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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쑤성의 대부호, 헝리 그룹(恒力集团) 천젠화(陈建华)의 인생 스토리 본문
오늘날 장쑤(江苏)성의 부호를 말하자면, 이 한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바로 천젠화(陈建华)인데요, 중국인들은 인생은 새옹지마라 비복(非福)을 알 수 없다고들 말하는데, 천젠화아먈로 이 속담에 걸맞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천젠화는 부상을 당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스스로 창업에 나섰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천억 위안대 부자가 되었다고 하네요.
천젠화는 그야말로 인생의 승자입니다. 그는 지금도 사업이 잘 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내 판웨이훙(范卫红)과도 아주 금슬이 좋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여자가 남자보다 3살 연상이면 금괴 세 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판웨이훙은 천젠화보다 4살 연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중국 남자들은 연상의 여자를 아내로 원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러나 사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정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리화와 츠중루이(陈丽华跟迟重瑞)는 서로 10살이나 차이나는 연상연하 부부이지만, 두 사람은 오늘날까지도 서로 감정이 매우 좋고 결혼 생활도 매우 행복하다고 합니다. 천젠화와 판웨이훙 두 사람도 감정이 좋을 뿐만 아니라, 부창부수로 거대한 헝리 그룹(恒力集团)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헝리 그룹은 현재 중국의 최대 화석 그룹(化石集团) 중 하나로, 연간 6천억 위안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오늘날 헝리 그룹은 이미 중국 본토의 민영 기업들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기업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장쑤성(江苏)의 헝리 그룹(恒力集团)이고, 또 다른 하나는 광둥성(广东)의 정웨이 그룹(正威集团)이라고 하는데요, 이 두 회사들은 모두 중국 실물 경제를 대표하는 회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젠화와 왕원인(王文银)은 모두 매우 조용한 기업 대표들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은 천젠화가 매일 출퇴근을 헬기로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천젠화의 재산으로 헬리콥터를 하나 산다는 것은 껌값이라고 하는데요, 일반 사람들이 대출받아 벤츠나 BMW를 사면서 허세를 부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또한 천젠화가 헬기를 타고 출퇴근 하는 것은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로에서 교통체증을 피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사실 오늘날 중국의 부자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업가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일을 위해서 산 것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게다가 사람들은 매일 자가용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닙니다.
이전의 중국 최고 부자였던 리허쥔(李河君)도 개인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당시 그는 늘 개인 비행기를 타고 도처를 다녔었는데, 나중에 한넝 그룹(汉能集团)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비로소 이 개인 비행기가 리스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허세였죠.
사실 헝리 그룹은 이미 시가 총액이 수천억에 달하고, 언매출 6천여억 위안을 올리는 거물인데요, 이런 성과를 내면서도 천젠화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천젠화는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역시도 언론에 인터뷰를 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죠.
오늘날 천억 위안대 몸값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 천젠화의 집이 매우 가난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13세때, 천젠화는 학비를 내지 못해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교를 중퇴한 후 천젠화는 생계를 위한 방법을 강구해내야 했는데요, 천젠화는 생존을 위해 현장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당시 천젠화는 13세로, 아직 체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천젠화가 실수로 고가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침대에 누운지 몇 달이 지나자 천젠화는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강도높은 체력을 요구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죠.
천젠화는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자 수입원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척 애가 탔는데, 어느 날 그는 문득 생사 부스러기(废丝, 폐사)를 받으러 가면 좋겠다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장성(江浙) 일대에는 비단 장사가 많았고, 견직 공장이 많았습니다. 이들 공장에서는 매일 많은 양의 폐사가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폐사들도 처리를 거친다면 사용할 수 있었죠.
천젠화는 자전거로 매일 견직공장들을 돌며 폐사를 사들인 뒤, 다른 사람에게 되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천젠화는 매일 너무 힘들었는데요, 동이 트면 출발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천젠화는 하루에 100근(斤)의 폐사를 받을 수 있었고, 이것으로 약 20~30위안을 벌 수 있었습니다.
20~30위안을 우습게 여기만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돈은 당시 이미 많은 사람들의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였기 때문이죠. 당시에만 해도 월급 1만 위안을 번다는 것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천젠화는 이렇게 일해서 한 달에 1천 위안 정도 벌 수 있었고, 1년 후에는 한 달에 1만 위안을 벌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천젠화는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일했고, 사업도 점점 커졌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천젠화는 겨우 20대 초반이었지만, 이미 수백만 위안을 손에 쥐고 있던 그는 고향의 견직공장 개조를 앞두고, 이 공장을 인수하는 모험을 감행하였습니다. 당시 이 공장은 계속 적자를 내고 있었는데, 천젠화는 이 공장을 인수하여 공장을 개조하는 한편, 낙후된 설비를 모두 첨단 설비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공장 개혁에 성공하여 천젠화의 공장은 2년도 안 되어 이윤이 천만 위안을 넘어섰습니다.
천젠화는 돈을 벌어서 모두 공장에 다시 재투자했고, 이로 인해 공장의 수익성도 높아지고 규모도 커졌습니다. 2003년 무렵이 되자, 이미 공장의 규모는 꽤 커졌고, 이 때에도 천젠화는 계속 거액을 들여 설비를 늘리면서 산업 전반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천젠화는 2010년에 한꺼번에 다롄(大连)에 260억 위안을 투자하여 석유 화학 사업을 발전시켰고, 외국의 독점을 깨뜨리고 산업 사슬의 상하류를 타파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2~3년 동안, 자본 시장은 실물 기업을 중시하게 되면서 헝리 그룹의 시총은 높아졌고, 천젠화의 개인 재산도 껑충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천젠화의 인생 이야기를 보니 정말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것 같네요^^
<참고기사>
陈建华坐拥千亿,为了不堵车每天坐直升机上班,妻子比自己大4岁 (baidu.com)
陈建华坐拥千亿,为了不堵车每天坐直升机上班,妻子比自己大4岁
说到如今的江苏富豪,不得不提到一个人,这个人就是陈建华,中国人说塞翁失马焉知非福,在陈建华身上就体现得最好了。当年陈建华因为受伤无法继续工作,结果只能自己去创业,如今成为
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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