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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길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한 장밍광(张明光)의 인생 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만큼 우리 스스로가 삶의 의미를 구축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출생과 죽고나서 영혼의 귀착을 선택할 수 없지요.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따르는 것, 그리고 선택의 순간에 우리에게 둘러진 족쇄를 돌파하는 것, 진실한 자아를 선택하는 것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칭화대에 입학하다
1980년, 장밍광(张明光)은 허난(河南)성의 한 빈곤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비록 모두 농민이었지만, 아들의 육성과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에 장밍광이 어릴 때 책을 읽는 것만이 유일한 출세의 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부모의 영향으로 장밍광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았습니다. 타고난 자질이 총명한데다 후천적인 노력까지 더해지자, 장밍광은 반에서 줄곧 수석을 차지하였고, 이후 대학 입시에서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칭화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장밍광은 온 고향의 모범이 되었고, 많은 학생들은 그를 우상처럼 여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장밍광이 이런 훌륭한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것부터 부러운 삶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칭화대에서 공부할 때도 열심히 노력했던 장밍광은 부모가 자신의 학업을 뒷바라지 해 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효도도하고 철이 든 남다른 학생이었습니다.
학부를 마친 뒤, 장밍광은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장밍광은 이러한 학력으로 인해 훗날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고, 부모도 아들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얻어 잘 살아 집안의 부담을 덜어주길 바랐습니다.
졸업 후, 장밍광은 순조롭게 높은 월급을 주는 일을 찾았고, 좋은 삶이 이미 손에 잡힐듯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을 잘 보살피던 장밍광이 돌연 고임금 직장을 그만두고 머리를 깎고 출가하겠다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모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가에 귀의하다
장밍광의 부모는 이 소식을 듣자, 곧바로 허난에서 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지도 않았던 그들은 장밍광을 보자 그가 이미 거취를 결정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너진 부모는 무릎을 꿇고 아들에게 애원해보았지만, 아들의 출가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장밍광을 위해 반평생을 고생한 부모는 아들이 대체 왜 선망받는 직장을 그만두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아무리 허락하지 않아도 눈물을 삼키며 아들의 선택을 묵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밍광은 오랜 학구 생활동안 이러한 무미건조한 생활에 싫증이 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항상 회의감을 가지며, 학업, 일, 결혼, 출산, 교제 이런 모든 것들이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장밍광은 무거운 스트레스의 무게감을 드디어 벗어던지고 스스로 마음의 해탈을 찾아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불학(佛学)을 알게 되었고, 그는 불학을 연구할 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의 평온을 얻었고, 그곳에서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신적 구원을 얻기 위해 도시아먼 곳을 찾아 나선 장밍광은 머리를 깎고 용천사(龙泉寺)를 택하여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장밍광의 삭발과 출가 소식이 알려지자 사회적으로 반향이 컸다고 합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장밍광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여 막말까지 퍼부었다고 하는데, 이때 장밍광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용천사의 한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는 외부 세계의 영역에서 자신에 대한 유언비어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 딛고 있는 발 밑의 땅을 지켜냈고, 평온한 생활 속에서 전례없는 행복을 얻었다고 합니다. 영광은 멀어졌고, 칭화 박사의 직함은 이미 그에게서 지워진 채, 그는 세상을 걸으며 여유롭고 시원스러웠습니다.
지금도 장밍광이 부모를 버리고 불가에 귀의한 것을 두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의 실패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길러준 부모도 외면한 채, 내면의 안녕을 택한 것은 자유주의의 전형적인 스타일이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장밍광의 부모는 애초의 고통스러운 반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난감하기도 하지만, 지금 아들이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유언비어를 아들이 더이상 감당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는 짬이 나면, 차를 타고 용천사에 들어가 아들을 보러가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몇몇 사람이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대중의 비난에 시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요. 장밍광은 자신의 미래가 변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이러한 속박에 갇혀 지내려 하지 않았으며, 가정을 이루지 않은 채 불가에 귀의하면서 속세의 번뇌를 일정정도 피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인천면(千人千面)이라는 말처럼, 서로 다른 개체들이 모여있기에 비로소 오늘날의 다양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겠지요. 도덕(道德)은 한 사람을 속박하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에 휩쓸려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향해 옹기종기 모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조용한 곳을 찾고 싶어하기도 하는 법이지요.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원하지만, 너무 많은 속박들 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장밍광의 생명은 부모가 주었지만, 세상에 나온 뒤에는 부모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도 일찍이 집안을 빛낸 적이 있었고, 부모님께 더 많은 좋은 생활을 드릴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혹한 현실에서 그는 결국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은둔한 것은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방법들 중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장밍광은 한 사람일뿐, 집단을 대표할 수도 없고, 사회 전체를 대표할 수도 없지만 자신의 마음만을 따를 뿐, 용감한 선택을 한 것이지요. 절 속에서 그는 사회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작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기사>
12年前,不顾父母下跪哀求剃度出家的清华博士,如今生活如何?
海德格尔认为,每个人都是被抛到这个世界上的,我们只能自己去构建生命的意义。生而为人,有太多无可奈何的选择,我们不能选择自己的出生,不能选择自己的死去后灵魂的归宿,唯一能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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