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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계의 "삼촌(叔)" 스타들은 누구? 본문

Chinese movie & drama

홍콩 영화계의 "삼촌(叔)" 스타들은 누구?

hanyuku 2021. 2. 11.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홍콩 영화계에는, "싱예(星爷)"로 불리는 주성치(周星驰), "파거(发哥)"라고 불리는 주윤발(周润发), "라오예(老爷)"라고 불리는 서극(徐克), "거거(哥哥)"라고 불리는 장국영(张国荣) 등,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들이 즐비하여 홍콩 영화계의 위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형()"들이나, "아버지()"들로 불리는 대 스타들 외에도, 홍콩 영화계에는 "삼촌()" 스타들도 줄줄이 포진해 있는데요, 그들의 실력과 명성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1. 6숙(六叔): 소일부(邵逸夫) (2014년 별세, 향년 107세)

 

 

소일부는 엄청난 재벌 2세로, 옛 상하이의 유명한 진타이창(锦泰昌) 안료회사가 바로 그의 집안의 사업이었습니다. 형제자매가 많은 소일부는 여섯째였는데, 여섯째 삼촌이라는 "六叔"이라는 별명이 바로 여기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재벌 2세였지만,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는 커녕, 연예계에 뛰어들었고, 본명을 버리고 "소일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초기에 소일부는 셋째 형 소인매(邵仁枚)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는데요, 나중에 둘째 형 소인체(邵仁棣)는 홍콩에서 "전무(电懋)"와 "장성(长城)"이라는 두 거대 영화사의 협공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그는 홍콩 영화시장을 접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도로 이루어진 대대적인 개혁 하에, "전무" 영화사의 고위층에서도 불상사가 일어나면서, 소 씨네 영화사는 홍콩 최대 영화사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영화산업이 추락하면서, 상업적 마인드를 지닌 소일부는 드라마 분야를 겨냥하여 TVB 에 중점을 두고, <상해탄(上海滩)>,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신조협려(神雕侠侣)>, <녹정기(鹿鼎记)> 등의 명작 드라마들을 제작하였고, 주윤발, 양조위, 주성치, 조아지(周润发、梁朝伟、周星驰、赵雅芝)등의 4대천왕을 배출해냈습니다.

 

 

 

 

 

소일부는 영화계의 거물일 뿐만 아니라, 자선가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교육 사업에 많은 기부금을 내서, 한 채의 일부루(逸夫楼)가 소리없이 그의 큰 업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견숙(坚叔): 석견(石坚) (2009년 별세, 향년 96세)

 

 

당시 석견은, 화숙 조달화(华叔曹达华), 관덕흥 할아버지와 함께 "철의 삼각조합(铁三角组合)"이라고 불릴 정도로 좋은 콤비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과는 달리 견숙은 홍콩 영화에서 악역 캐릭터의 원조였습니다. 황비홍 시리즈에서 황비홍 역의 상대역을 맡아 이 악역을 재치있게 그려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간인견(奸人坚)"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연기생활 20여년 동안, 수많은 악역을 맡으면서도 기대에 부응하는 캐릭터로 악역 본색을 한껏 드러내며, 캐릭터를 생동감있게 연기해내었습니다. 심지어 어찌나 잘 연기했던지 시청자들이 그를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게 만들었다는데요, 그가 연기한 <여래신장(如来神掌)>에서의 천잔각(天残脚), <방세옥(方世玉)>에서의 라이벌 캐릭터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그의 연기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70년대 중후반, 석견이 맡은 배역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TVB에 입문한 뒤, 연기한 캐릭터들은 기품있고 겸손한 자비로운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간인견"이 과연 이런 배역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석견은 행동으로 그가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캐릭터의 성격과 언행을 모두 매우 주도면밀하게 조절하여 사람들이 이전의 그가 연기했던 악역들과 쉽게 연결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두 얼굴이 모두 그라는 점에서도 견숙의 연기력은 매우 돋보입니다.

