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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계의 전설이던 왕잉홍(王永红)의 흥망성쇠 인생스토리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듯이, 흥하던 것도 때가 되면 쇠하게 되는 법이지요.
오늘 소개할 이 사람에게도 이 말이 적용될 것 같은데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한번 알아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시대적 좋은 운을 타면서 출세를 했지만, 곧 여러가지 이유들로 쇠퇴하게 되고는 합니다. 중국에서도 앞만보고 달려오며 엄청난 부를 일군 한 기업가가 탐욕을 부려 여자 스타 한 명과 61억 위안을 챙겨 800억 위안의 빚을 지고 해외로 도피했다는데요,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죄수의 신세가 된 이 사람은, 1974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모두 공무원으로, 이 집안은 비록 부유한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산층 가정인 셈으로, 왕잉홍(王永红)은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왕잉홍은 자동차 공장에서 청소부로 일했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장이 있긴 했지만, 왕잉홍은 오히려 청소부를 선택한 것이죠. 이것은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샀고, 아버지마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기 부끄러워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왕잉홍은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해도,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도 자신의 지향점이 얼마나 큰 지는 자신만 알고 있을 뿐 그것에 대해 해명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3년간 청소부로 일하면서, 3년간 청소를 해 본 경험 덕분에 왕잉홍은 자동차 청소업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왕잉홍은 국내 자동차 청소업과 관련해서는 아직 불모지인 것을 깨달았고, 그는 공장을 사직한 후, 자신이 일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자신의 형을 불러들여서 두 사람이 함께 전문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동차 청소 서비스 사업이었지요.
이후, 왕잉홍이 예상했던 대로, 자동차 청소업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주유소 사업에 뛰어들어 2년 동안 자신이 만든 주유소 체인점을 중국석유 천연가스그룹(CNPC)에 팔아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왕잉홍은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지요.
현대인들은 부동산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을 정도로 발전력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아직 번성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산업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에 뛰어드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왕잉홍은 부동산업에 진출하여, 차오양 구(朝阳区) 내의 상바이무(上百亩)의 토지를 싸게 사들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상황을 예측하여 정정당당하게 투자하고 버릴 줄 아는 능력인데, 왕잉홍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백미였습니다.
그는 이 토지를 사들인 뒤 개발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2008년까지 방치하다가 베이징이 발전하면서 토지 가격이 치솟자, 아파트 개발에 착수했고, 매물은 금세 동이 나버렸습니다. 왕잉홍은 이로 인해 강서(江西)의 갑부가 되었지요. 이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뛰어난 판단력과 안목으로 투자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왕잉홍은 재계의 전설로 떠올랐습니다.
중국 속설에는 "강산을 점령하는 것은 쉽지만, 강산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打江山容易,守江山难)"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회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왕잉홍은 심각한 부실 덩어리 프로젝트들을 많이 사들였고, 이러한 사업들에 손대면서 부담을 느끼게 되었지만, 단번에 전세를 역전시키면 될거라고 생각하며 다음 프로젝트의 성공에 기대를 걸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버렸고, 더욱이 10대 후반의 여배우 한시팅(韩熙庭)을 향해 일확천금을 걸어버렸습니다. 그녀를 위해 구애하며 그는 비싼 옷과 신발들을 선물했고, 억대의 골동품을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왕잉홍의 구애 공세에 넘어가게 되었고,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왕잉홍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이난(海南)과 관련한 한 프로젝트에서 어떤 한 채권자가 왕잉홍의 선불금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고, 왕잉홍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집을 사려고 계획했던 3천여 명이 계약 해지를 하게 되었고, 왕잉훙의 회사는 이로 인해 800억 위안의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왕잉홍은 책임 회피를 위해 폭로 직전에 60여억 위안의 현금을 빼돌렸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국외로 도피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조차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왕잉홍도 법 앞에서 영원히 피할 수는 없었고, 결국 그는 검거되었습니다.
사업계의 부호가 도산해서, 투옥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왕잉홍이 만약 리스크가 큰 일에 모험을 걸지 않고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택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겠지요.
<참고기사>
欠下800多亿逃去国外,带走一女明星和61亿,父亲下葬都没回来
自古以来,盛极而衰,枯荣轮转,此乃发展规律。不曾有长盛不衰的家族,也不曾有永世传承的王朝。清朝孔尚任言:“俺曾见,金陵玉树莺声晓,秦淮水榭花开早,谁知道容易冰消!眼看他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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