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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투자 업계의 철의 여인, 쉬신(徐新)의 인생스토리

hanyuku 2021. 8. 12.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에서 혼자 힘으로 3명의 갑부를 만들어낸 여인이 있다고 하는데요, 딩레이, 리우창둥, 쫑칭허우의 배후에 있다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와하하라는 회사, 넷이즈, 징둥, 메이퇀 등등 위의 회사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단한 회사들을 세운 창업자들 뒤에는 모두 같은 여자가 서 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중국의 1세대 VC로, 투자계에서 유명한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였고, 그녀가 투자한 회사들에는 와하하, 징둥, 넷이즈, 싼즈쏭슈, 메이퇀 등 여러 상장사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쉬신(徐新)이라고 하네요.

 

 

그녀는 이들 회사로부터 10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매번 정확한 투자를 한 덕분에 그녀는 중국판 여성 버핏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쉬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 살펴볼 기사에서는 쉬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반항아의 반란

 

 

쉬신은 1967년 충칭에서 태어났습니다. 털털한 성격의 쉬신은 어렸을 때부터 장난이 심하고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한 반에 50여 명이 있었는데, 그녀는 오랫동안 중위권에서 머물며 친한 친구와 수업을 땡땡이치고 자주 놀러다녔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번 놀러 나가면 오후 내내 놀았기 때문에 '땡땡이 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고 하네요.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해서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그녀의 어머니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고, 그녀의 아버지는 선생님이 돌아가자마자 그녀에게 옷걸이를 휘둘러 매를 때렸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어르신들은 "몽둥이 밑에서 효자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는데요, 어쨌든 쉬신은 그때부터 제대로 마음을 잡고 "갑자기 문을 연 것처럼" 성적이 확 좋아졌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80년대 산업 노동자들은 황금 밥그릇이었다고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기술 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했었다고 하는데요, 쉬신과 함께 자란 세 자매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쉬신의 엄마도 그녀에게 기술학교에 진학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쉬신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쉬신이 마음을 결정한 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결정을 지지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정교사를 초빙해 공부를 하게 해주었죠. 그래서 그녀는 충칭의 "중점학교(重点高中)"인 난카이고등학교(南开中学)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반항아에서 개과천선하여 고교 3년동안 목숨을 걸고 공부하였고, 높은 점수를 받아 난징대 외국어과(南京大学的外语系)에 합격했습니다.

 

 

1988년 난징대를 졸업하고 중국은행 본점에 배치된 쉬신은 일반 계산대 직원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쉬신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는데요, 일반 계산원으로서의 업무는 지극히 간단하였습니다. 단지 "복사, 등록, 날인"이 반복되는 한 가지 종류의 서비스 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업무는 간단했지만, 쉬신은 일이 아무리 쉬워도 열심히 일해서 무엇이든 1등을 해야 적성에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쉬신은 "업무 효율이 뛰어난 사람"으로 불리며 매달 개근상을 받았고, 매사를 다투어 일했는데요, 그녀는 1년 동안 일하면서 은행의 모든 영예를 다 따냈는데, 전체 직원 2000명 중에서 단 3명만이 "38 홍기수"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쉬신은 그 중에 1명으로 바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3년간 일한 후 25세가 된 그녀는 중국은행 영업부에서 부과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991년, 중국정부와 영국정부가 연합하여 영국 공인회계사를 양성하는데, 중국은행은 쉬신에게 응시할 자리를 내줬습니다.

 

 

영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응시하여 높은 점수를 받아 통과하였고, 그녀의 영어 실력은 마침내 쓸모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홍콩의 푸화 회계 사무소(普华会计师事务所)에 보내져 3년간 훈련을 받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홍콩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어 자본시장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인턴십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틈틈이 공부하여 3년 동안 18과목을 수료하고 영국 공인회계사 면허를 따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훈련 기간이 끝나 홍콩 최대 현지 증권사인 바이푸친(百富勤)에 입사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쉬신의 화려한 전환점은 시험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1995년, 28세의 "고시전공자" 쉬신은 마침내 회계 감사를 접고 강호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2. 창투 저격수(创投狙击手)

 

 

투자 업계의 초기, 쉬신이 첫번째로 인수한 투자건은 쫑칭허우와 그의 와하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 중국 벤처 투자 역사상 첫번째 소비 승급 사례로 기록될 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1995년, 쫑칭허우는 파리에 다녀오고 난 뒤, 프랑스인들이 에비앙 한 병을 마시는 것을 보고 병에 담긴 마실 물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군용 주전자를 들고 물을 마셨고, 병에 담긴 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쉬신이 첫번째로 와하하 투자에 참여하여 4000만 달러를 쏟아부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외국 사람들처럼 병에 담긴 물을 사서 마시겠냐"고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4000만 달러를 투자받은 쫑칭허우는 3천만 달러를 들여 3개의 생산 라인을 만들었고, 6개월 동안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쫑칭허우가 만든 "와하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1998년 초, 바이푸친이 금융위기로 쓰러지자 네덜란드계 최고 투자관리회사인 바링투자그룹(霸菱投资)으로 옮겼고, 쉬신은 아시아 최초로 중국계 이사와 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중국 최초의 VC 교과서 사례를 만들어 낸 그녀의 전설은 중국 초대 IT 갑부를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1999년, 바링투자회사가 중국 내륙에서 변경을 개척하던 당시, 쉬신은 항저우의 좁은 사무실에서 딩레이(丁磊)를 만났습니다.

 

 

당시 회사는 너무 작아서 화장실이 1개밖에 없을 정도였는데요, 딩레이가 먼저 입을 열고 그녀에게 설명했습니다.