 

 

3. 화숙(华叔): 조달화(曹达华) (2007년 별세, 향년 91세)

 

 

"영화계의 철한(影坛铁汉)"으로 불리는 화숙 조달화는, 광둥성 출신으로, 15살에 단신으로 상해에 와서 <관동대협(影坛铁汉)>을 찍고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1949년, 화숙이 주연한 <칠검십삼협(七剑十三侠)>이 흥행 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 화숙이 주연한 <황비홍전(黄飞鸿传)>에서는 양관(梁宽)역을 맡았습니다. 영화 개봉 후 그가 보여준 활약이 인정 받으면서, 그는 "황비홍"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영화계의 이와 관련한 통계에 따르면, 이 "영화계의 철한(影坛铁汉)"은 10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큰 파항성(波港星) "미매, 미제(迷妹、迷弟)"들을 수확하였습니다. 일대종사(一代宗师)로 불리는 류가랑(刘家良)은 그를 보고는 공손하게 화숙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나중에, 홍콩 스타들의 영상물에는 화숙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이는 홍콩 영화계에서 화숙이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주성치의 영화 <도학위룡(逃学威龙)>에서 오맹달이 연기하는 중대 사건 담당조의 호랑이 조달화(曹达华)는 바로 이 유명한 화숙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4. 십사숙(十四叔): 장영(张瑛) (1984년 별세, 향년 65세)

 

 

십사숙 장영은 집안에서 서열이 14위라고 하여, 영화계에서도 그를 14숙이라고 존칭하는데요, 이와 동시에 그는 "월어편사대소생(粤语片四大小生)" 중 하나라는 또 다른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1930~60년대까지만 해도 장영에게는 영화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는데요, 그는 3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아역 배우였던 이소룡은 그가 주연한 영화에 출연했었는데요, 바로 1951년의 <인지초(人之初)>, 1953년도의 <위루춘효(危楼春晓)> 등의 명작들입니다.

 

 

영화상에서의 뛰어난 활약 외에도, 그는 <천잠변(天蚕变)>, <철담영웅(铁胆英雄)>, <삼국춘추(三国春秋)>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하였습니다. 장영 역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연기력이 훌륭했으며, 캐릭터들도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히 훌륭할 뿐만 아니라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영을 우상으로 여기는 주성치의 경우, 그의 영화 <희극지왕(喜剧之王)>에서 장영의 포스터가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5. 포방숙(鲍方叔): 포방(鲍方) (2006년 별세, 향년 84세)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포방은 아마도 김용(金庸) 무협극의 고수들 중 하나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96판 <소오강호(笑傲江湖)>의 풍청양(风清扬), 97판 <천룡팔부(天龙八部)>에서의 소지승(扫地僧) 등에 출연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최고 여배우는 딸 포기정(鲍起静)이고 촬영기사는 아들 포덕희(鲍德熹)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포방은 이미 70년대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었는데요, 그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굴원(屈原>은 고전적인 애국주의 영화로서, 마치 신들린 듯 만들어진 덕분에 후발 주자들은 이를 뛰어넘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1980~90년대에는 <백발마녀전(白发魔女传)>, <취권2(醉拳2)>, <금수전정(锦绣前程)>, <여인사십(女人四十)> 등 수많은 홍콩 영화에 출연하였습니다.

 

 

6. 천림숙(天林叔): 왕천림(王天林) (2010년 별세, 향년 83세)

 

 

1950년, 22세의 왕천림은 생애 첫 영화 <아미비검협(峨眉飞剑侠)>을 연출하면서 감독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6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연기력으로, 금마상(金马奖), 금상상(金像奖)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연출한 작품으로 제7회 아시아 영화제 감독상, 홍콩 영화 금자형상(金紫荆奖)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며 '홍콩 영화역사상 100대 감독'에 선정되었습니다. 동시에 드라마에 발을 들인 것은, TVB의 금메달 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왕천림이 홍콩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마치 그의 몸무게 만큼이나 무거울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그가 바로 "최초"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드라마에서 최초로 위압(威亚)을 사용하여 무협 드라마의 재미를 극대화했습니다.

 

 

 

 

 

 

이 밖에도 천림숙은 좋은 스승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정소추, 왕명전, 황일화(郑少秋、汪明荃、黄日华) 등의 유명한 스타들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8대 우수 감독을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두기봉(杜琪峰) 감독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왕정(王晶)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7. 점숙(霑叔): 황점(黄霑) (2004년 별세, 향년 63세)

 

 

점숙은 홍콩 영화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삼촌'이지만, 그는 스크린에서 자신의 연기가 아닌 음악으로 승부하였습니다.

 

 

 

 

"중국 홍콩 4대 재자(中国香港四大才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점숙은, 대중 음악계의 귀재로서, 적지않은 명곡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영화 음악들 중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영화의 음악들로 <창해일성소(沧海一声笑)>,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상해탄(上海滩)>, <남아당자강(男儿当自强)>, <아적중국심(我的中国心)> 등이 있지요.

