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yuku
홍콩 연예계의 따거, 덩광룽(邓光荣)의 인생 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홍콩이 영국에 100년 넘게 식민통치를 당하며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까지 중국인들은 홍콩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홍콩 영화에서는 대사에 섞여있는 영어 단어와 영어 이름을 들을 수 있어서 시대적인 유행 트렌드와 재미를 더합니다.
80, 90년대 홍콩 영화계에는 홍금보, 성룡 등의 선두주자들이 등장하였고, 영화에서는 작은 인물들부터 커다란 영웅까지 실감나게 육체와 정성을 다해 싸우며 고전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과 명예를 얻은 후, 모두 따거(大哥)가 되었고, 연극 안에서도 모두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극 중 따거 역할을 맡지만, 연극 밖에서도 따거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배우라면 단연 덩광룽(邓光荣)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덩광룽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지만, 그의 모습만 봐도 인상적입니다. 그는 영화에서 조직폭력배 보스이자, 권력있는 인물로 등장하는데요, 그는 길을 걸으면서도 태풍을 휩쓸고 다니며, 한번 휘파람만 불어도 뒤에서 달려나오는 인물로 나옵니다.
덩광룽의 정체는 영화 속 인물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그는 연예계에서 유덕화를 내세우며, "여동생" 천덴샤(沈殿霞)를 위해 정샤오추(郑少秋)를 비난하였고, 심지어 홍콩 흑백에서 세력이 있는 보스인 샹화창(向华强)까지 모두 덩광룽을 두려워했다는데요, 대체 무엇이 그러했던 것일까요?
덩광룽은 학창 시절 영어에 능숙하고, 잘생긴 외모로 방송국에서 통역을 했고, 모델로도 활동하였습니다.
17세 때, 급우들의 권유로 <학생왕자>에 오디션을 보러 간 덩광룽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발되어 바로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덩광룽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연예 활동을 시작한 후, 덩광룽은 많은 멜로 영화에 출연하였고, 70년대에는 대만으로 건너가 유명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젼젼(甄珍)과 함께 출연한 영화 <동연(冬恋)>의 경우, 이 영화에서 그는 주연 배우를 넘어 제작자로도 활약하였습니다.
대만에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자 덩광룽은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발전을 도모하였습니다.
1977년, 덩광룽은 잉즈졔 영화회사(影之杰影片公司)를 창업하였고, 자신의 회사에서 투자한 영화들에서 멜로영화의 왕자에서 조폭 따거로 이미지를 변신하였습니다.
덩광룽이 설립한 잉즈졔 영화회사에서 제작한 영화 <왕각가문(旺角卡门)>과 <아비정전(阿飞正传)>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비록 <아비정전>은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홍콩 영화 금장상 최우수 영화상, 최우수 감독상 및 취우수 남우주연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발전한 리샤오룽(李小龙)을 만났는데, 서로의 뜻이 잘 맞아 둘은 금방 친구가 되었고, 형제처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리샤오룽이 홍콩으로 돌아갈 때, 덩광룽이 사방팔방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만 봐도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돈독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덩광룽은 홍콩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사교적으로도 인맥이 두터웠기 때문에 누구든 그를 만나면 아주 존중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콩으로 돌아온 후, 저우룬파(周润发)와 함께 <강호용호투(江湖龙虎斗)>라는 영화를 주연한 후, 덩광룽의 따거라는 이미지가 온 연예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진 아우라와 패기, 조직 폭력배의 따거라는 신분이 마치 그에게 딱 들어맞는 안성맞춤같은 이미지였던 것이지요.
승승장구하던 덩광룽은 아직 무명인 어린 작가였던 왕자웨이(王家卫)와 손을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왕자웨이의 재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왕자웨이의 재능을 보고 자신의 회사에 입사시킨 덩광룽은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덩광룽은 <왕각가문>, <아비정전>의 촬영을 기획할 때, 장궈룽, 장만위, 완쯔량(张国荣、张曼玉、万梓良) 등을 주연으로 캐스팅하면서 비로소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리우더화(刘德华)조차도 덩광룽이라는 백락(伯乐, 인재를 잘 알아보고 등용하는 사람) 덕분에 남자 주인공에 캐스팅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덩광룽과 리우더화가 처음 호흡을 맞췄을 때는 영화 <재전강호(再战江湖)>에서 였는데요, 그 당시 리우더화는 조연에 불과했지만, 덩광룽의 호감 덕분에 리우더화는 <용등사해(龙腾四海)>에서 3대 남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캐스팅 되었습니다.
리우더화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었고, 덩광룽의 부단한 후배를 이끄는 마음에 항상 감사하며 고마움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리우더화는 사석에서 줄곧 덩광룽을 따거(大哥)라고 존칭하였다고 합니다.
후배나 신인을 등용하는 것은 물론, 천덴샤(沈殿霞)와 친남매처럼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덴샤의 장례식에서 정샤오추(郑少秋)를 호되게 꾸짖으며 불쌍한 죽은 여동생을 애도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음씨가 선량하고 능력이 있는 큰 사람도 결국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2011년, 덩광룽은 65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덩광룽은 비록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고전적인 배역들을 남겨주었는데, 그의 일생에 오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당초의 란졔잉(蓝洁瑛)과의 시간에 덩광룽도 연루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제 란졔잉과 덩광룽이 모두 세상을 더났으니 그 진상이 어떤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기사에서 보도되었습니다.
<참고기사>
'Chinese movie & dra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떠난 우멍다(吴孟达)가 사회에 남긴 영향력은? (0) | 2021.04.14 |
---|---|
중국 여배우 공리(巩俐)의 인생 스토리 (0) | 2021.04.05 |
홍콩 영화계의 대부였던 등광영(邓光荣)이 영화계를 떠나게 된 이유? (0) | 2021.02.23 |
홍콩 영화계의 "삼촌(叔)" 스타들은 누구? (0) | 2021.02.11 |
영화 한 편을 연기했을 뿐인데...대대손손 출연료를 받는다는 중국의 이 사람은? (0) | 2021.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