 

 

쉬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딩레이가 설립한 넷이즈에 500만 달러를 투자하였고, 투자를 받은 딩레이는 이듬해에 바로 넷이즈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게 만들었으며, 주가도 30위안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 미국의 닷컴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넷이즈는 암흑기를 맞았고, 주식이 0.6위안까지 떨어져 정크 주식이 되어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쉬신은 바링 주주의 집단 소송에 휘말렸고, 2년 동안 주주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설득하여 넷이즈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2002년-2003년은 중국에서 국산 온라인게임이 폭발하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넷이즈는 <대화서유2(大话西游2)>의 엄청난 흥행으로 위기를 극복하였고, 다시 시가총액 100억 달러까지 치솟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맞은 딩레이는 32세의 나이에 76억 위안의 몸값을 기록하며 당시 중국 최고 부자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 쉬신은 넷이즈 주식을 팔아 주주들에게 800%의 수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5년만에 "갑부를 만들어내는 여인"으로 거듭난 쉬신은 자신만의 독특한 투자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9년, 쉬신은 개인 투자로 중화영재망(中华英才网)에 투자하였고,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2006~2008년에 중화영재망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 그녀는 80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2005년 전후로, 중국 VC업계는 처음으로 대규모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해 우상즈(吴尚志)가 딩후이창투(鼎晖创投)를 설립하였고, 옌옌(阎焱)이 사이푸(赛富)를 데리고 독립하였으며, 선난펑(沈南鹏)이 홍샤중궈(红杉中国)를 설립하였으며, 예일 유학중이던 장레이가 가오링자본(高瓴资本)을 설립하는 등 우후죽순으로 투자 회사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7년 동안 투자 시장의 강호에서 생활했던 쉬신은 바링투자를 떠나 자신의 회사인 진르자본(今日资本)을 차렸습니다.

 

 

중국 초대 IT 갑부를 한 손으로 일으켜 세운 것이 쉬신의 출세작이었다면, 그녀를 강호에서 "풍투여왕(风投女王)"이라 자리잡게 한 것은 바로 온라인 전자상거래 강호의 빌딩을 일으켜세운 것이었습니다.

 

 

2006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한 징둥몰은 직원은 50명 뿐이었고, 회사에 회계조차 없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투자회사들에서는 그들에게 처음엔 500만 위안을 투자하겠다고 했다가, 결국엔 100만 위안을 넣고난 뒤 곧바로 발을 뺐다고 합니다.

 

 

리우창둥은 여기저기 융자를 찾아다니며 수십 명의 투자자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고,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쉬신이 리우창둥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리우창둥에게는 대단한 PPT 자료도 없었지만, 홈페이지를 열어 보여주며 제품 이야기를 했고, ERP 시스템을 불러와 쉬신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매출액은 5천만 위안에 매달 10%씩 상승하였습니다.

 

 

그날 쉬신은 리우창둥을 도와 자신과 같은 베이징발 상하이행 항공편을 예약했고, 곧바로 투자 기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돈을 받게 된 리우창둥은 목숨을 걸고 달려가 징둥의 상품 카테고리를 확대하며 자체 물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물류는 확실한 "돈 태우기"였다고 하는데요, 곧 1000만 위안이 동나버렸고, 돈 때문에 쓰러지게 된 창업자는 가장 슬픈 결말이었습니다.

 

 

이 참상을 목격한 쉬신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 5차례 대출을 받아 총 2천만 위안을 리우창둥에게 주었습니다.

 

 

리우창둥은 그 돈을 받아서 물류에 쏟아부었고, 이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지만, 쉬신은 스스로 목숨을 걸고 군자를 모시겠다는 결정을 내리면 오직 목숨을 걸고 달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8년이 흘렀고, 2014년 징둥이 상장되면서, 쉬신의 투자는 150배 이상 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자본이 점점 줄어들면서 대주주 명단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넷이즈, 징둥, 그리고 그 후의 간지왕, 싼즈쏭슈, 이펑다 약국, 메이퇀, 씨트립(赶集网、三只松鼠、益丰大药房、美团、携程) 등, 쉬신은 창업 초창기 바닥부터 투자에 참여하여 정상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텐센트 주식의 장기 보유는 그녀의 투자에 대한 전망과 신념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쉬신은 친구들 사이에서 텐센트의 22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며, 16년이 지나도 팔지 않았고, 돈이 생기면 주식을 매입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00배가 넘는 대박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수년째, 메이퇀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는 쉬신은 현재 33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였다고 합니다. 이 투자액은 그녀가 지금까지 투자한 것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쉬신은 왕싱(王兴)에 대해, "전통 업종은 등산과 같아서 최고봉이 어디일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는 서핑과 같아서 다음 파도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그 파도를 따라 잡을 수 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큰 파도가 매년 있는 것은 아니니 파도가 없으면 다음 파도가 쳐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파도를 만나거든 물에 들어가 있어야 하며, 그 파도를 타고 있으면 물도 당신을 때리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6월 초에는 중국 최대 채용 플랫폼 BOSS가 나스닥에 직행했다가 첫날 95.75%오른 149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쉬신은 2015년부터 오늘날 가지 6년간 5차례에 걸쳐 4천만 달러 가까이 BOSS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쉬신이 BOSS에 투자한 이야기는 징둥에 투자했을 때의 이야기와 흡사하다고 하네요.

 

 

 

 

현재 BOSS의 A종 보통주 14.7%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인 쉬신은 140억 위안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렇듯 투자 업계에서 좋은 사례를 일구어낸 그녀의 투자 감각은 정말 뛰어난 것 같습니다. 그녀가 서핑에 비유했던 투자 방법을 살펴보며 우리들도 향후 유망 산업이 무엇일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8875222284031776138%22%7D&n_type=-1&p_fr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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