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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우 완쯔량(万梓良)의 드라마틱한 인생스토리

hanyuku 2021. 1. 27.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1986년, 엑스트라에 불과하던 저우싱츠(周星驰)는 귀인 완쯔량(万梓良)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완쯔량은 이미 홍콩 영화계에서 맏형급 인물이었는데, 저우싱츠는 여전히 무명의 연기자였지요.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완쯔량만이 그에게 "내생각엔 당신은 연기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다, 힘내라!" 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완쯔량은 말뿐 아니라, 리시우셴(李修贤)에게도 그를 추천해주었고, 비로소 오늘날의 "싱예(星爷, 주성치의 별명)"가 있게 하였는데, 완쯔량 없이는 저우싱츠의 오늘도 없다고 할수 있겠지요.

 

 

 

 

10여 년이 흘러, 완쯔량이 곤궁해졌을 때, 저우싱츠는 오히려 그를 곤경에 빠뜨리고는 결별하고선 발길을 끊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바로 이 완쯔량의 인생스토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01

 

완쯔량은 대만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완쯔량은 원래 후()씨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가난하여, 부모가 그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냈는데요, 양부모는 그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 후씨 집안과 연관되지 않기를 바라 그를 데리고 홍콩으로 갔다고 합니다.

 

 

양부모 가족도 부잣집은 아니었기 때문에, 완쯔량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력도, 인맥도 없는 완쯔량이 처음 시작한 일은 모두 밑바닥 일들이었습니다. 간혹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스크린에서 주목받는 스타들을 보면서, 매번 나갈때마다 환영받는 모습을 보고, 그는 연예계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그것을 매우 간단하게 생각했는데요, 고생도 하지 않고, 얻어맞거나 업신여김 당하지 않아도 되는 액션 배우가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비록 부유한 가정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멋진 얼굴을 주었으니, 이 얼굴로 세상을 구하는데 쓰겠다고는 할 순 없지만, 차마 얻어맞을 수는 없었습니다.

 

 

19세 때, 액션 배우를 꿈꾸던 완쯔량은 생김새 때문에 출중한 연기자로 방송사의 눈에 띄게 되었고, 1년 간의 트레이닝 끝에 본격적인 연기 행보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드라마 <삼소야적검(三少爷的剑)>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고, 방송 후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완쯔량은 기쁨에 겨워 더 많은 출연료를 받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후 완쯔량은 <풍겁(疯劫)>, <태극장삼풍(太极张三丰)>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첫 시작도 좋았고, 외모도 좋았고, 게다가 노력도 열심히 하며 연기를 열심히 연마했습니다. 이러한 배우가 인기가 없기도 힘들겠지요.

 

 

 

 

 

 

이때 저우싱츠는 TVB 연습반 시험에 실패해서, 야학반(夜训班)에 들어가 엑스트라를 전전하며 잡일을 했었고, 완쯔량은 연예계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의 연예계 행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순탄했고, 좌절도 거의 없었지요.

 

 

몇 년 동안 그는 많은 인기를 누렸고, 당시 관객들도 그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해주자, 이러한 사람들의 대우는 그의 마음에 큰 만족감을 주었고, 소년 시절의 꿈을 이뤄 득의만면(春风得意)하었습니다.

 

 

 

 

02

 

이후 점점 유명세를 타던 완쯔량은 TVB의 눈에 들었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해 그는 TVB의 러브콜을 받아들였습니다.

 

 

1986년, 완쯔량은 TVB 데뷔후, 첫 작품인 <유맹대형(流氓大亨)>에서 악역을 경험하며 대중에게 인식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특유의 기질까지 더해져, "형님(大哥)"이라는 이미지를 실감나게 표현해 연예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당시에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고, 또한 이 역할은 완쯔량을 영화계에서 공인된 형님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완쯔량은 연기하는데 있어 자기 자신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고, 이러한 점은 동료들이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정위링(郑裕玲)은 한 인터뷰에서, 완쯔량이 그녀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찍을때 완쯔량은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실제처럼 하는 것을 추구했는데(이미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부어있었다), 감독을 찾아가 연기할때 완쯔량에게 손을 가볍게 쓰자고 상의하자, 감독은 잘 소통하겠다며 주의를 당부하겠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한 후 완쯔량은 감정이입이 잘 되어버렸고, 방금 한 약속은 뒤로하고 정위링 씨의 턱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고 합니다.

