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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의 영웅은 죽지 않았다

hanyuku 2020. 10. 13.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지난 9월 12일은 장국영의 64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상으로 남아있는데요, 그가 출연한 작품 중 비록 그가 주연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은 영화는 아마도 <영웅본색(英雄本色)>이 아닐까 싶습니다.

 

 

 

01

 

30여 년 전, 20년 동안 홍콩 제일의 미소년으로 자리매김했던 적룡(狄龙)은 소씨그룹(邵氏集团)에 의해 잘려나간 뒤 상심하여 영웅다운 기개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주윤발은 <상해탄(上海滩)>을 찍었지만, 이후 그의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흥행 독약"이라는 별명을 얻었었습니다.

오우삼(吴宇森)감독은 4년째 일거리가 없어, 친구의 도움에 의지해 강대위(姜大卫)의 집에 얹혀살며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영화가 크게 잘 될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후원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이때, 이미 홍콩 가요계에서 빛을 발하던 장국영이 오우삼과 서극(徐克)의 눈앞에 나타났고, 이들은 함께 뭉쳐서 홍콩 마피아 영화의 정점을 찍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도박이라기보다는 초라한 영웅의 마지막 승부였습니다.

 

 

영화 상영후, 홍콩에서 연간 흥행 1위를 차지하며 홍콩 흥행의 기록을 깨뜨렸습니다. 적룡은 더 이상 실의에 찬 배우가 아니라 단숨에 금마영제(金马影帝)가 되었습니다. 주윤발도 흥행독약의 저주를 깨고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뜻을 이루지 못하던 오우삼 감독은 이 영화에서 웅대한 계획을 떨쳐보였고, 선호하는 폭력적인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할리우드를 향한 포석을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 기반을 다진 명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영웅본색> 이후 영화계에서는 그와 필적할 만한 영화가 드물었습니다. 그후에 제작된 총격전 영화들도 많든 적든 모두 그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더이상 <영웅본색>같은 영화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02

 

홍콩 조폭의 변혁을 보여주는 영화는 다시는 없었습니다. 영화속에서 남자들의 영광과 굴욕, 형제, 의리, 존엄에 대한 추구를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적룡이 연기한 송자호(宋子豪)와 주윤발이 연기한 마크(Mark)는 같은 국제 조폐그룹에서 중요한 인물이고, 장국영이 연기한 송자걸(宋子杰)은 송자호의 동생이자 풋내기 경찰입니다.

 

 

 

 

타이베이(台北)에서 갱단과 위조지폐 거래를 하던 중, 송자호는 수하의 쿠데타로 타이베이 갱단에서 상처를 입고, 감옥에 붙잡혀 들어가 옥고를 치렀습니다.

 

 

Mark는 송자호의 복수를 위해 홀로 타이베이로 건너가 조폭 두목을 사살하고, 자신도 다리 부상으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조직 폭력배들은 송자호가 옥중에서 소식을 듣게될까 두려워 송자호의 아버지를 납치하도록 사람을 보냈지만, 때마침 송자걸을 만났고, 혼란한 전투 중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송자걸은 형이 조직 폭력배들의 두목이고, 아버지도 이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뼈에 사무치는 한을 맺히며 이들을 다 짓밟으리라 맹세했습니다.

 

 

 

 

3년 후, 송자호는 출소하여 개과천선하려고 했지만, 동생 송자걸의 용서를 얻지 못했습니다.

 

 

마크의 강호의 지위는 땅에 떨어졌지만, 매일 치욕을 참으며 송자호와 재기해 그 해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일념을 가졌습니다.

당초 변절자였던 수하 아성(阿成)은 이미 송자호의 자리를 차지하고 조폭의 두목으로서 무한한 영예를 누리고 있었는데, 송자걸의 주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의와 악의 대결, 혈육간의 정과 도의적 선택, 존엄과 형제의 정을 지키기 위한 전개가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홍콩 영화 역사상, <영웅본색>은 성공한 작품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보여준 형제의 정, 친구의 정, 그리고 원수를 갚는 것들은 수많은 영웅들의 꿈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화를 볼때, 관객들은 모두 스스로가 송자호이고, 소마 형(小马哥)이고, 송자걸이었습니다.

 

 

03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들은 모두 자세히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마 형은, 혈혈단신이며 아무런 구속도 없이 순수한 형제애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형제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외로운 영웅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하무인격으로 지폐에 담배불을 붙여 태워버릴 수 있었고, 바닥으로 떨어져 쓸쓸하던 시기에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적성(赤城)을 형제로 대하고, 의로써 갚으며, 배반자에게는 살육으로 대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도의, 형제애와 존엄성이 하늘만큼 컸습니다. 강호의 은혜와 원한은 흑백이 분명하여 사람의 마음을 격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건 내 첫번째 눈물이야. 나는 맹세코 다시는 내 머리를 총으로 겨누게 하지 않겠어."

