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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yuku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오늘 소개할 중국 기사의 인물은 바로, 산둥(山东)성의 한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은퇴한 이후에도 누추한 차고에서 몇 년 동안 뚝딱거리며 발명품을 만들어냈고, 손쉽게 여러 국가 특허를 획득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공장들이 이 할아버지를 방문하여 특허를 사가고, 합작 요청을 하고, 또 많은 매체와 왕훙들도 이 할아버지와 함께 전문적으로 촬영을 하였다고 하는데요, 이 할아버지의 별명도 바로 "하드코어 할아버지(硬核大爷)"라고 합니다. 이 산둥성의 하드코어 할아버지는 어떻게 현지의 "데이터 담당(流量担当)"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도대체 무엇을 발명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은퇴 교사로서 발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살펴볼 이 기..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천재란 대체 무엇일까요? 천재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신이 내린 것처럼 대단해보이고, 우러러보이곤 하지만, 천재가 막을 내리고 누각이 무너지면 세상의 깊은 외면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천재의 뒤에는 늘 고독함이 뒤따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보통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1. 천재 소녀의 영휘(荣耀) 1994년 텐진(天津)에서는 집집마다 자기 아이의 귀를 잡아당기며 다른 집 애들좀 본받으라고 야단을 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의 아이 팡시우위(庞秀玉)는 보통 가정에서 길러진 천재 소녀였습니다.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팡시우위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독립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고, 문장의 수식이 화려하여 나중에 반드시 작가가 되라고 ..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은 최근 중국의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피땀흘려 고생하여 나온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날들이 오려면 오직 분투만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지요. 샤오캉은 간단한 숫자가 아닌, 여러분과 주위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실제 생활입니다. 중국 CCTV 뉴스에서 내놓은 칼럼 에서는 생생히 살아있는 샤오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11년 전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다고 하네요. 무슨 이야기인지 한번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2010년에 촬영되어 온라인에서 퍼진 바 있습니다. 사진 속에서 충칭의 "짐꾼(棒棒)"이라 불린 란광후이(冉光辉)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100여 근에 달하는 짐을 메고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충칭 차오텐먼 도..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오늘 살펴볼 기사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헤어져 미아가 되어 살아오다가, 나중에 자라서 부모님과 재회하게 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대체 무슨 일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89년, 4살배기 남자아이였던 마지밍(马继明)이 청두 베이 기차역(成都火车北站)에서 실종된 이후, 위정총(余正琼)은 아들을 찾기 위한 길고 더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모든 엄마들처럼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했음에도 소식이 없자, 이젠 집착만이 남아 삶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32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베이 기차역을 지켰던 그녀는 언젠가 아련한 기억 속에서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인파 속에서 늘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은 아들을 ..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최근 중국에선 드라마 에서 몇 명의 여자아이들이 베이징에 상경해서 분투하는 모습을 그리며 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인생의 다양한 단계에서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데요, 직장에서의 투쟁은 이제 대다수 젊은이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9시부터 5시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긴 시간 야근을 하기도 합니다. 칼퇴하고 나만의 여유를 갖기란 불가능한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 사회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들의 경우, 가계 지출, 주택 대출, 자동차 대출 등등은 몸을 짓누르는 큰 바위같은 존재들입니다. 이 때문에 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고, 심지어는 숨이 막..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1950년, 28세였던 마오안잉(毛岸英)은 한국전쟁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마오쩌둥 주석의 장남이었는데요, 그때부터 마오 주석의 곁에는 유일한 아들 마오안칭(毛岸青)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오 주석에게는 또 다른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안타깝게도 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오안룽(毛岸龙)이 4살때 형 마오안잉, 마오안칭과 함께 상하이를 떠돌다가 불행하게도 길을 잃어 소식이 끊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오안훙(毛岸红)은 마오 주석의 넷째 아들이었는데, 대장정을 떠나기 전날 밤, 부모와 떨어져 행방불명되었다고 합니다. 신중국 건국 후, 허쯔젼(贺子珍)은 마오안훙을 매우 그리워하여, 장시성 성장(江西省省长)에게 부탁하여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였는데, 하늘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