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yuku

중국 허난성 에이즈 마을에서 찾은 희망 이야기 본문

China news

중국 허난성 에이즈 마을에서 찾은 희망 이야기

hanyuku 2021. 11. 23.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 허난(河南)성에는 38개의 시골 마을이 있는데, 그 중 마을에 에이즈 감염자가 100명이 넘어서 "에이즈 마을(艾滋村)"로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슝차오촌(熊桥村)이라고 하는데요, 이 마을에는 약 1,000여 명이 있는데 300여 명 가까이 에이즈에 걸렸으며, 현재 생존자는 100여 명이라고 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가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흐린 겨울날 오후였다고 합니다. 태양은 은회색 구름층 뒤에 숨어있고, 나무는 잎사귀를 떨구고 황량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을에는 행인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개가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을 입구를 걸으며 "어떻게 이렇게 마을이 생기가 없을 수 있지?"라고 탄식하였는데, 기자를 마중나온 마을 주민 슝쓰민(熊四民)이 "무슨 생기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기자는 이 마을에서 에이즈 가족 3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1.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슝쓰민(熊四民)은 기자에게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여섯 식구였는데, 모두 에이즈에 걸렸고, 형과 형수, 그리고 자신의 여덟 살 난 아들이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기자는 슝쓰민의 아버지 슝푸구이(熊富贵)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와 나이든 부인이 함께 흙벽돌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방 안은 새까맣고 울퉁불퉁할 뿐이었고, 가구는 걸상 몇 개와 팔선탁자 한 개 뿐이었습니다.

 

 

슝푸구이의 아내는 37세 때 매혈(卖血)을 하러 나갔었는데, 그때 당시 한번 피를 팔면 45위안을 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매혈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슝차오촌에서 최초로 매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였습니다.

 

 

노부부는 현재 이미 70여 세가 되었고,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큰아들과 며느리는 이미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슝쓰민은 슝푸구이의 막내 아들로, 부모와 형네 부부처럼 매혈을 하다가 에이즈에 감염된 경우였습니다.

 

 

가족 중에서 6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자, 슝쓰민은 술로 근심을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여름, 여덟 살 난 아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더욱 침울해졌습니다. 그는 한때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2004년, 현지 정부는 에이즈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로 항바이러스 치료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절망하던 슝쓰민과 아내에겐 실낱같은 삶의 희망이 찾아왔던 것이죠.

 

 

부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돼지를 키워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슝쓰민은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을 털어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였고, 자신과 아내가 불상사를 당하게 되면, 딸이 혼자 남아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슝쓰민이 돼지를 기른 지 8년이 지났지만, 몸이 자주 불편해도 딸의 학업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의 유일한 바람은, 딸이 대학에 진학하여 에이즈마을을 빠져나가는 날을 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배워서 이룬 것이 있다면, 널 도와준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라

 

 

슝쯔청(熊自成)은 기자가 10여 년간 추적해 온 에이즈 가족이라고 합니다.

 

 

2004년, 기자가 처음으로 그 가족을 찾아서 인터뷰를 했었을 때, 당시 이곳은 큰 비가 내렸었고, 그들이 사는 흙벽돌 초가집은 큰 비로 쓸려 내려가 지붕 무너지고, 가옥이 일부 붕괴되기도 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 값나가는 가구가 별로 없어서 가족들은 특별히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해에는 그들의 아들 슝창둥(熊长东)이 하얼빈의 한 대학에 합격하여 집안에 큰 기쁨도 있었습니다.

 

 

아들을 열심히 공부시켰던 몇 년을 떠올리며, 슝쯔청은 크게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2년에 에이즈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선 집에서 휴식을 취할 형편이 아니었고, 병든 몸을 이끌고 일해왔습니다.

 

 

건설 현장의 일은 때때로 일감 보릿고개를 맞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없을때 슝쯔청은 정부가 에이즈 환자들에게 매달 100여 위안의 특질 티켓(特质票券, 병원에서 약을 받을 때 쓰는 것)을 현금으로 바꿔서 도시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 보내주었습니다.

 

 

그해, 인터뷰한 슝쯔청의 아들 슝창둥은 아버지에게서 돈을 받을 때마다 아버지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것 같았다며 울먹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앞에서는 자신이 이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다는 말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아들의 대학 진학에 대해 언급하자, 슝쯔청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번지며 주름살이 잡혔습니다.

 

 

비록 슝창둥의 합격 통지서가 온 집안의 자랑이 되었지만, 만 위안이 넘는 학비는 여전히 현실적인 난제로 남아있었습니다.