 

 

 

 

 

정위링은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몸이 떨린다고 하였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입에 담배를 물고, 곁눈질을 하며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완쯔량은 이 형님 캐릭터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고혹자지전무불승(古惑仔之战无不胜)>의 쟝톈양(蒋天养)은, 정이졘(郑伊健)과 극에 맞서 충분한 패기를 부렸습니다.

 

 

 

 

 

<왕각가문(旺角卡门)>에서 리우더화(刘德华)와 함께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도왕(赌王)>에서는 주윤발과 함께 연기하며 폭풍 카리스마를 발산했습니다.

 

 

 

 

명예와 부는 소년들의 눈을 현혹시키지만, 완쯔량은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하였으며, 많은 후배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린자둥(林家栋), 저우싱츠(周星驰) 모두 완쯔량의 은혜를 입다

 

 

88년, 완쯔량이 저우싱츠를 리시우셴(李修贤)에게 추천하면서, 저우싱츠는 <벽력선봉(霹雳先锋)>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영화로 생애 첫 상을 받았고, 저우싱츠는 시상대에서 "완쯔량 선생의 도움에 감사드린다."며 감격해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마침 카메라가 무대 아래를 비추자, 완쯔량은 그의 그의 패기에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검은 옷, 넓은 등, 시가를 피우며 가로지르는 완쯔량의 모습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홍콩 영화의 대부(教父)로 불리며 29세에 만천하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03

 

물이 차면 넘치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이는 완쯔량에게 특히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대가대(大哥大)>를 촬영하던 중, 톈뉴(恬妞)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급속히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완쯔량은 그야말로 모든 행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였고, 기자들의 주요 질문 대상이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어떤 기자 한 명이 "지금 톈뉴랑 동거하고 계시나요?" 라고 직접 물었습니다.

 

 

이 질문을 듣고 그는 순간 얼굴이 냉랭해졌는데, 마침 저우싱츠가 다가오자, 후배들 앞에서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그 기자를 가리키며 "당신 바보 아니냐, 뇌에 병이 있는게 아니냐?"라며 엄청난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 누가 알았을까요, 이 말 한 마디에 그의 후반 인생이 끝나버리게 된 것이죠.

 

 

 

 

연예계에서 시청자가 먹여주고 입혀주는 부모라면, 기자는 바로 그 중간의 고리입니다. 기자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스스로의 앞길을 망치는 것이죠. 원래는 한 기자만 욕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나비효과"를 부추기는 날개가 되어버렸습니다.

 

 

후에 그 기자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완쯔량을 금지시켰는데, 그가 어떤 행사에 참석하든지 간에 다른 사람만을 보도하고,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연예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완쯔량은 순식간에 투명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 다시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려서, 완쯔량은 어쩔 수 없이 잠시 예봉(锋芒)을 피하여 가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2년, 샤오이푸(邵逸夫)가 사회를 맡은 결혼식에서, 완쯔량은 톈뉴와 결혼하였고, 저우싱츠를 수석 들러리로 초빙하기도 하였습니다.