 

 

이러한 명곡들을 들을 때마다 황점의재능에 감탄하게 되는데요, 그는 이제 한 곡의 곡조마다 영상과 어우러져 가득 채우게 될 정도로 친숙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희귀한 재주인데요, 사람들이 극을 보고 음악을 듣게되면서 완전히 몰입하게 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음악만 잘 했다면 '홍콩의 4대 재자' 중 하나로 불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점숙은 사회를 보거나, 글쓰는데에도 매우 능통했습니다. 사회자 중 예광(倪匡), 채란(蔡澜)과 함께 점숙은 "홍콩 3대 명취(香港三大名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그의 글은 10여 편이 출판되었는데, 정말 중국적인 기질이 잘 드러나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연기에는 품위가 있어서, "중국 홍콩 4대 재자" 중 가장 사랑받는 연기자로도 꼽힙니다. 특히 <당백호점추향(唐伯虎点秋香)>에서 화태사(华太师)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밖에도 영화 <도학위룡2(逃学威龙2)>에도 이러한 그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8. 하숙(虾叔): 관해산(关海山) (2006년 별세, 향년 82세)

 

 

관해산은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11세때 연극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문과 무예가 모두 뛰어난 인재였다고 합니다. 50년대에 관해산은 홍콩에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그는 광동어 영화의 "수석소생(首席小生)"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홍해아(红孩儿)>의 당승(唐僧), <대홍포(大红袍)>의 가정황제(嘉靖皇帝), <혈염호접산(血染蝴蝶山)> 진승(陈胜)...모두 조연이지만,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빛나도록 소화했습니다.

 

 

1980~90년대 TVB와 영화계에서 동시에 활약하며, 영화계와 드라마계의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서검은구록(书剑恩仇录)>, <천룡팔부(天龙八部)>,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녹정기(鹿鼎记)> 등의 고전 드라마에는 모두 그가 만들어낸 훌륭한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하숙"이라는 그의 별칭에 관해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성룡과 <A계획(A计划)>을 촬영하던 때 당시 50세이던 관해산은 활등에서 한 마리의 새우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이에 재미있어하던 성룡은 그에게 "하숙(虾叔)"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하숙은 비록 조연을 많이 연기하였지만, 그의 빛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가 맡은 역할 하나하나를 성실하게 다룬다는 것은 어떤 배역에서든 모두 그의 작품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2001년 TVB의 평생 공로상인 "만천광휘연예대장(万千光辉演艺大奖)"을 받게된 그는 단연코 연기력에서 최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9. 표숙(骠叔): 동표(董骠) (2006년 별세, 향년 72세)

 

 

표숙의 아버지는 홍콩의 첫 중국계 말 조련사였습니다. 그의 부친은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았고, 그는 아화마방(怡和马房)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이름에도 '마(马)'자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평생 말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과 함께 놀면서 자라서 말을 잘 알고 있었고, 60년대에는 경마방송의 사회자 겸 말 평가사가 되었습니다. 유머와 직설적인 진행, 코멘트로 많은 도박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말과 놀고, 말을 평가하는 것 외에도 표숙은 영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귀핍인(富贵逼人)> 시리즈, <홍번구(红番区)>, <경찰고사2(警察故事2)>, <진진(陈真)>, <대협곽원괍(大侠霍元甲)> 등의 영화나 드라마에도 그가 등장하여 이 경마 진행자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죠.

 

 

 

 

특히 뚱뚱한 심전하(沈殿霞)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추며 두 사람은 브라운관 부부로 사랑받았습니다.

 

 

10. 포숙(鲍叔): 포한림(鲍汉琳) (2007년 별세, 향년 91세)

 

 

포한림은 1960년대부터 영화계에 몸담기 시작했지만, 이때는 <수당풍운(隋唐风云)>, <진시황(秦始皇)>, <징기스칸(成吉思汗)> 등 주로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80년대에 이르러, 포한림은 영화계에 들어가, 경앙(敬仰)할 만한 그의 영화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 <도신(赌神)>의 도박마 진금성(陈金城)으로 얼굴을 알린 이후, <도신> 2편과 <도협2(赌侠2)>에서도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진금성 역의 포한림은 80세가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도박술과 능청스러운 성격을 절묘하게 그려내어 사람들은 그의 프로다운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외에도 <호문야연(豪门夜宴)>의 연용포(莲蓉包) 아저씨, <도존(赌尊)>의 정천수(程千手), <지존삼십육계지투천환일(至尊三十六计之偷天换日)>의 법관, <정고전가(整蛊专家)>에서의 관지림(关之琳)의 아버지 정운도(程运涛) 등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0. 아숙(阿叔): 임상의(林尚义) (2009년 별세, 향년 74세)

