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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늦깎이 미술 만학도의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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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늦깎이 미술 만학도의 이야기

hanyuku 2021. 11. 10.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배움에 이르고 빠름은 없는 법이죠. 오늘 살펴볼 중국 기사의 주인공은 늦깎이 만학 미술학도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6월, 중국 미술대학(中国美术学院)을 졸업한 후, 쉬안링(徐安玲)은 각지를 전전하다가, 국경절 전에 막 돌아왔는데, 명절 후에 또 다른 곳으로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녀는 보라색 상의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머리를 검게 염색하여서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보기엔 도무지 70대의 나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여러 직종을 두루 다니며 일하다가, 은퇴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여 중국 미술학원에서 복수 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또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이 어떻게 늙어보일 수 있겠습니까?

 

 

그녀가 말하길, 마음에서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으면 하나도 늦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중학교도 다 못마치고 정비공, 운전기사, 이발사로 일했던 상하이 아가씨

 

 

쉬안링 아주머니의 집은 항저우시 궁슈구 차오후이거리 따오샹위안 커뮤니티(杭州市拱墅区朝晖街道稻香园社区)에 있습니다.

 

 

집은 1층에 있는데, 조금 낡았지만 아주 커서, 방이 네 칸인데다가 거의 100평에 가깝습니다. 차오난의 집은 현재 쉬안링 아주머니의 화실로 사용되고 있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작은 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벽에는 그림이 가득 걸려있는데요, 한눈에 봐도 온통 그림 세계입니다. 산수, 화조, 인물, 유화 등등 거의 모두 표구가 없는 나화(裸画)입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일부 도화지는 이미 누렇게 변색이 되고 주름이 생겼지만, 쉬안링은 "벽에 건 그림 한 장 한 장이 모두 값비싼 것이라, 이렇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림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들이 모두 자신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낡고 망가져도 자신이 붓을 들 힘만 있으면 더 잘 그려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실 문틀 위에는 그녀의 학위 증명서가 벽에 높이 붙어 있어서 눈에 띄었습니다.

 

 

 

 

 

거실에 앉아서 밥을 먹을 때마다 그 증서들이 보이는데, 내 스스로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생을 다하고 결국 졸업하였으니까요." 그녀는 내심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상하이 뒷골목에서 태어난 이 아가씨는 집안에 결코 그림을 그리는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넓게 살펴보자면,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길가에서 남의 책을 대신 필사해주는 일을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원래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쉬안링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그녀는 선녀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중학교까지만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다가 졸업하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이후에 그녀는 상하이 진산(上海金山)으로 가서 기계를 수리하는 수리공으로 일했습니다. 남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지만, 쉬안링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전기 용접 등을 능히 해냈고, 항상 혼자서 일을 끝마치는 것도 불평없이 하였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기술을 가지고 남편을 따라 항저우로 와서 공장에서 기술공으로 일했으며, 여행회사에서 승합차를 운전하기도 하였고, 우린먼 장거리기차역(武林门长途汽车站)에서 역장을 지냈으며, 이발소에서 스승에게 머리를 깎는 법을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생계를 위해 쉬안링은 수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두 아들이 결혼하자, 그녀는 퇴직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며 인생의 대부분을 바쁘게 보냈던 쉬안링은 이제 자신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58세에 공부하기 시작하여 70세에 복수 학사 학위 취득

 

 

