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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김용(金庸) 소설이 많이 리메이크된 이유는?

hanyuku 2020. 12. 3.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쉬웨이(许巍, 중국의 락 가수)의 노래 한 구절에 "검을 들고 세상 저 너머를 걷는 꿈을 꾸었었지, 세계의 번화를 보며, 어린 시절의 이렇게 허황된 마음은 마치 오늘날 당신이 온 천하에 우뚝 선 사람이 된 것처럼(曾梦想仗剑走天涯,看一看世界的繁华,年少的心总有些轻狂,如今你四海为家)"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보여지는 사실로서, 우리는 모두 어렸을때 자신이 무공이 뛰어난 대협을 꿈꾸며,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무협 소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랑받았는데, 김용(金庸), 고룡(古龙), 온서안(温瑞安) 및 양우생(梁羽生)의 붓 끝에서 하나 하나가 영웅호걸로 만들어졌고,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에서 우리 모두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며, 우리들이 꿈꿔왔던 그것을 현실속 캐릭터처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전에는 TV가 없었던 때에는 사람들이 소설을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현재 TV가 보급된 이후, 우리들은 TV를 틀 때마다 옛날의 작품들을 각색한 드라마가 채널마다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 김용 선생의 작품이 많은데,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신조협려(神雕侠侣)>는 여러차례 리메이크를 거쳤습니다. 각 버전마다 배우를 제외하고는 스토리는 대부분 동일했는데, 김용 선생의 수많은 작품들은 모두 매번 방영량이 놀라울 정도로 리메이크되었고, 금방 못쓰게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고룡, 온서안, 양우생의 작품들은 모두 비교적 오래된 버전이 많은데, 리메이크되지 않은 작품들도 많습니다.

 

 

사실, 여러번 리메이크를 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조영웅전>은 무려 5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는데, 배우들이 바뀐 것 외에는 내용이 거의 똑같아서 대중의 심미적 피로가 어느정도 조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김용의 리메이크는 이렇게 많이 이루어졌고, 구룡, 온서안, 양우생의 작품은 아무도 리메이크하지 않았을까요? 네 분의 작가들 모두 무협의 대가였지만, 작품 자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것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별개로 논해야 합니다.

 

 

왜 김용의 리메이크 영상작품들은 금방 못쓰게 되었을까요?

 

 

김용의 소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사람들이 좋아하며, 열람도가 높은 것도 그의 작품들의 상업적 가치를 끌어올린 요인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구룡과 온서안, 양우생의 작품들에 비해 리메이크하는데 어려움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한번 리메이크 되었어도 또 다시 리메이크되기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상한 현상은 바로, 그의 작품들 10여 편은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가와 감독, 배우의 수준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용의 작품은 많은 감독들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큰 가소성(可塑性)이 있는데, 그의 작품을 쓰는 스타일로 볼때, 김용 선생의 많은 작품들에서 사실위주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게다가 그 본인의 작풍 스타일도 알렉상드르 뒤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그것이 말하는 것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조금만 손 보면 되는 한 편의 극본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작품의 내용 면에서는 대중과 잘 맞아떨어지고, 기세가 드높으며, 스토리도 풍부합니다. 그중엔 황용과 곽정(黄蓉和郭靖)의 사랑, 소용녀와 양과(小龙女和杨过)의 사랑, 장무기와 조민(张无忌和赵敏)의 사랑 등, 수많은 사랑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즐겨보는 영웅과 미인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기세가 드높은 것을 말하자면, 사실 김용 선생은 사실적 묘사에 능숙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소설 속에서 무술을 하는 장면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협들의 엄청난 무예를 더욱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서 수많은 무림대회에서 각 파벌들이 무예를 겨루는 장면 등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줄거리는 감독들에겐 촬영하기 쉽고, 기세가 웅장한 액션 장면들은 무협소설과도 가까워 더욱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내는데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김용의 붓 끝에서 탄생한 인물들은 매우 옹골진데요, 김용은 각 캐릭터를 그려내는데 탁월하여,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모두 조금씩 부족한 면이 있지만, 이러한 부족한 점들이 오히려 대중의 심미적 요구에는 더욱 부합하였던 것입니다.

 

 

곽정은 어리숙하지만, 꾸준하고 성실하였고, 결국 그의 근면성실함이 그를 대협(大侠)으로 성장하도록 도왔습니다. 양과는 본래 날렵한 소년이었지만, 그가 한 팔이 잘려나간 뒤, 양과는 변하여 한 세대의 대협으로 성장했습니다. 한 팔이 잘려나간 부족함이 오히려 그의 성취를 이루어내도록 만들었습니다. 장무기의 부모는 모순적인 사람들로서, 이러한 모순된 가정의 조합으로 인해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숱한 시련과 좌절을 겪었지만, 이러한 점은 그의 걸림돌이었을 뿐만아니라 그의 성공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김용이 써낸 캐릭터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더 대중에게 부합하였고 사랑 받는다는 점을 많은 영화감독들이 포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번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리메이크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성공을 안겨주었습니다.