 

 

아숙 임상의는 홍콩 축구팀 출신으로, 올림픽에도 출전한 적이 있는데요, 은퇴 후에는 방송국에서 축구 해설을 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축구는 그의 유일한 분야가 아니었는데요, 그의 인생에서 연기는 중요한 일이었고, <도학위룡2>, <염정행동(廉政行动)1998>, <귀마광상곡(鬼马狂想曲)>, <도협(赌侠)1999> 등의 명작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5편의 고혹자(古惑仔) 시리즈에서의 목사로, 영화 속 그의 활약으로 <고혹자> 시리즈에서 청소 신승(扫地神僧)으로 불렸습니다.

 

 

12. 구숙(九叔): 임정영(林正英) (1997년 별세, 향년 45세)

 

 

임정영의 강시 시리즈는 시각적 충격은 물론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해서, 홍콩 영화에서 강시 도장(僵尸道长)의 1인자로 불리며 강호인들 사이에서 구숙 혹은 영숙으로 불립니다.

 

 

11세 때, 임정영은 홍콩의 한 경극단에 입단하여 동위(董玮), 맹해(孟海) 등과 함께 훈련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이 향후 영화에서 무술 활약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60년대 말, 임정영은 소씨(邵氏) 영화사로 들어가, 용호무사(龙虎武师)를 맡게 되었으며, 정패패(郑佩佩)의 대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1971년 가화(嘉禾) 영화사에 입단하여, 이소룡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이소룡이 가장 신뢰하는 무술감독이 되었습니다.

 

 

이소룡이 세상을 떠난 후, 임정영은 그의 오른팔로서 몇 년 동안 일하다가 홍가반(洪家班)에 들어갔습니다. 작은 역할 뿐만 아니라, 막후의 작업도 미적지근 했었지요.

 

 

1980년대 중반까지 <강시선생(僵尸先生)>이 뜨기 전까지, 임정영은 조연으로서 강인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일자 눈썹, 냉소, 좋은 이목구비, 날렵한 몸놀림이 돋보여 사람들의 인상에 남게 되었지요.

 

 

 

 

이후 그는 도장(道长) 역할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고, <강시가족>, <영환선생>, <일미도인>, <영환지존> (《僵尸家族》、《灵幻先生》、《一眉道人》、《灵幻至尊》) 등에 출연하여 도장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90년대 중반, 강시 영화가 인기를 잃게 되자, 임정영은 드라마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되었고, 홍콩 아시아 TV의 러브콜을 받은 드라마 <강시도장(僵尸道长)>이 방영되자 큰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청률 고공행진에 이어 <강시도장 2>까지 이어지면서, 모산도사(茅山道士)의 수작 영화에 대한 시선도 뜨거워졌습니다.

 

 

 

 

임정영은 안타깝게도 <강시도장3> 촬영을 준비하던 중 간암에 걸려 촬영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구숙의 죽음과 함께 강시 영화의 현란한 시대는 끝이 나게 되었지요.

 

 

홍콩 영화계에는 위의 타계한 12명의 삼촌 스타들 외에도 달숙 오맹달(达叔吴孟达)과 이숙 낙응균(二叔骆应钧)이 있습니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주성치의 좋은 파트너이자, 홍콩 영화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황금 조연으로, 주성치와 함께 수많은 명작들을 촬영하였습니다.

 

 

 

 

이숙 낙응균도 홍콩에서 유명한 스타로서, 95판 <신조협려(神雕侠侣)>의 황노사(黄老邪), 97판 <천룡팔부>의 모용박(慕容博)이 모두 그가 만들어낸 잘 알려진 캐릭터입니다.

 

 

이숙은 사실 둘째라서 이런 별명이 붙게 된 것이 아니고, <유금세월(流金岁月)> 속 둘째 숙부 정영통(丁荣通)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14명의 "삼촌" 스타들을 알아보았는데요, 홍콩 영화계에서 전설적인 스타들로서 영화계와 브라운관에서 수많은 명작들을 남기며 수많은 팬들과 유명 감독들을 배출하는 등 홍콩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비록 12명의 삼촌 스타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전설은 아직까지도 남아있고, 그들의 영향도 홍콩 영화계에 짙게 남아있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8808815097280259393%22%7D&n_type=-1&p_fr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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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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