그동안 그녀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녀는 노인대학에 등록하여 얼후, 전자오르간, 회화(二胡、电子琴、绘画)를 배웠고, 매일의 생활이 다채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배우는데도 체계적으로 전공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에 집중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친구의 말에 의하면, 중국 미술대학(中国美术学院)에 연수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2009년, 58세였던 그녀는 5년짜리 과정에 지원하였습니다. "정말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녀는 또한 뜻밖에도 그당시 서예를 배웠는데요, 하루 종일 밤을 새서 써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2013년, 그녀는 전국 통일 대학입학시험(全国统考)에 참가하여 중국 미술대학에 시니어 전문반에 합격하였습니다. 2017년, 그녀는 승승장구하면서 87점의 성적으로 합격점을 뛰어넘어 중국 미술대학 서예전공에 합격하였습니다. 본과에서 그녀가 첫번째 예술학 학사 학위를 무사히 받았을 때, 그녀의 두번째 학사 학위는 이미 진행중이었고, 이번에 공부하는 것은 전통회화인 국화(国画)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 70세의 나이에 그녀는 두번째 예술학 학사 국화 전공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녀는 문화수업(文化课, 우리나라의 국영수 등 기본 과목과 비슷)은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 외울 수 밖에 없었고, 특히 영어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병음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영어를 보면 둘이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둘을 완전히 혼동하여 헷갈렸습니다. 단어를 한 번씩 베끼고 외우고 언제 어디서나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앞만 외우고 뒤는 잊어버리기도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장 무지막지한 둔한 방법으로도 그녀는 영어 시험을 통과해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매일 서너 시간씩 연습하면, 그녀는 더 많이 그림을 연습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습니다. 그 기간동안은 아예 침실에 돌아가지 않고 화실에 머물며 매일 밤 12시까지 연습하였고, 교실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자고 일찍 일어나 연습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처음으로 반에 들어와서 마지막으로 교실을 떠나는 학생이었습니다.

 

 

매번 시험을 칠 때마다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합니다. "시험 기간마다 시험장 근처 모텔에 방을 잡아놓고, 새벽 4~5시까지 공부하며 두세 시간만 자고 시험을 봤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시험 기간에 화장실에 가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일회용 성인용 기저귀를 입고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마침내 쉬안링은 졸업장을 땄고, 만학도로써의 기량을 얻게 되었습니다.

 

 

손주뻘 젊은이들과 동창이었지만, 어색함과 세대차이를 극복하다

 

 

그녀가 거실에 붙여놓은 졸업 사진에는 학사복 차림의 쉬안링이 웃는 얼굴로 젊은 친구들의 곁에 서 있습니다. 아마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가 선생님인 줄 알것 입니다.

 

 

 

 

환갑을 맞이한 나이에, 17세~20대 젊은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함께 다니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한 번은 시험장에서 경비원이 "학부모는 밖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라며 말렸습니다. 그러자 쉬안링은 시험장을 내미며 당당하게 "제가 바로 수험생입니다."라며 씩씩하게 대답했고, 경비원 아저씨는 놀라며 민망해했습니다.

 

 

쉬안링이 강의실에 들어간 첫 날, 친구들은 그녀가 교실을 잘못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다른 학생의 어머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들어와 "쉬 아주머니(徐阿姨), 혹은 쉬 할머니(徐奶奶)라고 부르면 안 된다. 왜냐하면 너희 모두 내 학생들이니, 쉬 언니(徐姐)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친구든 선생님이든 그녀를 쉬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본과에선 4인 1실 기숙사를 썼는데요, 여기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내 나이가 어린 친구들의 부모들보다 나이가 많을텐데, 함께 생활해야 하니까, 언제나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쉬안링은 젊은이들의 생활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친구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게 공부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엄격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룸메이트들에게 "저녁에 머리를 일찍 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머리 말리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가급적 밤을 새우지 말고, 쉬는 시간에도 음량을 줄여야 한다."고 잔소리 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고, 룸메이트가 아직 잠든 사이에 그녀는 살금살금 세면도구를 들고 교실에 갈 정도였지요.

 

 

처음엔 아이들도 '반항'과 '불복종'을 했지만, 주말마다 집에서 과일을 사와 나눠주고, 기숙사 위생도 도맡아주면서 점점 룸메이트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졸업한 후, 동기들은 일부는 교육 기관으로 가고, 어떤 사람들은 대학원 진학을 했고, 쉬안링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전국 미전(全国美展)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수많은 작품, 국화, 전각, 서예를 창작하였습니다.

그녀는 "화랑이 찾아와 작품을 팔라고 했지만 사양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전부 다 소장하고 있다가 나중에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모두 엄마의 재산이고 유산이니까요."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8602115892011264502%22%7D&n_type=-1&p_fr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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