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yuku

중국의 '샤오캉(小康)' 이야기 본문

China news

중국의 '샤오캉(小康)' 이야기

hanyuku 2021. 11. 15.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적전면소강(中国的全面小康)>은 최근 중국의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피땀흘려 고생하여 나온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날들이 오려면 오직 분투만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지요.

 

 

샤오캉은 간단한 숫자가 아닌, 여러분과 주위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실제 생활입니다. 중국 CCTV 뉴스에서 내놓은 칼럼 <아문적일자유분투(我们的日子有奔头)>에서는 생생히 살아있는 샤오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11년 전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다고 하네요. 무슨 이야기인지 한번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2010년에 촬영되어 온라인에서 퍼진 바 있습니다. 사진 속에서 충칭의 "짐꾼(棒棒)"이라 불린 란광후이(冉光辉)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100여 근에 달하는 짐을 메고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충칭 차오텐먼 도매시장(重庆朝天门批发市场) 옆 계단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어깨에는 삶을 짊어지고, 손에는 미래를 쥐고 간다."고도 말했는데요, 11년이 흐른 지금, 이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요?

 

 

그와 아들의 사진은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진이라고 합니다.

 

 

란광후이는 원래 충칭 뎬장(重庆垫江)의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는 농부입니다. 그는 농한기에는 시내 각 부두와 상가에 가서 짐을 옮겨주는 짐꾼일을 하며 가정에 보탬이 되었습니다. 2009년, 그는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시로 이사를 간다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40세 였던 란광후이는 충칭으로 건너가 전업 짐꾼이 되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란광후이 일가는 낡을대로 낡고 허름한 쪽방촌에 일가족이 세들어 살았습니다. 비좁은 셋방살이에서 몇 식구가 붐벼 살며, 아이들은 부뚜막 옆에 작은 탁자를 놓고 부엌의 불빛을 빌려 숙제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란광후이에게는 늘 내 집 한 채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죠.

 

 

 

2015년, 란광후이와 적지않은 "짐꾼"들이 많이 살던 쪽방촌은 이미 철거되었습니다.

 

 

 

 

 

란광후이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쳐 일했습니다.

 

 

1년 365일, 란광후이ㅡㄴ 거의 350일을 짐을 나르며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일했습니다. 매일 해벽마다 일거리를 잡으러 집을 나섰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가장 바쁠 때는 24시간 동안 잠도 못자고 일했습니다.

 

 

짐을 지고 나를 때, 란광후이는 대부분 웃통을 벗고 날랐는데요, 칼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에도 그는 옷을 벗고 밧줄을 힘껏 움켜쥐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이유는 옷을 입으면 짐이 자꾸 미끄러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옷을 벗으면 짐을 메기도 쉽기 때문에, 그는 짐을 다 나른 후에는 빨리 옷을 입고 다음 업무를 기다렸습니다.

 

 

 

늘 손으로 짐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굳은살도 많아지고, 손가락 마디도 심하게 변형되어 마디마디가 바깥쪽으로 툭툭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매의 발같은 강인함 덕분에 그는 짐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장기간 허리를 굽혀 무거운 짐을 메고 다녔기 때문에, 란광후이의 허리에도 한때 문제가 생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이 났을 때는 몇 걸음만 걸어도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죠.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란광후이는 포기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힘으로 돈을 버는게 기본이지만, 내 힘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들지 않습니다."

 

 

당시 그의 아내가 식당에서 일을 했었는데요, 일하는 바람에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자, 란광후이는 아들 란쥔차오(冉俊超)를 데리고 짐을 날랐습니다. 란광후이는 "내 일이 자유롭기 때문에 수시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짐을 날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드디어 도시에 내 집마련에 성공하였습니다.

 

 

짐을 한 보따리씩 떠맡아 나르는 나날들을 바탕으로, 2016년에는 비로소 란광후이가 충칭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인 "제팡베이(解放碑)" 인근에 대출을 받아 60 평방미터짜리 중고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란광후이에게 유난히 소중한 집이었습니다. 아들이 더이상 부엌 불빛을 쬐며 숙제를 할 필요가 없고, 가족들도 비가 올 때 물이 새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씻을 곳이 없을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죠.

 

 

그의 아내 취광팡(瞿光芳)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온 첫 날, 부부가 거실 소파에 앉아 오랫동안 서로 마주보고 웃다가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집을 마련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어요. 남편이 피땀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이에요."

 

 

 

집이 생기니 마음에도 믿을 곳이 생긴 것 같습니다. 비록 아직 갚아야 할 주택 대출금이 적지 않지만, 가족의 생활은 갈수록 희망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주택 대출이 줄어들수록, 생활고를 덜 받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명해졌고, 그를 전속 모델로 영입하여 수익성을 확보해주겠다는 제의도 적지 않게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왕훙(网红)이 되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이 직장이 비록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며 모두 거절했습니다.

 

 

 

얼마나 더 오래 짐꾼으로 일할 것이냐는 질문에, 란광후이는 "내가 못할 때까지 할 것입니다. 지금은 먼저 아들을 키워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을 떠올리며, "아이가 철이 들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쉴 때는 밥도 지어주고 집안일도 돕습니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지금 란광후이의 가장 큰 소원은, 열심히 일해서 아이를 위해 돈을 좀 더 모아 공부를 뒷바라지 해주는 것입니다.

 

 

올해 7월 하순, 허난(河南)성 수해 피해때도, 그는 1000위안을 자발적으로 기부하였습니다. "일반인으로서 비록 적은 돈이지만, 내 마음을 보태고 싶습니다."

 

 

 

좋은 날이 오든, 오지 않든, 오직 열심히 분투해야만 비로소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란광후이는 사실, 많은 평범한 중국인들의 축소판입니다. 이러한 수천 수만 개의 작은 가정들이 모여, 힘을 모아 분투하여 마침내 샤오캉의 아름다운 비전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기사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8453204174644753374%22%7D&n_type=-1&p_from=-1

 

这张照片曾火遍全国,如今他的故事比照片更动人

《中国的全面小康》白皮书近日发表:中国的全面小康,是辛辛苦苦干出来的。好日子唯有奋斗,别无他路。 小康,不是一个简单的数字,而是你和周围人可见可感的真实生活。央视新闻推出专

mbd.baidu.com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