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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를 만들어낸 쉬펑(徐枫)의 인생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찰고사(新警察故事)>라는 이 영화를 보았을 텐데요, 이 영화는 2004년 9월에 탄생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청룽(成龙)이 연기한 주인공의 이름이 천자쥐(陈家驹)에서 천궈룽(陈国荣)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이 이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장궈룽(张国荣)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추측이 틀리지 않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천무셩(陈木胜)이 장궈룽에게 촬영을 요청하려고 계획했다가 장궈룽이 출연하지 않았고, 같은 해 홍콩에서 장궈룽이 투신했던 것이지요. 청룽이 이 배역을 맡은 것은 사실 불을 끄러 온 것이었지만, 후에 장궈룽을 기리기 위해 청룽은 주인공의 이름을 천궈룽으로 바꾼 것이었다고 합니다.
청룽은 홍콩에서 따거(大哥)로 불리는데요, 이는 청룽이 강호의 지위가 매우 높기 때문이고, 반면 장궈룽은 거거(哥哥)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거거와 따거는 한 글자 차이가 있지만, 느낌이 완전 다르다고 하는데요, 따거는 우러러 보는 지위의 높은 큰 형님이고, 거거는 이웃집 오빠처럼 다정하고 친절한 이미지입니다.
거거 장궈룽이 세상을 떠난지 어느덧 18년이 지났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장궈룽하면 영화 <패왕별희(霸王别姬)>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미치광이가 아니고, 활착(成活)이 아닌 주인공 청뎨이(程蝶衣)의 모습은 장궈룽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것 같기도 합니다.
장궈룽과 청뎨이는 정말 사람이 연극과 동화되는 경지에 이르렀고, 결국 장궈룽의 결말은 영화 속 청뎨이와 같습니다. <패왕별희>가 곧 장궈룽, 장궈룽이 곧 <패왕별희>라면, 이 영화를 얘기할 때 쉬펑(徐枫)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쉬펑은 <패왕별희>의 프로듀서로, 그녀의 또 다른 신분은 홍콩의 탕천 그룹(汤臣集团)의 여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바로 탕천 그룹의 창립자 탕쥔녠(汤君年)입니다. 사실 쉬펑은 장궈룽의 배후에 있는 100억대 부호로, 그녀의 삶도 매우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쉬펑은 젊은 시절, 대만 유명 여배우로 금마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쉬펑의 당시 남편은 큰 빚을 지고 길을 나섰었습니다. 탕쥔녠은 빚을 받으러 쉬펑의 집에 찾아갔고, 쉬펑은 남편이 도망갔다고 하지만 돈을 떼먹지는 않겠다며 혼자 영화 촬영을 통해 번 돈으로 빚을 다 갚아주었습니다. 탕쥔녠은 쉬펑의 그러한 책임감에 끌렸고, 나중에 탕쥔녠이 그녀에게 구애하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결혼 후 쉬펑은 배우에서 영화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쉬펑은 본토에서 촬영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는데요, 한번은 탕쥔녠이 고향인 상하이에 돌아갈 때, 함께 따라 가면서 푸둥(浦东)이라는 풍수지리를 발견하였고, 그 후 "탕천이핀(汤臣一品, 상하이 최고 럭셔리 아파트)" 등의 걸작을 만들어 내어 푸둥 개발의 1인자라는 명성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당초 쉬펑과 탕쥔녠은 결혼하려고 했지만, 탕 씨네 집안에서 계속 반대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탕쥔녠은 계속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결국 쉬펑은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약속하였고, 그러자 탕 씨 집안에서 비로소 승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탕쥔녠이 결혼하고 나자 쉬펑에게 400만 위안의 현금을 주었는데, 그러면서 쉬펑에게 사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쉬펑은 이 돈을 가지고 차를 사거나 집을 사는 대신, 영화에 투자하였습니다. 쉬펑은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이왕 배우를 못하게 되었으니 사장 노릇을 하며 영화에 투자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지요. 쉬펑은 장만위(张曼玉)의 매니저 천쯔챵(陈自强)을 찾아갔고, 천쯔챵은 쉬펑에게 영화 한 편을 추천해주었는데요, 그것이 바로 리비화(李碧华) 원작 소설의 <패왕별희>였습니다.