 

 

이 말은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호방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소마 형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반항의 상징이었습니다.

 

 

 

 

 

3년 동안, 그는 압박과 타협없이 지냈고, 궁핍한 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 뿐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형제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권토중래를 기대했습니다.

 

 

이야기의 마짐가에 오우삼은 소마 형에게 치명적인 총알을 날렸습니다.

이 결말은 비록 유감스럽지만, 소마 형의 숙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에 도의와 형제애와 존엄성을 지키고있는 진정한 영웅이었고, 그의 죽음도 진정한 영웅처럼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은혜가 있으면 반드시 갚고, 원수가 있으면 반드시 복수하되, 인정과 도의가 우선이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마 형의 영웅적인 기개이며, 또한 그가 무수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송자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의리남으로 잘 표현된 인물입니다. 그는 옳고 그름을 잘 알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지만, 몸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친구에게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가족들에게는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사람이지요.

 

 

출소 후, 그는 동생의 용서를 몹시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살해한 그를 용서할 수 없었지요. 그러면서 형에게 위폐 거래에 계속 관여했느냐고 따졌습니다.

 

 

 

 

송자호는 마음속에 고민이 넘쳐났는데, 왜냐하면 그는 형제와 혈육의 정이 가장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에게 모두 해를 입었습니다.

 

 

양심이 있고, 염치도 있었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에 아성을 총살한 뒤 스스로 수갑을 채웠습니다. 이것은 동생을 도와 일을 완성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끝없는 운명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동생인 송자걸은 원래 열정이 가득한 사람으로, 횡포한 무리를 제거하고 선량한 백성을 평안하게 해주는 경찰의 역할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형이 범죄자가 되고,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살해했습니다. 자신도 형이 연루되어 아성의 사건을 계속 수사할 수 없었습니다.

풋내기인 그는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러운 몸부림에 빠져들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피룰 나눈 형제를 체포해야했고, 혈육의 정과 도의 사이에서 어쩔수없이 갈팡질팡했기 때문입니다.

 

 

 

04

 

 

<당년정(当年情)>의 곡조가 느릿하게 울리기 시작하면서, 몇 년간의 은원정구(恩怨情仇)는 송자호의 총성과 함께 아지랑이처럼 흩어집니다.

 

 

운명에 의해 안배된 세 사람은 해탈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도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의협심이 강한 영웅은 도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범죄 조직에서 손을 씻은 따거(大哥)는 어쩔 수 없이 총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악한 무리를 원수처럼 증오하는 경찰은 믿었던 정의에 배신당했습니다.

 

 

 

 

아무도 운명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세상은 이상주의적인 세계가 아니고, 오히려 선혈이 흐르며, 어둠에 분노하는 곳입니다. 투항하기 전, 아성은 농담처럼 송자호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나가서 자수하면, 며칠 후면 바로 법정에서 나갈 수 있어. 내가 돈이 있어서 검은 것도 흰색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결국 악당에게 인과응보를 받게 하는 것은 총알을 한 방 쏘는 것 뿐이고, 자신도 정의의 심판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타고난 운명이 있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예를 들면 자질이나, 정의같은 것이죠. 좋은 사람은 천당에 오르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처럼요.

 

 

하지만, 사실 인생에는 정해진 도리가 없고, 우리가 믿는 것은 운명적 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우삼의 영화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온정 속의 풍자를, 선혈 속의 구원을 생동감있고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송자걸은 영화 마지막에 경찰이 포위하자 사방을 둘러보며 가장 힘든 몸부림을 쳤습니다.

결국 그는 형에게로 달려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형에게 총을 건네며 형제는 정식으로 화해합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올바른 정의' 대신 형제의 도의를 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용감하고 비장하며, 남자의 마음속의 정의를 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영웅본색> 속 인물들은 현실보다 높은 곳에서 여전히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영화속의 표현들은 현실에 딱 들어맞는데요, 올바름은 때로는 정의와 다름없는 것이었고, 결말에서 수갑은 시청자들에게 일말의 희망과 사색(思考)을 주었습니다.

영웅은 선혈을 통해 존엄성을 얻었고, 자유로써 형제의 인정과 도의를 교환하였고, 도의를 위하여 이것저것 재지않고 몸을 내던진 것은 낭만적인 심경까지 자아냅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도록 합니다.

 

 

 

 

34년 후, 흑과 백은 여전히 뚜렷한 경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미 지나간 길만을 걸어갈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올바름과 정의에 등호를 그려야 합니다. 영웅은 죽지 않고, 영웅의 내일을 희망하는 것은 마치 영화의 영문명인 "A Better Tomorrow"와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pageType=1&isBdboxFrom=1&context=%7B%22nid%22%3A%22news_9683413517244582070%22%2C%22sourceFrom%22%3A%22bjh%22%7D&_refluxos=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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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영웅본색>의 영웅은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죽지 않고 살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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