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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나라때 갑부였던 호설암(胡雪岩)의 인생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만약 당신이 돈을 하느님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마치 악마처럼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헨리 필딩"
예나 지금이나 사회에는 항상 양극단이 존재했는데요, 한 극단에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한 쪽 극단에는 매우 빈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견해가 있을 수 없는데요,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부유한 사람도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근본은 모두 하나의 물건인 "돈" 때문입니다.
청나라 말기에 한 호설암(胡雪岩)이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원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귀인이 도와준 덕분에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 당시 부자의 반열에 올라섰고 청나라 말기의 갑부가 되었는데요, 평생의 고생 끝에 낙이 왔으나 다시 빈궁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호설암이 죽기 직전, 그는 "백호에 들어가지 말라(勿进白虎)"고 후인들에게 훈계했다고 합니다. 이 '백호'는 무엇일까요? 왜 청나라 말기의 갑부였던 호설암은 자손들에게 백호를 가까지 하지 말라고 훈계했을까요?
호설암의 본명은 호광용(胡光墉)이고, 설암(雪岩)은 그의 자(字)입니다. 그는 안휘성 휘주(徽州) 적계현(绩溪县)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를 방목하는 것을 도와 근소한 수입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가 열두살 때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것도 그에게는 뼈아픈 충격이었습니다. 13세 되던 해, 호설암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항저우로 가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항저우에 막 도착했을 때, 그는 잡곡업과 금화(金华, 저장성 북부의 도시) 소시지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했고, 이후 사람들에 소개로 편지와 금융을 다루는 전장(钱庄)의 견습공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갔을때, 호설암은 잡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부지런했기 때문에 점포에서 그는 몇 년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3년의 견습을 마치고, 근면함과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디는 정신으로 눈도장을 찍은 그는 정식으로 동업자가 되었습니다. 호설암이 생각지도 못한 것은 그가 19세가 되던 해에 그의 일생의 귀인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청나라 도광(道光) 22년, 호설암은 항저우 부강(阜康)시의 전장 주인의 눈에 들어서 견습생으로 남았는데, 당시 주인이 후손이 없어서 총명하고 부지런한 호설암을 만나 친아들처럼 삼고 평생 배운 모든 것을 호설암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수년 뒤, 자신의 은화 5천 냥짜리 부강 전장(阜康钱庄)을 호설암에게 맡기면서부터 그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호설암은 도광 28년에 왕유령(王有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왕유령의 집안은 몰락하였는데, 관직은 있지만 허울뿐이었고, 실제로는 쓸모가 없었습니다. 만약 진짜로 관직의 힘을 쓰고 싶다면 돈으로 관위를 보충해야 했습니다. 호설암은 왕유령의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와 친구가 되었고, 전장의 돈을 유용하여 왕유령의 관직 보강을 도왔다는 점에서 호설암의 의리가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왕유령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조정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론 왕유령은 호설암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전력으로 부강 전장을 도왔습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였고, 한 사람의 장사는 갈수록 커졌습니다. 호설암은 부강 전장 외에도 여러 점포를 내고 있으며, 다른 분야에도 자산이 있었습니다.
청나라 함풍(咸丰) 10년인 1860년에 경신지변(庚申之变)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호설암은 이런 변고에도 어려움을 잘 견디고 오히려 더 크게 변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군(军)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듬해 태평군은 항저우를 공격하였고, 항저우는 함락되었습니다. 왕유령은 스스로 목을 매 죽었습니다. 마침 저장(浙江)성 순무(巡抚, 청나라 때의 지방 행정장관)로 임명된 좌종당(左宗棠)은 군사임무를 감독하고 있었는데, 호설암은 후원자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좌종당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듯, 호설암은 좌종당과 친구가 되었고, 총관(总管)으로 임명되어 관상(官商)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후 호설암은 좌종당과의 관계와 그 신분 때문에 장사를 하면 할수록 더욱 부자가 되었고, 죽장(粥长), 선당(善堂, 옛날 각 고을에 있던 자선단체), 수복고사(修复古寺, 수리점) 등등을 세워서 백성들의 편의를 도모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늘 좋은 이미지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호설암의 전성기는 좌종당의 신강(新疆) 수복을 도운 뒤였을 것입니다. 좌종당이 신강을 수복할 때 병사를 거느리고 싸워야 했는데, 양식과 자금이 필요했지만 당시에는 자금도 충분하지 않았고 외채 차입도 어려웠으며, 공친왕(恭亲王)이 외국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조차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좌종당은 호설암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도와줄 것을 부탁했고, 호설암은 두말 하지 않고 도와주었습니다. 이후 호설암은 좌종당의 성공적인 신강 수복을 도운 공로로 포정사함(布政使衔)으로 임명되었고, 사성공고(四省公库)를 총괄하였으며, 황마고자(黄马褂)와 이품 빨간 모자를 착용하는 등 당시 가장 유명한 홍정(红顶)상인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 모든 성과를 통해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 앞의 명예욕에 눈이 멀어서 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해에 실크 공장을 차려 실크 무역을 독점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초반의 운이 다한 탓인지 후반의 인생에선 불운이 겹쳤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방법 때문에 외국 상인들이 그에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모두 연합하여 그를 보이콧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가 우세했지만, 이탈리아의 생사가 갑자기 풍작을 맞이한데다 중국-프랑스 전쟁까지 겹치면서 경제가 급변했습니다. 국면의 변화로 인해 호설암은 오랫동안 분투해온 것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렸고, 게다가 좌종당의 조정에서의 위치마저 불안해져서 그는 의지할 곳을 잃었습니다. 그후 호설암의 자산은 차압되거나 저당잡혔고, 그 자신도 관직을 박탈당했으며, 아무것도 남지 않은채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얼마후 그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호설암의 이와 같은 인생은 굴곡이 심했는데요, 만약 욕심을 더 부리지 않았다면 만년에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을 테지만,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었던 것이지요. 그는 죽기 전에 인생을 회상하며 "백호물근(白虎勿近)"을 경계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백호란 백은(白银)을 가리킵니다. 그는 인생의 모든 일이 돈 때문에 일어나는데, 돈은 그에게 공명과 좋은 생활을 하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그를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돈 때문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그렇게까지 가난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후인들에게 그는 돈에 너무 빠져 있지 말라고 충고하였고,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그의 충고를 새겨들었고, 호씨 후손 중에는 거의 장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재물을 위해 일을 하고 먹고 살지만, 사실은 그가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안 좋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전(钱)"이라는 글자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요, 전(钱)은 정말로 사람의 이성을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패가망신 하기도 했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사실 돈 자체에는 잘못이 없고, 잘못은 인간성이 하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늘 탐욕스러워서 한 가지 일에서 단 맛을 보면, 한 없이 추구하고, 결국에는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항상 탐욕을 경계하고 인생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이야기의 교훈인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白虎”是何物?晚清首富胡雪岩,去世前告诫子孙:勿近白虎
如果你把金钱当成上帝,它便会像魔鬼一样折磨你。——菲尔丁 不管是古代还是现在,社会上总是存在着两个极端,一个极端是非常富有的人,还有个极端是非常贫穷的人。但凡事不能有绝对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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