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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수능을 치고 대학 입학의 꿈을 이룬 쉰정화(郇政华)의 인생 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내가 지난 3년간 치러야 했던 대가는 일을 하는 것보다 값진 것이다. 왜냐하면 3년 동안 공부하면서 평생 대학을 못 다닌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던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돈을 적게 벌어야 했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이뤘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올해 54세인 쉰정화(郇政华) 씨의 말입니다. 그는 2018년 51세의 나이로 중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해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7월 7일, 중국 쯔보(淄博)의 한 건설현장에서 만난 그는 여느 인부들과 다를 바 없이 보통 키에 깡마른 체격, 작업복, 안전모를 쓰고 있었습니다. 다만, 며칠 전 대학 졸업장을 받은 것이 다른 인부들과는 다른 점이었지요.
30년의 한
"올해 6월 25일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막상 졸업장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 평범하고 특별한 느낌이 없었습니다."
51세의 나이에 왜 대학 수능시험을 치른 이유를 묻자, 쉰정화씨는 자신의 젊었을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고향은 지난 쉐야진(济南雪野镇)으로, 집안에 5~6묘(亩) 정도의 땅이 있는 농민출신이었습니다. 쉰정화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자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학업 성적은 뒤쳐지지 않았고, 고등학교 입시에서 당시 549점을 받아 라이우 2중(莱芜二中)에 입학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 반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고, 60여 명이 있는 한 반에서 3~4명 정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고교 3년동안, 쉰정화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87년, 20세가 된 쉰정화가 대학입시시험장에서 나왔을 대, 그는 자신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고등학교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부모님은 모두 농민이었습니다. 집안에서 다른 자매 3명이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죠. 당시 저는 눈에 병이 나서 계속 고름이 흘렀었는데,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시험에서 낙방한 후, 여러가지 사정들로 인해 쉰정화는 아쉬움을 달래며 동네 여느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의 길을 걸었습니다. 부모님이 동생들 공부도 시키는데, 자신까지 재수를 하면 생활에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쉰정화는 그때 재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후회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있던지, 제가 처한 현실을 존중해야 하고, 매 걸음마다 실사구시(实事求是)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학교를 그만둔 뒤 쉰정화는 술병을 회수하고, 보따리 장사도 하고, 곡식도 팔았고, 석탄도 몇 차례 팔아보았지만, 모두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과 건축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작은 차를 끌고 벽돌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벽돌공으로 일했고, 그 후에는 미장공까지 배웠습니다. 고등학교 학업을 마친 뒤 쉰정화는 공사판을 떠돌며 본격적으로 미장공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51세에 수능에 응시하다
이 모든 것은 쉰정화가 처음으로 대학 수능시험을 본 지 30년 후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2012년, 쉰정화의 딸이 빈저우(滨州) 의대에 입학했고, 2017년에는 그의 아들이 칭다오(青岛) 공대에 입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아들 딸이 모두 학업을 이루자, 쉰정화는 다시 대학 진학에 대한 생각을 불태웠습니다. "두 아이가 모두 대학에 갔으니, 제 머릿속에 다시 수능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 인턴으로 들어갔고, 아들도 짐을 꾸려 대학생활을 하러 떠났습니다. 쉰정화는 두 자녀의 중, 고교 교과서를 모두 모아 공사장으로 가져가 일을 하면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쉰정화는 스스로 명확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1주일을 걸려서 중학교 수학, 과학, 영어 등의 기본 지식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아이들의 교과서를 전부 1회독 했습니다."
쉰정화는 비록 수년 동안 이런 지식을 접하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배우기가 어렵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학교에 다니던 때, 수학, 과학, 영어 같은 것을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었나봐요."
하지만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라, 쉰정화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당시 모두 공사장에서 일하며 공부했는데요, 매일 6시에 퇴근하고, 밥을 먹은 뒤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3~4시간 공부하고 잠들었고, 아침에 평소보다 한두시간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점심 시간에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3년동안, 지닝(济宁)에 있으면서 저는 아무데도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현장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휴대 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제가 지닝 직업기술대학에 합격했대요.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2018년 8월 15일, 쉰정화는 합격 문자를 받았고, 17일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에야 가족들은 비로소 쉰정화가 그들 몰래 이렇게 큰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내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에 가버리면 가정의 경제적 수입이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쉰정화는 학교가 있는 쯔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몰래 입학 통지서와 자녀들의 고등학교 교과서를 들고 쯔보에 갔고, 비로소 학교에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그가 학교에 가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칠순이 넘은 그의 부친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중립적인 태도였습니다.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지요. 다만 집에서 학비를 대줄 여력이 없으니 네가 알아서 비용을 해결하라는 말만 했습니다."
2018년 9월 5일, 쉰정화는 학교에 왔던 그날의 모든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쯔보에서 지닝까지 가는 길마다, 학교에 가서 만난 선생님 하나하나를 모두 들려주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접수하는 곳에 가니, 학교의 선생님이 제게 묻더군요. '당신의 아이는요?' 제가 바로 공부하러 온 학생이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믿지 않으며 공문서를 달라고 하셨고, 검토를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믿지 않아서 학교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쉰정화의 상황을 알게 된 후, 학교는 그의 학비를 면제해주고 생활용품도 무료로 나눠줬다고 합니다.