 

 

고룡 소설은 정교하고 뛰어나서, 리메이크 될만한 것이 극히 드물다.

 

 

먼저, 고룡은 사의(写意)의 고수여서, 책 속에서 많은 의경(意境,예술적 경지, 무드)과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리메이크를 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꺼려지는 부분인데요, 왜냐하면 책속에서 천 자에 가깝게 자세히 묘사된 장면을 브라운관에서는 겨우 몇 초만에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글을 잘 못써서 그런걸까요? 물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고룡의 소설은 예술적 분위기를 중시하여, 장면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성의 비경이라던가, 큰 강과 하천, 큰 사막의 고연(孤烟)과 밤의 정취까지 모두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드라마 속에서 쉽게 연출해내기 어렵거나, 만들어지긴 하더라도 원작의 효과에서 다소 벗어나기도 하고, 스토리를 표현하는데 있어선 지극히 사소한 부분이면서도 어려움이 많아서 구현해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랫동안 많은 감독들이 그들의 소설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고, 설사 영화로 리메이크 된 작품들도 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나서는 모두 고전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东邪西毒)>이 바로 그것인데, 중국에서 왕가위 감독같은 감독이 과연 얼마나 더 있을까요.

 

 

 

 

 

두번째로는, 액션 장면에서 고룡은 모든 손짓과 형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는데, 원래 손짓 한번에 목숨을 잃게 되는 순간에도 그는 장황하게 풀어놓아 묘사하였고, 이러한 것은 모두 리메이크하여 찍어내는데 불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길고 장황한 묘사를 영상으로 찍어내면 불과 간단한 몇 초에 지나지 않을 뿐만아니라, 그 과정을 더욱 잘 나타낼 방법은 거의 없을때도 많습니다.

 

 

게다가 캐릭터의 선택에 있어서도, 고룡이 쓴 인물은 여자는 모두 경국지색의 용모이고, 남자는 모두 영웅에 준수한 외모의 인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인물은 현실에서는 캐스팅하기도 어려운 법이죠.

 

 

 

 

 

마지막으로, 고룡 소설을 본 사람들은 그 안에 인물의 대화가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영화나 드라마로 리메이크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액션이 아니라 인물들과의 대화로 관객들에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왜 고룡, 온서안, 양우생 작품들은 리메이크가 안 된 걸까?

 

 

양우생의 작품이 리메이크가 드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많은 작품들이 그 자체로 지명도가 높지 않고, 좀처럼 본 사람이 적으며, 읽어본 사람들도 김용이나 고룡의 소설들처럼 정교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리메이크로 나올 수 있는 것들은 다 나왔기 때문에, 나올만한 것들은 모두 이미 고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칠검하(七剑下)>, <협골단심(侠骨丹心)>과 같은 작품들은 고전이 되었지만, 리메이크를 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작품속 감정선에는 새로운 점이나 매력적인 점이 별로 없고, 김용의 영웅들과 미인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감정적으로 항상 협객과 협녀들 뿐이며,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집안 배경의 수준이 비슷한 것만 추구하고 정통을 수호하기 때문에, 소설로서는 보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리메이크하면, 보는 사람이 따분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고, 세속을 깨고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망도 결여되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온서안은 수작이 드물어서, 단편이든 장편소설이든 가독성은 높지만, 김용과 고룡의 작품에 비해 필력이 부족하여 결말이 잘 안 되는 소설이 많습니다. 게다가 영상으로 리메이크하면 극본의 구조상 어려움이 있어서 판타지적인 색채가 많지만 이를 리메이크하려면 원작 소설을 많이 각색해야 합니다.

 

 

 

 

 

<역수한(逆水寒)>처럼 리메이크에 성공한 것도 있긴 하지만, <역수한>은 지금까지 아무도 다시 리메이크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영화계의 흐름을 보면, 시대가 변화하면서 무협소설에 대한 감독과 배우의 이해와 태도도 변하고 있습니다. 감독들이 김용의 소설을 여러 번 리메이크하였지만, 왜 현재는 점점 더 못쓰게 되어가는 걸까요? 그 이유에는 역시 돈이 최고라는 시대 관념에 따라 감독과 배우들이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해 기성세대 연기자들처럼 성의와 열정을 쏟을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과학기술이 진보하면서, 이에 따라 영화 업계도 기술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가서 찍지 않아도 컴퓨터 특수 효과를 이용하여 만들어낼 수도 있고, 어떤 것들은 심지어 현실 경관보다 더 아름다워져서 영화 업계에는 수많은 상업적 가치와 동시에 많은 좋지 않은 현상들도 가져왔으며, 배우와 감독의 타성이 조장되기도 하였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9875773218401284847%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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