리비화의 소설 <유승(诱僧)>, <청사(青蛇)>는 모두 영화로 만들어져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쉬펑은 <패왕별희>를 다 읽고 나서 푹 빠져들게 되었고, 리비화를 찾아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결국 쉬펑은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쉬펑은 진짜 좋은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고,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쉬펑은 베이징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본토 출신의 좋은 감독을 찾기로 결정했는데요, 그래서 그녀는 천카이거(陈凯歌) 감독을 찾았습니다. 천카이거는 처음에 이 영화는 봐줄수가 없다며 찍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쉬펑은 200여 시간을 들인 끝에 결국 천카이거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감독이 정해진 후, 몇 명의 주인공들에게 쉬펑은 더욱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리비화 작가는 <청사> 때부터 장궈룽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장궈룽은 쉬셴(许仙)이라는 이 캐릭터가 너무 약해서 연기하기 싫었다고 하였습니다. 리비화가 장궈룽을 추천하자, 쉬펑은 곧바로 장궈룽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장궈룽의 매니저는 청뎨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논란이 큰데다 장궈룽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장궈룽은 수많은 소녀들의 우상이었기 때문이지요.
이때 준룽(尊龙)이 나타났고, 그는 이 영화를 위해 다른 합작을 미뤄버리는 등 큰 성의를 보였습니다. 준룽은 당시 이미 세계적으로 인기있던 영화배우였고, 쉬펑은 바로 동의했습니다. 여주인공에 있어서는, 처음에 천카이거는 공리(巩俐)를 쓰기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공리는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의 어용여주(御用女主)였기 때문이지요.
쉬펑은 천카이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에 있어서는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만 있을 뿐, 누구의 사람인가로 구별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공리는 <패왕별희>에 출연하게 되었고, 이것은 공리가 여주인공이 되었던 비화였습니다. 이후 아태영화제에서 쉬펑은 준룽과 장궈룽을 동시에 만났습니다. 쉬펑은 둘 다 절세미남이지만, 준룽은 얼굴 각이 뚜렷해 장궈룽만큼 여성스럽지 못하므로, 장궈룽이 청뎬이의 역할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이때 준룽은 쉬펑과 계약서에 합의하지 않았던 상태였는데, 쉬펑도 그 틈을 타서 준룽과의 합작을 포기하고 장궈룽을 설득하였습니다. 천카이거는 처음엔 우려를 했지만, 그가 홍코에서 장궈룽을 만난 후,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장궈룽은 합류를 결정하였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당초에 흥행에 그다지 성공한 편은 아니었지만, 문학성이 뛰어난 문예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점차 이 영화의 진면목을 발견하며 충격을 겪게 되었고, 쉬펑은 결국 장궈룽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만약 장궈룽의 인생에 <패왕별희>가 없었다면 그의 빛나는 업적에 크나큰 손실을 입었을 것입니다.
장궈룽이 세상을 떠난 해, 쉬펑의 남편 탕쥔녠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쉬펑은 혼자서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두 아이를 데리고 탕천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탕천이핀은 아직 준공되지 않았었는데, 쉬펑은 이 사업을 완공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아파트를 완성하기 위해 탕쥔녠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었는데요, 90년대 초반부터 그는 푸둥에 오피스텔, 호텔, 골프장 등을 건설하는데 투자하느라 자금 압박이 심했습니다.
탕쥔녠이 세상을 떠난 뒤, 쉬펑은 위험을 무릅쓰고 탕천이핀의 분양가를 10만 위안으로 결정함으로써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상하이 평균 집값이 1만 위안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탕천이핀은 분양 시작 후 겨우 집 2채를 팔았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4분의 1밖에 팔지 못했지만, 이후에도 쉬펑은 일부러 낮은 가격에 팔지는 않았고, 상하이 집값이 올라가면서 집값 상승의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탕천이핀의 수백 채가 쉬펑에게 남아있는데요, 시가 총액은 수백억 위안대로 치솟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담함을 보면, 쉬펑은 극 중에서도 협녀(侠女)였지만, 연극 밖에서도 협녀인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张国荣背后的百亿女富豪,在上海有几百套豪宅,没她就没霸王别姬
许多人应该都看过《新警察故事》这部电影,这部电影诞生于2004年9月。在这部电影里面,成龙扮演的主角却把名字从陈家驹换成了陈国荣,看到这个名字许多人肯定会想到张国荣。 没错,这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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