 

 

 

 

 

결혼 후 완쯔량은 가정에만 매달렸고, 톈뉴의 딸에게도 매우 포용적으로 대하였으며, 문을 닫고 여유로운 가정을 꾸리며 연예계 일은 등한시 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과 함께 완쯔량의 행운은 다한 것 같았고, 4년 후, 이 결혼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원래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는 법인데요, 완쯔량이 다시 컴백하려고 준비할 때 알게 된 것은 은원(恩怨) 뿐만이 아니라, 한때의 영광(辉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를 기다린 것들은 모든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감독도, 투자자도, 그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벌써 잊은 채, 연예계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빠르게 세대 교체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후 완쯔량은 저축한 돈을 몽땅 들고 상업계를 전전했지만,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로 그는 빈털털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가 연예계에 복귀 결정을 내렸을 때, 유전성 당뇨병에 걸린 것이 밝혀져, 치료를 위해 약을 많이 먹어야 했고 약물의 부작용으로 체형도 점점 뚱뚱해 졌습니다.

 

 

 

 

 

뚱뚱해진 몸매에, 연예계 복귀를 향한 완쯔량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04

 

그때 이런 그를 하늘도 불쌍하게 여겼던지, 그에게 미인을 보내주었습니다.

 

 

한 번 기분전환에 나섰던 완쯔량은 비행기에서 16살 연하의 스튜어디스 궈밍리(郭明黎)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팬이기도 했던 그녀는 부드러운 말로 용기를 주었고, 완쯔량은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조용히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1년 만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리따운 아내와 어린 아들을 위해 그는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살기 위해 막다른 골목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완쯔량의 처지를 알게 된 후, 1999년에 "싱예(星爷)"가 된 저우싱츠는 <희극지왕(喜剧之王)>을 촬영하면서 완쯔량을 특별히 캐스팅해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론 스태프의 부주의로, 그날 촬영 시간을 바꾸었지만, 그에게 통지해주는 것을 잊어버려서 완쯔량이 촬영장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사연을 알게 되자 완쯔량은 아무 말도 없이 가버렸습니다.

 

 

완쯔량은 이 사건으로 완전히 정이 떨어져버렸습니다.

 

 

세상일은 무상하여, 만약 몇 년이 지나버린다면, 연예계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이후 누군가 은혜를 갚는다는 구실을 붙여 그를 캐스팅한다고 해도, 그는 모두 그냥 거절해버렸습니다.

 

 

사후에 저우싱츠는 미안함을 표하며, 특별히 영화 끄트머리에 완쯔량의 이름을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10년 후, <신희극지왕(新喜剧之王)> 촬영시, 저우싱츠는 다시 한번 완쯔량을 초청하였는데, 그가 거절하여 이 두 사람은 철저히 앙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똑똑히 인식한 후, 완쯔량은 신속하게 마음을 다잡았고, 비록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다시 노력하여 현재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생활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영향 탓인지, 그는 가족의 따뜻함에 유독 연연해했고, 중년에 자식을 얻은 것은 그에게 처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고통이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63세의 완쯔량은, 노천(露天)이나 댄스홀(舞厅)이나 상관없이 스케줄만 있으면 모두 들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얼굴에서는 이미 그 당시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완쯔량은 "나는 지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아까워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삶이 고단해도 그는 용감하게 나아갑니다.

 

 

완쯔량의 일생을 돌아보면 꽤 드라마틱한데요,

빈민한 집안의 출신이었지만 입양되었다가, 잘먹고 살아보려고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갑자기 휘황찬란한 스타가 되었다가 말 한 마디에 연예계에서 전도유망한 앞날을 망쳐버렸습니다. 게다가 실력으로 쉽게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사건건 꼬여버렸고, 이후 사업도 실패한 후, 몸매도 망가져버려 돌아갈 길이 막막해져 버린 것이죠.

 

 

완쯔량은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한 소녀에게, "과거에 일어난 일은 연기와 같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소중히 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말이기 보다는, 자신을 똑똑히 알아보는 말이기도 하지요.

 

 

별빛은 길을 재촉하는 자에게 묻지 않고, 시간은 마음이 있는 자를 저버리지 않는 것처럼, 설령 운명이 각박하고 황폐한 상태일지라도, 세상으로부터 여전히 상냥하게 대접받고 싶은 것일 겁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9591382023230821887%22%7D&n_type=-1&p_fr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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