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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 전쟁을 가장 잘한 황제들은 누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의 오랜 속담에 장상이 무능하면 삼군이 힘들어 죽는다는데, 이것은 고위 지휘관들이 능력이 없다면 전군의 작전이 실패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군대에서 장수의 중요성은 매우 높은데요, 이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대를 통솔하는 능력인 장재(将才)와 군대의 책략을 잘 결정하는 재능인 사재(帅才)는 둘 다 군대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둘 다 중요하지만, 군대를 통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조금 더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장재가 사재보다 좀 더 높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보통 장군은 군사상의 전쟁을 이겨야 하므로 장재를 가져야 하겠지만, 더 높은 지도자는 사재를 갖추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천하를 제패하는데에는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통치력(治理)도 필요한데, 고대 중국의 황제들 중에서는 적지 않은 황제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광윤, 채영, 진황, 한무(赵匡胤、柴荣、秦皇、汉武) 등등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황제들 중 가장 전쟁을 잘한 황제들 다섯은 누구일까요?
5위: 주체(朱棣, 명나라 영락제)
그는 명나라의 세 번째 황제로, 역사상 유일하게 번왕(藩王)의 신분으로 중앙 왕조를 거스르고 반란을 일으켜 성공한 황제입니다. 그는 지략과 모략이 뛰어나고 정신력과 체력이 넘치는 토벌자로서 공인되어 있는데요, 정난의 전투에서 이미 탁월한 지휘력을 보여주었고, 다섯 차례나 몽골로 친정(亲征)하러 간 것도 이를 뒷받침 합니다. 또한 수십만 명의 군사들을 지휘했던 군사력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를 통치하는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제 회복과 국력을 강성하게 하고, 영락대전, 하서양(永乐大典、下西洋), 북경 천도는 물론 각국에서 서로 다투어 왕조와의 교류를 하였습니다. 당연히 다섯 번 친정하더라도, 경제력이 없으면 이렇게 버티지 못할 뿐더러, 잘 싸우면서 이렇게 나라의 경제까지 잘 꾸려가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재위 기간 동안 영락성세(永乐盛世)라 불리며 칭송받았습니다.
4위: 유수(刘秀, 후한 광무제)
유방의 9대손인 그는 동한(东汉)의 개국 황제입니다. 천하가 크게 혼란하던 때에 태어나 12년동안 통일 전쟁을 거치며, 하북, 관동, 농우, 서촉(河北、关东、陇右、西蜀) 등 할거(割据) 세력을 잇따라 소탕했습니다. 군벌의 혼전을 종식시키고, 난세 국면을 끝낸 그는, 난세에서 천하를 통일하였고, 이러한 그에게 군사 지휘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하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1만 3천명의 군사로 적군 40만 명을 물리친 것은 엄청난 위업이었습니다. 한나라 황실의 광복 이후, 경제 발전과 유학 추앙을 위해 노력하였고, 고대의 "풍화최미, 유학최성(风化最美、儒学最盛)"이라는 사마광, 양계초(司马光、梁启超)의 평가를 남기며 광무 중흥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3. 칭기즈칸(成吉思汗, 몽골 제국 황제)
그를 황제의 반열에 포함시키는 것은 어찌보면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칭기즈칸은 나중에 원나라가 건국된 이후 황제로 추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군사 지휘 능력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군사가로 꼽힙니다. 철목진(铁木真)은 일련의 전쟁을 거쳐 몽골 각 부를 통일한 뒤, 건국 후 다시 대외 전쟁을 일으켰고, 대내적으로는 김조, 서하(金朝、西夏) 등을 정복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중앙 아시아, 동유럽의 흑해 해변까지 진출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서하 항복을 앞두고 병사하였고, 임종시 송멸금(宋灭金)의 전략이 맞아떨어졌습니다. 만약 하늘이 그에게 몇 년의 시간을 더 주었다면, 어쩌면 원나라의 개국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칭기즈칸입니다. 칭기즈칸이 문장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몽골족에게 처음으로 법전을 만들어 준 사람이었고, 신하들에게 규정대로 질서정연하게 일하라고 명령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위: 이세민(李世民, 당나라 태종)
당나라 2번째 황제였던 그는 사실상 그의 아버지에게 건국 황제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이세민은 소년시절 군대에 들어갔고, 진양(晋阳)으로 병사를 일으켰으며, 군대를 이끌고 수나라 왕조를 멸망시켰고, 두건덕(窦建德) 등의 할거 세력을 소탕하여 당나라를 수립하고 통일에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전공이 뚜렷하지만, 그가 차남이었기 때문에 현무문 사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즉위 이후, 겸허하게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국태민안(国泰民安)을 실현하였고, 정관지치(贞观之治)를 개척하였습니다. 또한 척토(拓土)를 개강하고, 동돌궐, 고창, 토욕혼(东突厥、高昌、吐谷浑) 등등을 정복했습니다. 이세민이 출전하여 정복한 토대가 있었던 덕분에 이치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의 영토를 최대로 확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세민은 출정과 치국을 제외하고는 문학과 서예를 좋아했고, 그의 시와 묵보가 전해져 왔다고 합니다.
1위: 주원장(朱元璋, 명나라 개국황제)
명나라 개국 황제인 그는 5위였던 주체의 아버지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주원장이야말로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농민봉기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어린 병사였을 대부터 한 걸음씩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주원장은 군사 지휘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역사상 소수에 불과한 북벌에 성공한 황제이기도 합니다.
진우량, 장사성(陈友谅、张士诚) 등의 할거 능력을 없앤 후, 중화의 회복을 호소하며 원나라의 통치를 종식시켰고 전국을 통일한 후, 정비하여 안정적으로 다스렸습니다. 그의 각종 조치들로 사회 생산 능력이 회복되었고 발전하여 역사에서 홍무지치(洪武之治)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식, 모, 인, 용, 지(识、谋、仁、勇、智)를 모두 겸비한 사람으로, 훗날 청나라 황제가 그를 두고 탄복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말기의 사건들 때문에 온갖 오명을 뒤집어 썼다고 하네요.
중국 역사상 진시황부터 부의까지, 모두 400여 명의 황제들이 출현하였는데, 주체 등 위의 다섯 명의 황제들은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황제들 중에서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지닌 황제들이 이렇게 적은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古代打仗厉害的5位皇帝,成吉思汗仅排第3,不信看前2位都是谁?
中国有句古话讲将相无能累死三军,意思是高级指挥官没有能力,会连累全军作战失败。从这句话可见在军中将领的重要,但这将领也是分为将才和帅才的,这两者皆是军队的绝对元首。不同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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