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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없이 순자산 천억 위안의 재력가 황추룽(黄楚龙)의 인생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사업이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산업이라고 합니다. 왕젠린의 완다, 쉬자인의 헝다, 양궈창의 비구이위안 등(王健林的万达,许家印的恒大,杨国强的碧桂园等)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건설 회사들과 부호들이 있지요. 사실 이들의 몸값이 억대 이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채를 떠 안고 있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부동산 업계의 특성상 융자 비용이 많이 들고 이익 회전주기가 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채가 많은 일이 일반적인 부동산 업계에서 빚이 거의 없고 순자산이 천억 위안에 이르는 재력가 황추룽(黄楚龙) 씨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오늘 살펴볼 기사에서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추룽의 자산
황추룽은 1958년 광둥성 푸닝시(广东省普宁市)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여러차례 부호 명단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고향인 푸닝시의 경제발전을 이끌기 위해 푸닝에 상업광장 COCO PARK를 건설하였고, 이 외에도 선전시에서 주력 하는 영리상업으로 부동산 뿐만 아니라 금융투자 분야 등에서도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황추룽 회장의 싱허그룹(星河集团)은 비상장회사로, 현재 1000억 위안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부채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진 음성적 갑부(隐性富豪)라 할 정도로 선전의 최고 부자라고 하네요.
황추룽은 부호 명단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전 건설 분야의 환경적 영향을 만난 것 외에도 그 자신이 감히 무언가를 용기내어 할 수 있다는 정신 덕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업종의 경우 원가가 높은 특성 때문에 대출을 받고 빚을 내서 건설한 후 자금유입을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아서 빠른 시일 내에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빠른 확장보다 온건한 성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채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손에 쥔 자금으로만 운용해서 확장하면서 저비용 고수익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익을 내려고 노력하는 동안 확장 속도는 느리지만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이런 착실하고 침착한 전략에 힘입어 황추룽은 이미 중국 전국에 십여 개의 상업 센터를 가지고 있으며, 임대료 수입도 일년에 억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황추룽의 인생 역정
황추룽은 결코 금수저로 태어난 귀공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산은 대부분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다행히도 광둥성 챠오샨 푸닝시(广东潮汕普宁)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환경적 영향으로 외부로 나가 자수성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챠오샨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장사하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밑천을 가진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견해는 그들이 고생을 참고 견디어내고, 학습을 잘하고 응용이 뛰어나며, 즐겁게 친구를 사귈 줄 아는 그들의 정신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20세 때, 그는 집이 가난해서 선전을 찾았고, 당시 선전은 발전 초기여서 건축 공사가 많았었습니다. 학력이 부족하여 그는 건설 노동자부터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도급노동자의 관리 방법을 살펴보고, 노동자로서의 위신을 세워, 몇 년 뒤에는 일반 노동자에서 도급노동자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포부가 있었던 이 청년은 도급업자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몇년 동안 열심히 일하여 생애 첫 번째로 큰 자금을 모았습니다. 도급업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것인데, 그는 이미 자신이 땅을 사서 개발업자로 일하며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이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당시의 환경 속에서, 그는 패기있게 이 기회를 붙잡았고, 여러개의 작은 프로젝트들을 신속하게 맡아 개발하면서 진정한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또 다른 그의 인생 역전 포인트는 바로 싱허단티(星河丹提)의 개발 및 출시였습니다. 선전(深圳)에서 부동산 업계의 패색이 짙던 시절, 싱허단티는 오히려 역풍반전에 성공하여 선전 시장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싱허단티는 선전 사람들의 눈에 본격적으로 띄게 되었고, 주목받는 중점 브랜드로 자리잡았습니다.
황추룽의 사람됨
중국의 속담에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황추룽의 인간 됨됨이를 보면 재물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만도 하다고 합니다.
비즈니스 업계에서 그는 의리있는 사람으로, 협력자들을 존중하고 서로 윈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협력사의 돈을 떼먹지 않고, 오히려 그 스스로 그들의 활로를 위해 평평하게 길을 깔아주는 태도로 협력사들에게서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황추룽은 이러한 성품의 재력가로서, 차림새나 단장을 가리지 않고 조용한데다가 대중에게 잘 눈에 띄지 않는 겸손한 성격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길에서 그를 본다면 그가 부호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부자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한 일화로, 그의 아들의 결혼식 날, 그는 같은 마을 주민 2천여 명을 초청했는데, 축의금을 받지 않는 대신, 그가 하객들을 위해 500위안 씩의 홍바오(红包)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본심을 잘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황추룽은 개인적으로는 부를 이루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선의를 베푸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싱허그룹은 기업 본연의 역할과 함께, 교육과 자선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싱허그룹은 리장 소수민족 고아학교, 간쑤 위수 고아학교(丽江少数民族孤儿学校,甘肃玉树孤儿学校等) 등에 차례로 건설을 지원해주었습니다. 2003년에도 선전 적십자회에 천만 위안짜리 저택을 기부하고, 교육사업과 자선사업을 위해 여러 차례 기부를 했습니다. 황추룽은 이렇게 누적 기부액이 15억 위안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황추룽의 지금의 천억 위안대 자산에 대해서는 개혁개방 이후 부동산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나 자신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의 이러한 성공사는 우리들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中国房地产最大隐形富豪,公司不负债不上市,千亿资产属于他一人
房地产企业在很多人眼中都是一个高利润的产业,王健林的万达,许家印的恒大,杨国强的碧桂园等,这都是我们耳熟能详的建筑产业,而这些人也被称为房地产行业的巨头。事实上,在他们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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