쉰정화는 비록 다른 학우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세대차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학생들도 그와 교류하기를 원했고, 쉰정화도 남의 말이나 호기심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대차이는 모두 잊고, 자신이 50대라는 사실도 잊고, 마치 청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개학 후 10여일 만에 쉰정화의 가족들은 그의 등교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이 사실을 알고 쉰정화에게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가족들에게 쯔보로 일하러 갈거라고 하였고, 쯔보에 도착한 이후엔 곧바로 학교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쉰정화는 건축공학 기술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나는 이 전공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많은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잘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도 저는 도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학업 기회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전공에 대한 사랑으로 쉰정화는 재학중 학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수업시간마다 맨 앞에 앉았는데, 토요일, 일요일에는 친구들이 놀러가서 보온병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학교에서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동안 쉰정화는 행복해보였습니다. "어차피 3년 동안 지닝에서 있을 때도 아무데도 못 가보았는걸요. 계속 학교 안에서 있었어요. 교실이 아니면 기숙사, 아니면 도서관이었죠."
전공 과목에서 전 학과 1등을 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놀았으면 이렇게 학교에 나오지 않고 일하러 갔을 겁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면 하루에 몇 백 위안을 벌 수 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더욱 귀중하게 느껴졌습니다." 학교에 있는 동안, 쉰정화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수업이 없어서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쉰정화는 기자에게 간단한 산수 문제를 들어주며 말했습니다. 그는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루에 300위안을 벌 수 있고, 공사장에서 일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300위안을 낭비하는 셈이라고 말이죠.
쉰정화는 이렇게 3년 동안 모든 수업을 마치고 과제를 열심히 하였으며, 시험마다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쉰정화는 자신의 성적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건축공학이 수업이 어렵고 공식이 많았지만, 100점 만점에 98점을 받아 전체 학과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3년동안 공부를 하며 쉰정화는 한 명의 학생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자녀들의 뒷바라지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쉰정화는 매년 여름방학때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매년 음력 섣달 25일이 지나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 설을 쇠었고, 여름방학이 되면 바로 작업장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여름 방학은 두달, 겨울방학은 한달씩 거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두 아이가 학교에 갈 때도 쉰정화는 한 번도 배웅하러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2020년이 되자, 코로나의 영향으로 학교 전체가 인터넷 강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쉰정화는 공사장 친구와 함께 임대료 50위안짜리 셋방에 세들어 살면서 낮에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셋방에서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비록 고된 학업 생활이었지만, 3년 동안 쉰정화는 물러서지 않았고 포기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저는 꼭 이루고 싶습니다."
"3년동안의 공부는 일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습니다."
"졸업장은 제가 3년간 공부한 것에 대한 긍정의 의미이고 게다가 일종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저는 결국 제 꿈을 이루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서 대학에 갔고, 저는 견뎌냈고, 결국 해냈습니다." 6월 25일 새벽, 쉰정화는 고향인 라이우에서 지닝직업기술학교까지 차를 몰고 가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비록 3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를 했어도, 높은 월급을 받지는 못했지만 쉰정화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후회하지 않았고,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대학에 오고 싶어했던 제 꿈을 이룬 것이니까요." 그는 다시 한번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은 대학 진학을 선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쉰정화는 3년 동안 건설 관련 지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공사장에서 일할 때 왜 그랬는지 모르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왜 그래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쉰정화는 3년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그가 지금하고 있는 일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배운 지식은 이론적인 것이고, 제가 일하는 것은 실제입니다. 이론으로 실제를 지도하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도중 쉰정화는 학교에서 일반 편입(专升本, 전문대 졸업 후 4년제로 편입하는 과정)멘토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쉰정화는 3년 간의 공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젠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들은 7곳의 일반 편입 시험을 봤는데, 모두 공부를 잘해서 그들은 모두 원하는 곳에 붙었다며 무심코 한 가닥 부러움을 드러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쉰정화는 그 자신이 한 일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제 우리 공사장에서 한 사람이 말하길, 제가 50대에 대학에 간게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라더군요. 70대, 80대에 대학에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과 비교하면 아직 어린애라고 생각합니다."
쉰정화는 3년간의 학교생활 중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일은 친구들과 함께 지내던 날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 가장 미련이 많이 남았고, 너무 슬펐다고 하였는데요, 그는 3년간의 학교 생활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학우들이 어떤 좋은 직장을 구했는지, 어떤 좋은 단체에 입사했는지를 말하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쉰정화는 "그들은 젊은 세대잖아요. 저는 이 나이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때 좋은 직장을 찾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는 3년동안 일하는 대신 공부하는 것을 택했고, 비록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그동안 공부하며 느낀 보람이 더 컸기 때문에 공부를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졸업장을 받은 후, 쉰정화가 처음 한 일은 돈을 벌기 위해 바로 공사장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새로운 계획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강을 건너는 것이죠. 저는 먼저 앞으로 나아갈 계획만을 세웠을 뿐이에요. 하지만 생각대로 살려고 해도 인생은 꼭 당신의 생각처럼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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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这三年所付出的代价是值得的,比干活要值。因为我拿出了三年的时间去学习,弥补了我这一生当中没有上过大学的遗憾,我觉得很值。虽然少挣了很多钱,但我实现了上大学的梦想。”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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