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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게 된 칭기즈칸의 후예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바람이 초원을 지나며, 얼마나 많은 전설을 흩어버리는지, 남아있는 것은 오직 당신의 이야기 뿐으로, 술과 밀크티에 의해 노래가 만들어지네...-<전설(传说)>"
칭기즈칸은 아마도 몽골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일 것입니다. 대몽골제국의 건립자이며 수많은 영토를 정복하였고, 수많은 전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풀리지 않은 많은 수수께끼들도 얽혀있지요.
선조의 전설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칭기즈칸의 일생에 이름을 남긴 아들은 6명이고, 손자는 40명에 가까워, 방대한 가족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기 1360년에 원나라 제국이 멸망하면서, 이 방대한 집안의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요,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아직도 세상에 남아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칭기즈칸의 직계 자손들은 원나라 왕조가 망한 이후 명나라 대에서 대가 끊겼을지 몰라도, 다른 방계 자손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지 오래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요행히 살아남은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이미 망망대해의 인파속으로 빨려들어간지 오래일 터이니, 그야말로 바다에 빠진 바늘을 찾는 격일 것입니다. 하지만, 쓰촨 일대에는 칭기즈칸의 후손이 있어서, 운 좋게도 선조의 뒤를 잇고 있다고 합니다. 이 후손들의 혈연관계는 칭기즈칸의 가족의 후예와 철목건(铁木健)까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철목건은 역사서상에 기록이 적어서 그의 신분에 대해서는 비교적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떤 사료에서는 그가 칭기즈칸의 같은 항렬의 형제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료에서는 그가 칭기즈칸의 증손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철목건과 칭기즈칸은 근친(近亲)이라는 것입니다.
철목건은 역사서에 "구자십진사(九子十进士)"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의 아홉 아들과 한 명의 사위가 모두 고중진사(高中进士)가 되어, 철목건 본인은 관배상경(官拜上卿)하였고, 그 공로로 원순제(元顺帝)로부터 친히 서평왕(西平王)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철목건이 생활하던 시기는 원나라 말엽으로, 원나라 말기의 황제 원순제는 혼탁무도하여 간교한 아첨을 총애하였고, 토목대흥을 하였으며, 여기에는 가혹한 잡세를 부과하였고, 천재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각지의 농민들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고, 원나라의 통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조정의 중신이었던 철목건은 오랜 기간 출정하였었는데, 원순제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철목건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수(木秀)와 임풍(林风)이 쳐들어오자,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철목건은 관직을 자진사퇴하고, 가족들과의 귀향을 요청해 황제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사방으로 떠돌다
그러나 벼슬을 그만 둔 철목건은 북방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원래 철목건은 원나라가 이미 쇠퇴해가고 있음을 간파했고, 멸망은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새로운 왕조가 건립된 후에는 지금의 원나라 귀족들이 반드시 피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철목건은 의연하게 자손들을 데리고 이름을 바꾸고는, 향야에 은거하며 닥쳐올 재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철목건 일가가 워낙 수가 많아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자, 도성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철목건은 시름에 빠져 죽게되었고, 그의 10명의 자손들은 아버지를 안장하고 각자 목숨을 도모하기로 합의하고는 자신들의 몽골 성을 '여(余)'라는 한족 성으로 바꾸었으며, 훗날 손자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암호문을 남겨 집집마다 시 한구절을 짓고 그것을 다 모으면 한 구절의 시가 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시에는 "본래 원나라 재상의 집이었는데, 홍건적이 서애에 난입하였다. 해가 저무는 언덕 위에서 손을 맞잡고 봉금교 끝에 버들가지를 꽂다. 하늘인가 운명인가, 애달픈 생각에 또 그를 그리워 한다. 열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 마치 파도가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과 같구나. 여(余)자는 두 세개의 성이 아니니, 한 가족이 수천만 집으로 나누어진 것이다.(本是元朝宰相家,红巾作乱入西涯。泸阳岸上分携手,凤锦桥头插柳杈。是天还是命,悲伤思我又思他。十人识别归何处,散时犹如浪卷沙。余字更无三两姓,一家分作万千家。)"
그들은 앞으로 한 가닥 핏줄이 남아있으면 이 시를 알아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곤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며,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아무도 이 이별이 수백년 전의 이별이며, 몽골인의 피가 흐르는 후손이 점점 한족에 녹아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대려 내려오는 조상의 가훈이 아니라면 그들 스스로도 칭기즈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명청 시대에는 원나라의 후손이라고 말할 배짱이 없었고, 가족을 찾던 계획도 계속 보류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그 아득히 먼 곳에 흩어진 혈육을 잊지 않았습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쓰촨성 위자완(余家湾)에 숨어있던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자신의 신분을 알리는데 나서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칭기즈칸의 후손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데다 그들은 아직도 친족을 찾고있다니요?
혈육을 찾는 여정
위자완의 마을 사람들은 바로 그 철목간 장남의 후손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조용히 쓰촨성이라는 작은 산골마을에 살았지만, 모든 세대는 자식들에게 반드시 친척을 찾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며 조상들의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이때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이미 쓰촨성에서 600년을 살아왔습니다.
600년이 지난 지금,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마상민족의 특징을 알아볼 수 없으며 한인에 가깝고, 많은 사람들은 몽골어를 알지 못하며 몽골 문자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 마을에는 양피(羊皮)에 기록된 몽골 문자와, 몽골 곡도(弯刀)들, 원나라 관리들의 의복 등 조상들이 남긴 많은 물건들이 남아있습니다.
쓰촨에 정착한 뒤, 그들은 <여씨족보(余氏族谱)>를 편찬하고, 한족의 풍습에 따라 서열을 정했으며, 이 긴 세월 속에서 위자완의 후예들은 친족을 찾아 인조귀종(认祖归宗, 본래 부모의 밑으로 입적하다)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국 이후, 위자완 사람들은 신문에 여러 차례 사람을 찾는 광고를 내서 "본래 원나라 재상의 집"이 어떤 시이고, 누가 만든 것인지 아느냐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600년의 수많은 병란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수도 있고, 살아남았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후손들이 살아 있는지, 이 시를 기억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을 찾는 광고가 게재된 후, 위자완에는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왔으며, 편지에 쓰여진 그들의 가족들 사이에만 전해지는 시구를 보면서 위자완은 매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알고보니, 모두가 정말로 살아남았고, 서로를 계속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자완의 인솔하에, 각지에서 온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위자완으로 건너와 칭기즈칸의 초상화 앞에서 술을 마시며 오랫동안 가호해주고 그들을 여러해 만에 다시 모이게해준 준 조상님께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이것은 10대 후손들이 풍파에도 어렵게 살아남아 60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기적으로, 칭기즈칸의 영령이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위자완에서 생활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산을 벗어나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큰 명절이 되면 늘 멀리에서도 달려와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과 함께 뭉쳐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 10구의 시를 한몽 양족(汉蒙两族)의 문자로 베껴서 칭기즈칸의 초상하ㅗ 한쪽에 모셨고, 이것을 기적의 증거로 삼아, 당시의 "일가분작만천가(一家分作万千家)"가 오늘날 다시 한 집으로 돌아왔다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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