 

 

아들의 학비를 마련해주기 위해, 슝쯔청은 마을의 50여 가구를 돌아다니며 돈을 빌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참 모자라서 대출을 받으러 가려고 하자, 기자가 그를 붙잡았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일부 선량한 사람들은 슝창둥에게 성금을 모아주었고, 그해 여름엔 결국 슝창둥은 에이즈 마을을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6년, 기자가 다시 슝쯔청의 집을 찾았는데, 그 해 순박한 모습으로 잘 웃던 슝쯔청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슝창둥은 더욱 성숙해보였는데요, 하얼빈에 있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에는 아들에게 공부하여 무엇을 이루거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을 부끄럽지 않게 하라는 짧은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슝쯔청이 아들에게 쓴 유일한 편지였습니다.

 

 

이 유일한 편지는 부자간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슝쯔청은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고, 2006년 7월, 57세의 나이로 병사했습니다.

 

 

슝쯔청의 큰아들 슝창용(熊长永) 씨도 매혈을 하다가 에이즈에 걸렸으며, 2003년에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된 후에도,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 아내와 함께 병든 몸으로 일하러 나갔습니다.

 

 

슝창용의 딸은 공부를 줄곧 공부를 잘했는데요, 부모가 일하느라 돌볼 방법이 없자, 그녀는 방학에 혼자 집에 돌아오거나, 할머니 댁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슝쯔청의 아내 장메이잉(张梅英)은 손녀가 대학 입시를 잘 치렀으면 좋겠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그녀는 손녀가 대학에 합격해서 할머니같이 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3. 그렇게 많이 생각해도 소용 없다

 

 

슝시탕(熊喜堂)의 아내 웨이인환(魏银环) 씨도 몇 년 전 매혈을 한 것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되었습니다.

 

 

병든 아내를 돌보기 위해, 슝시탕은 줄곧 바깥으로 일하러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아내가 몸 상태가 좀 좋아지면 그제서야 겨우 밖에 나갔죠.

 

 

고난과, 아내의 걱정과 불안을 마주하면서 슝시탕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내 곁에 남아있는 것뿐이었습니다.

 

 

슝시탕 부부는 아들 둘을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요, 아들 둘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그래서 먹고 자는 것에 불편함은 없는지 살핍니다.

 

 

매일 그는 눈을 뜨면 두 아이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두 아이를 생각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은 두 아이 모두 계속 교육을 받게 하여 대학에 진학시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러 나갈 때는 높은 곳에서 하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남들보다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슝시탕은 자신의 첫번재 고공작업 이야기를 꺼내며, 웃으면서 자기 스스로를 "어려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그럼에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많이 생각해봤자 소용 없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을 뿐이에요. 남들이 할 수 있다면, 내가 왜 못 하겠어요?"

 

 

슝시탕의 아들을 인터뷰할 때, 그는 전 과정에서 카메라를 보지 않았고 맑고 순수한 눈을 지니고 있었는데도 아무런 기색이 없었습니다. 기자가 그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은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이어서 치친(齐秦)의 <왕사수풍(往事随风)>을 불렀습니다.

 

 

그 노래 안에는 "모든 것은 사랑을 위한 것(一切都是为爱)"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마치 그의 부모님을 표현하는 것 같은 가사네요.

 

 

 

 

 

4. 마지막으로

 

 

에이즈와 에이즈 마을에 대해,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서술해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이를 위해 매혈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에이즈에 걸리게 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농민으로서, 두드릴 문도 없고 길도 없으니, 그들에겐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생활을 하지 않게 하려면 최선을 다해 공부를 시켜야한다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아이들 역시 이러한 상황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고, 이 스트레스는 자신들이 마치 부모의 생명을 바쳐 공부를 하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취재에 나온 아이들은 모두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원생가정(原生家庭)"이 중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수많은 가난한 아이들은 부모의 통제욕을 비난하기 시작하며, 그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을 강요하고,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기를 바라는 것을 탓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원망할 때, 그들은 자기 부모들이 매일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흙을 파서 생계를 이어가고, 얼마나 고생고생을 하면서도 아이가 자신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그들은 일생에 걸쳐 얻은 경험으로 말합니다. "흙바닥 위에 남아있지 말고, 에이즈 마을에 남아있지 말라."

 

 

유일한 인생의 경험으로, 그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훈계하였지만, 오히려 이것이 아이들로부터 원망을 듣는 지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인생이란 모든 사람에게 어렵습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에이즈 마을을 떠올려보세요. 이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고소공포증도 참고 20여 미터 위의 높은 곳에서 위태롭게 일을 하는 에이즈에 걸린 한 아버지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부모의 희망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에이즈 가정의 자녀들을 떠올린다면, 세상에 해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9715110625019169958%22%7D&n_type=-1&p_from=-1

 

艾滋病有多可怕?记者深入调查3个艾滋家庭,画面让人心酸不已

世间大雨滂沱,万物苟且而活,你要藏好软弱,无人为你背负太多。 在河南,有38个村子,村里的艾滋病人都超过了100人,人们习惯称之为“艾滋村”。 熊桥村一共有1000多人,将近300多人都患

mbd.baidu.com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