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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휠체어에 타고 전장을 지휘한 이유는?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제갈량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유비가 삼고초려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산을 나와 유비를 도왔던 제갈량의 활약상을 보면, 얼마나 제갈량의 기교가 대단하고 지능이 뛰어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으면 나쁜 병균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두 사람이 싸울 때,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쑨빈(孙膑)인데, 다만 그는 두 다리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쑨빈은 춘추전국시대 유명한 군사가였는데, 그의 사부는 꾸이구(鬼谷)로서, 쑨빈과 사부가 비슷한 시기에 산에서 산을 나왔습니다. 산을 나온 뒤, 제자들에게 몸을 의탁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일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동문인 팡줸(庞涓)이 쑨빈이 황제의 중용을 받아 자신의 입지가 없어질까봐 두려워하여 나쁜 꾀를 생각해낼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팡줸은 잔인한 수단으로 쑨빈의 두 무릎 뼈를 파냈고, 이렇게 되어 쑨빈은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대에 전쟁을 치른 장군들은 모두 말을 타고 갑옷을 입어 위풍당당해 보이는데요, 앉아서 싸우는 장군은 거의 없고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군대를 데리고 전쟁을 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병사들에게 모범을 보였을까요?
두 다리의 장애때문에 걸을 수 없어서 휠체어를 타야했던 쑨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갈량이 왜 휠체어를 타야했을까요?
제갈량은 사실 휠체어를 타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는 신체가 건강했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장군들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마술이 뛰어났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휠체어를 탄 이유는, 당시 전쟁을 치른 환경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만약, 장군이 모두 말을 타고 도망쳤는데, 소병이 목숨을 걸고 자신을 위해 뛸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총명한 제갈량은 자신이 말을 타지 않고 휠체어에 앉아서 거동이 불편하게 하여, 소병들과 비슷한 속력을 유지하며 도망가지 않고 소병들 곁에서 존망을 함께 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병사인데, 대열의 장군이 자신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면, 적이 쳐들어 올때 도망갈 병사가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제갈량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병사들에게 자신이 끝까지 병사들과 동일한 전선에 서 있고, 자신은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며, 그러니 병사들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을 손수 보여준 셈입니다. 그렇다면 병사들은 더욱 용맹하게 싸울 수 있게 되겠죠.
제갈량은 항상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길게 기르고, 손에는 깃털 부채 하나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자같은 모습이지요. 병사들을 데리고 전쟁을 할때,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 맨 앞에 앉았고, 뒤에는 병사들을 정렬하며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앞에 서서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제갈량은 용맹함도 갖추고 지략도 갖춘 유비의 좋은 책사였습니다. 또한 전쟁터를 주름잡는 훌륭한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용감하고 모략이 뛰어난 사람은 그야말로 얻기 힘든 인재인데, 그와 유비의 주종 관계를 뛰어넘는 감정도 감동적입니다.
유비는 죽음을 앞두고, 제갈량에게 아두(阿斗, 유비의 아들 유선의 아명)를 잘 보필해달라고 했습니다. 비록 그가 아두를 보필하는 신하는 아니었지만, 제갈량은 자신의 직책을 다 했을 뿐만아니라, 유비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아두를 잘 보필하여 황제로 추대했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갈량은 황위에는 욕심을 내지 않았고, 한 치의 시행착오도 없이 자신의 본분을 다 했습니다. 그가 쓴 <출사표>도 읽어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대목이 있어서 그의 충심과 정성이 더욱 돋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종관계를 넘어선 유대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몇 없었습니다.
또한 용감하게 싸운 장군도 많고, 많은 공훈을 세운 사람들은 많았지만, 제갈량처럼 휠체어에 앉아 병사들에게 모범을 보인 장군은 없었습니다. 제갈량은 솔선수범하여 전투를 할 때에도 휠체어에 앉아서 병사들을 이끌었는데,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방법으로 병사들을 이끌었던 훌륭한 장군은 없었을 것입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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