 좋았다고 회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은퇴한 교사이신데, 징후를 연주하고, 차를 마시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셔도 되지, 왜 차고에서 이런 힘든 일을 하십니까?" 이러한 질문들을 리치청 할아버지는 한 두번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리치청의 발명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둥성의 하드코어 할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고, 한 번, 또 한 번 실험을 통해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습니다.
"4년간 연구한 끝에 성공했어요. 열교환 효율이 90%에 달합니다!" 노력 끝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신형 건조 열교환 장비가 만들어졌고, 그가 추산한 테스트 결과 시중 대기업 제품보다 열교환율이 높았습니다. 게다가 이 기술로 국가 특허까지 취득하는데 성공하여 매우 기뻐했습니다.
"저의 가스 열교환 기술은 가정용 난로, 각종 건조, 탈수 설비에서 배출가스 중 열을 분리해 재활용하고, 에너지를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리치청은 이 기술로 국가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수많은 공장들이 앞다투어 방문하였고,
리치청과 합작하고, 특허를 사려고 하다
리치청 할아버지는 가장 확실한, 인류에게 복이 되는 기업만 골라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리치청이 차고에서 발명품을 만들고, 또 국가 특허를 획득하였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할아버지는 곧 유명해지기 시작하였으며, 많은 네티즌들이 그를 산둥의 "하드코어 할아버지(硬核大爷)"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열 에너지 교환문제에 시달려왔던 수많은 회사들이 천리길도 마다않고 할아버지를 찾아와 협력을 구하며, 특허를 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한 업체는 그 자리에서 회사의 지분을 주겠다고도 했고, 이익을 나눠주겠다는 업체도 있었으며, 특허를 사겠다는 업체도 적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찾아가서 협력을 요청하는 기업들도 많았지만, 리치청 할아버지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저는 가장 확실한 기업을 찾아서 내 특허를 더 많은 사람들의 복지를 도모하는 분야에 적용하여, 진정으로 에너지 절감에 기여하도록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리치청은 "찾아온 기업들 중에서는 협력에만 급급한 기업이 적지 않았다."며 퇴직 교사인 그는 자신의 발명에 실력 있는 좋은 기업을 골라 이 발명의 귀착점을 찾아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리치청은 "더 많은 시간을 아껴서 계속 발명의 꿈을 꾸고 싶어요." 라고 합니다.
기자는 산둥성의 이 "하드코어 할아버지"가 발명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을 담은 회사를 설립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사에 일월에너지절약환경보호과학기술유한공사(日月节能环保科技有限公司)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자신이 발명품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보며, 중국의 많은 사람들은 노년을 이렇게 풍요롭게 보내신다면, 많은 젊은이들 보다도 더욱 청년같다고 하였습니다. 한 80년대 생 중국 네티즌은 "이 할아버지의 생활은 매우 의미 있다. 여러 해 전, 선생님이 되었을 때는 그가 격려하던 학생들이 꿈의 길로 들어섰고, 자신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늙어가는 것을 한탄만 하지 않고, 젊은 시절의 꿈을 다시 이루어 생활을 풍성하고 멋지게 보내고 있다."며 탄복하였습니다.
또 한 90년대 생 중국 여성 네티즌은 "이 할아버지는 정말 저의 롤 모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정말 본받을 만한 산둥 할아버지죠. 저도 늙어서도 할아버지처럼 꽃을 키우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손자를 돌봐주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열정적인 꿈을 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리치청 할아버지는 "여러분 힘내세요! 꿈이 있는 한,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하였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모두 즐거운 법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머리가 더 총명하고, 시야가 넓어서 반드시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어서 더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사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빛과 열정을 바치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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