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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천재 윤희(尹希)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유?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위원(魏源)은 <해국도지(海国图志)>에서 "사이장기이제이(师夷长技以制夷)"의 관점을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서양의 선진 군사 기술을 배워와 조국을 강대하게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나라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중국은 이미 세계에서 높은 위치로 성장했지만, 세계 제일 강대국이랑은 아직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인재들의 "사이장기이제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이 강성해진 상황에서도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어 중국내 우수 인재들이 외국에 나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학업을 마치고 나면 조국에 돌아와 보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재 유출은 그동안 중국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수많은 인재들이 마지막까지 외국에 남아 국외에서 발전을 하고 있고, 여기에는 중국의 신동으로 불리는 윤희(尹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년시절 천부적인 재능이 드러나, 18세도 안되어 대학 졸업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윤희는 1983년 생으로, 그의 부모는 둘 다 모두 대학교수였습니다. 이러한 좋은 가정환경은 윤희를 어린 시절부터 좋은 교육 분위기에서 자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윤희가 어렸을때부터 놀라운 수학적 재능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윤희가 겨우 8살일 때, 그는 부모의 책 속에서 지식을 배웠습니다. 어린 나이에 미적분과 양자역학을 알아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많은 대학생들을 골치아프게 했던 책들이 여덟 살 윤희에게는 손에서 놓지 않는 과외책이었습니다.
윤희의 놀라운 천재성을 발견한 후, 부모님은 영재 전문 교육자를 통해 윤희를 가르쳤고, 1993년에는 베이징 8중의 영재반(智力超常实验班)에 합격했습니다. 당시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윤희는 반에서 막내가 되었습니다.
베이징 8중의 이 특별 학급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요, 사실 이 학급은 보통 이상의 지능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특수 교육 프로그램 학급입니다.
또래보다 지능 수준이 뛰어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전통 교육방식이 아닌, 좀 더 적합한 교육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윤희를 비롯한 이 학급의 많은 아이들에게 더 자유롭고 광활한 발전 공간을 주고 있습니다.
이 학급에서 6년 과정의 중학교 과정을 4년 동안 모두 공부해야 했는데, 윤희는 전체 30명 중 나이가 두 번째로 가장 어렸지만, 성적은 반에서 1등이었습니다.
영재반의 훈련을 통과하며 지능이 뛰어난 윤희와 또래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습니다. 12세 때 가오카오(중국 대입 수능시험)에서 572점을 받아 중국 과학기술대학의 최연소 입학생이 되었고, 중국 과학기술대학 역사상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린 학생이 되었습니다.
중국 과기대에서도 윤희는 5년간 많은 지식을 얻었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기들과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중국 과기대에서 5년의 공부를 마친 윤희는 졸업에 성공했는데, 당시 윤희는 18세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겐 윤희는 평생 달성하지 못한 목표였지만, 윤희 자신에게는 여전히 자신이 가진 지식에 만족하지 않았고,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접하고 더 많은 학습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해외유학을 선택하여 외국에서 더욱 깊은 조예를 쌓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버드의 관습도 깨버린 천재 유학생
윤희는 졸업 후 미국 10위권 명문대 10곳을 지원했고, 각 학교의 입학시험에서 윤희는 흠잡을 데 없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각 학교들은 윤희를 끌어들이기 위해 전액 장학금을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윤희의 유학 취지는 같은 분야의 고차원 인재를 만나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하버드대를 선택했습니다.
특히나 당시 윤희는 젊었지만, 하버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전공하였고, 사람들을 탄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하버드대에 들어간 이후, 그는 박사과정 학생 가운데 최연소이자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06년이 되었고, 수년간의 노력 끝에 윤희는 학업을 무사히 마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윤희가 귀국 준비를 하고 있을때, 하버드대는 그가 물리학과에 남아 부교수로 일하기를 바랐습니다.
하버드 대학이 개교 300년동안 지켜온 한 가지 관행은 바로 박사과정을 마친 뒤 박사생이 학교에 남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윤희를 붙잡기 위해 하버드는 이 관행을 깼습니다. 필경 그와 같은 인재가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던 것이었겠지요.
그런 조건에서 윤희는 귀국을 포기하고 미국에 남았고, 더 나은 연구를 위해 중국인 국적까지 포기하고 미국에 귀화했습니다.
9년만인 2015년 9월, 하버드대 정교수가 된 윤희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평생 못 다 이룬 꿈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커리어가 한창 성장하던 시절에도 가정 생활은 행복했고, 미국에서 백인 여성을 아내로 맞았는데, 이런 인생 역정을 보면 윤희는 그야말로 인생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희의 연구 성과는 높았지만, 키워준 중국을 배반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해 미국에서 활동한 것에 대해 중국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윤희를 인터뷰할 때 이에 대해 물어보는 중국 기자들도 적지 않았는데요, 미래의 계획 중 귀국에 관한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윤희는 귀국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귀국 계획은 한 번도 안 세워봤다는 해명에 중국인들은 침묵
윤희의 과학 연구 성과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매체들이 그를 인터뷰했는데, 그때 귀국 의사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윤희는 이 문제에 대해 귀국할 계획이 없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윤희처럼 실력도 있고, 잠재력도 있는 최고의 물리학도가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중국에서는 필연적인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국 물리학의 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는 왜 굳이 미국에 남아서 성장하려고 했을까요? 윤희의 이와 같은 발언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윤희가 보기엔 자신이 귀국해서 발전하기를 선택했다면 이룰 수 있는 성취가 더 적었을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과학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팀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과학 연구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일은 반으로 줄이고 효과는 두 배로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미국에 남아 하버드대에서 머문다는 것은 윤희에게 더 높은 수준의 연구팀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윤희는 귀국 계획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끌고 중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루기 어려운 것이므로 그는 귀국할 계획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윤희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과학자들은 미국에 비교할만한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과학 연구에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윤희의 이와 같은 설명에 중국인들이 침묵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하며, 기사에서는 이러한 사실에 용기를 잃지 말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윤희같은 인재가 미국 국적을 취득하여 중국 밖으로 나간 것에 대해 안타깝지만 그의 인생에 관여하기는 어려운 것이므로 자신의 재능을 펼쳐서 인류 전체를 위해 일해주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참고기사>
한어고도 윤희의 앞날에 더 밝은 연구 성과가 빛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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