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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발굴한 청나라 태감 이연영(李莲英)의 묘...관 속 모습에 전문가들도 두려워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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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발굴한 청나라 태감 이연영(李莲英)의 묘...관 속 모습에 전문가들도 두려워하다

hanyuku 2020. 11. 30.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이연영(李莲英, 1848-1911)은 중국 청나라의 태감(太监, 환관)이었습니다. 고대에는 태감이 기본적으로 궁중 내의 잡일을 책임졌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태감이라면 이연영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연영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다큐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4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Honourable Mention"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01

 

 

이연영은 9살에 입궁하였는데, 그가 거세되던 그 순간부터 그는 어린 시절의 즐거움도 없이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삶의 길을 걸었습니다.

 

 

 

 

함풍년간(咸丰年间)에 입궁한 그는, 이후 자희(慈禧, 자희태후)의 중시(重视)를 받았습니다. 자희는 그를 위해 심지어 태감품급(太监品级)에 관한 황실조제(皇家祖制)까지 타파했고, 이연영을 정2품대원(正二品大员)으로 만들어 환관들을 모두 관리하게 했습니다.

 

 

생전에 명성이 자자했고, 권세가 높았기 때문에, 그가 죽고난 후에도 반드시 성대하게 장례되었을 것입니다.

 

 

02

 

 

이연영의 무덤은 베이징에서 후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관은 망치를 3개나 못쓰게 만들고 나서야 열렸는데, 관 속의 모습은 전문가들마저 벌벌떨게 했다고 합니다.

 

 

이연영은 집에서 둘째였고, 아버지는 백수였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는 어릴 적에 환관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지요.

 

 

항간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연영은 머리를 손질하는 기술이 있었는데, 같은 고향 출신 태감이 자희에게 머리 손질을 해드리라고 추천하면서 점차 자희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는 자희의 머리 손질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머리를 손질하는 것은 유(刘) 씨 성을 가진 노태감(老太监)이었는데, 자비롭고 선한 눈매로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이연영은 16세에 비로소 자희 곁으로 정식 발령받아 가게 되었고, 그 전까지는 경인궁(景仁宫)과 주사처(奏事处)에서 머물렀습니다.

 

 

이연영이 자희 곁으로 발령받았을 때, 자희의 곁에는 안덕해(安德海)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건방지고 오만하다는 죄로 참수당하여 이연영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연영은 총명하고 약삭빨라서, 안덕해의 일로 교훈을 얻었으며, 어떻게 자희를 모셔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03

 

 

옛날에 부처님이 '복(福)'을 주시며, '복(福)'자를 많이 쓰라고 하였다(曾经老佛爷赐福,“福”字多写了一点)고 합니다. 대신이 집권한 후 자희가 단(台)을 내려가지 않으려 하자, 이인영이 "자희태후께서 주신 복은 늘 많으시다(慈禧太后赐的福总是多一点)"는 한 구절로 자희태후가 단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1894년, 46세의 이인영은 조정의 2품 대원(二品大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2품 대원이 1911년 돌연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바깥에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역사연구원 당익년(唐益年)은 "이인영은 총명하고 약삭빨랐고, 원한을 살 만한 일도 없었다. 타살도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는 조정의 파벌 정쟁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죽기 전에는 궁을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인영의 과계(过继) 손녀는 "할아버지는 이질때문에 갑자기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망 했을때, 이질에 걸리지 않았었을 것이라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이연영의 죽음에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66년, 베이징에서 이연영의 무덤이 발견됨에 따라, 관계 부처가 무덤을 발굴하였습니다. 묘혈 입구에만 해도 망치 3개가 못쓰게 될 정도로 힘들게 발굴했는데, 묘혈 입구가 개방된 후, 묘실의 모습은 휘황찬란하여 매우 호화로워서, 마치 사합원(四合院, 베이징의 전통 주택양식)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간단한 탐사를 거쳐, 그 묘실에서 조주(朝珠, 산호나 마노 등을 꿰어 만든 것으로 청나라 고관들이 차던 목걸이), 옥팔찌, 비취, 다이아몬드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04

 

 

후속 탐사에서는 고고학 전문가들이 그의 관을 발견하였는데, 관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인영의 관을 열자, 관의 형상이 몰라보게 변하였고, 전문가들은 이를 보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원래, 이인영의 신체로 남아있는 것은 머리 한개 뿐이었고, 나머지 부분은 솜으로 대체되어 있었습니다.

 

 

 

 

 

관 속의 정황으로 미루어볼때, 이연영은 생전에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결과도 생전에 나쁜짓을 많이 하였고, 관료를 갈취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등 충분히 추측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인영의 사인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데,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역사적 증거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10071782696572490818%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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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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