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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메이더(美的) 기업의 창립자 중 한 명인 허샹젠(何享健)의 자수성가 인생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에서 개혁 개방시기에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잡고 커다란 부를 쌓았습니다. 그 중에는 귀에 익은 유명인들도 무수히 많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완다(万达)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완다 그룹은 중국에서 부동산 선두 기업이고, 회장인 왕젠린(王健林)의 예민한 후각은 완다 그룹을 하나하나 최고봉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 인터넷의 선구자인 알리바바 그룹의 경우, 알리바바 그룹에서 출시한 타오바오는 수많은 중국 네티즌들에게 온라인 쇼핑의 편의를 제공하였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온라인 쇼핑 사업의 부단한 발전으로, 현재 이러한 것들은 중국에서 "신4대발명(新四大发明)"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에 방문한 많은 외국인들은 중국의 인터넷 쇼핑 발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중국의 그 넓은 영토 안에서도 사나흘이면 물건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전기 업계의 선두 기업 역시도 개혁 개방의 큰 수혜자라고 합니다. 바로 개혁 개방 시기에 초등학교 학력에 불과한 이 기업의 사장은 발전의 큰 흐름에 합류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오늘날 중국에서 누구나 다 아는 기업을 창조하여 천억 위안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볼 기사에서는 바로 이 인물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수성가하다
허샹젠(何享健)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 많은 중국인들은 중국의 유명한 기업인 메이더(美的)의 창립자 중 한 명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의 문화 수준은 결코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메이더를 가전 업계의 선두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매우 노력하였습니다.
허샹젠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업을 그만 두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만약 그가 농사를 짓는 일에 만족하여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오늘날 "메이더"의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농사를 짓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 결국 공장에 들어가 일하다가, 나중에는 거리 청소부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청소부가 된 후, 허샹젠은 모두의 취업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일자리가 적었기 때문에 허샹젠은 고향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북교가판 플라스틱 생산팀(北滘街办塑料生产组)을 만들어 함께 노력하였습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정보의 유통이 더디던 그 시절, 그러한 불편한 점 때문에 큰 사업을 이루기는 어려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사를 위해 일년 내내 뛰어다니며 노숙도 하는 등 여러모로 힘을 썼음에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허샹젠은 오랫동안 험난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구르며 감각을 키운 덕에 개혁 개방이 도래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허샹젠은 밖에서 수요처를 찾아와 작은 작업장으로 가져왔고, 동료들과 함께 생산하면서 서서히 수공예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 작은 작업장에서 선풍기를 만드는 일거리를 접수하였는데, 이 작업을 통해 허샹젠은 중국에서 광활한 선풍기 시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선풍기를 연구개발하는 데에는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팀을 이끌고 자체 선풍기를 개발하여 선풍기를 양산할 수 있었습니다.
끈질긴 노력으로 그들은 품질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고, 고객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선풍기 업계에서 일파만파 커지며 중국 선풍기 업계의 선두 자리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출신이지만, 마음 속에 큰 뜻을 품고 있는 허샹젠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팀에서 더 열심히 생산하였고, 창의성을 중의하는 그의 리더십 아래에 메이더는 성공적으로 커나가 상장에 성공하여 현재 시가는 이미 천억 위안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습니다.
외부인에게 회사를 맡기다
메이더가 발전하기 시작한 후, 허샹젠은 과학기술형 인재를 많이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오직 과학 기술의 끊임없는 혁신만이 메이더를 불패의 위치에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메이더가 인재를 모집할 때, 팡훙보(方洪波)가 메이더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팡풍보가 입사하던 시기에 그는 일개 사내 출판물 편집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허샹젠을 따라 여러 자리에 자주 참석하였습니다. 허샹젠은 비록 본인의 문화 수준은 떨어지지만, 처세나 장사 스킬 방면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길이 있었고, 팡훙보는 허샹젠을 따라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메이더는 갈수록 발전이 빨라지고 덩치도 커졌는데요, 허샹젠이 나이가 들면서 회사 일이 힘에 부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허젠펑(何剑锋)은 천억대의 재산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가 보기엔 메이더 기업이 자신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가업을 이어받으면 아버지처럼 회사 일에 매달리며 자유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버지가 이룩한 메이더를 이어받기를 거부했습니다.
시가 총액이 천억 위안인 회사를 물려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허샹젠은 아들을 몰아붙이지 않고 그 기업을 외부인에게 맡겼습니다.
그 외부인이 바로 팡훙보였는데요, 팡훙보는 허샹젠과 여러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며 재능을 보였고, 허샹젠은 상업적인 재능이 있는 팡훙보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팡훙보는 기대에 부응하며, 메이더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고, 허샹젠이 팡훙보에게 메이더를 맡길 때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에게 완전히 권력을 넘겨준 것도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요, 지도자의 기대와 믿음을 한 몸에 받은 팡훙보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고 메이더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열심히 자선활동을 하다
메이더가 발전하게 된 이후, 허샹젠의 몸값도 껑충 뛰게 되었습니다. 그는 메이더에서 은퇴한 후, 재단을 세워 60억 위안을 사회 자선사업을 위해 기부하였고, 이 일로 광둥 자선차트에도 이름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허샹젠은 큰 돈을 번 뒤 호화로운 삶을 살 생각은 하지 않았고,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고 자선사업에 열중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더 많이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자선사업에 열심인 허샹젠은 자신이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을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자선 사업에 기여해 왔고, 현재 그의 자선 사업의 길은 점점 더 넓어지고 원대해져가고 있으며, 그의 사회적 책임감이 끊임없이 그가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허샹젠은 무일푼에서 오늘날 억만장자가 되기 까지 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났는데요, 그가 겪은 고생은 그 자신만이 알겠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상업제국을 위해 노력하였던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사회적으로 과학 기술과 인터넷이 발달되어 메이더의 창립 초기에 비하면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끝까지 분투의 정신을 발휘한다면 이 세상에 도달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굳게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참고기사>
捐60亿上广东慈善榜,因儿子无心继位,他将千亿企业拱手让给外人
随着改革开放的发展,我国许多人都抓住机遇,走上了致富之路,其中就有无数耳熟能详的名人。 提到万达肯定无人不知,无人不晓,万达集团是我国房地产的龙头企业,董事长王健林凭借着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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