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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李咏)이 세상을 떠난지 2주년...그는 왜 미국에 묻혔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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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李咏)이 세상을 떠난지 2주년...그는 왜 미국에 묻혔을까?

hanyuku 2020. 11. 24.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생명으로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생명을 주는 것이다.(给时光以生命,而不是给生命以时光。)"

 

 

하원(哈文)의 웨이보의 이 말은 누가 보아도 세상을 떠난 남편 리용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리용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떠난 사람에게는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이 다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시간이 영원히 멈춰서서 유수와 같은 세월이 흘러도 기억만 남을 뿐입니다.

 

 

작년 리용 사망 1주기에서 하원은 낮 12시에 "살아있는 동안 만날 수 없어도, 항상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只愿岁岁平安,即使生生不见)"라는 글을 발표하여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영실소애(永失所爱)"라는 웨이보의 이 한 구절은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 뿐만 아니라 하원의 가장 진실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01

 

 

1987년, 리용은 중국 언론대학(中国传媒大学)에 합격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 리용은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 혼자 다녔습니다.

 

 

특이한 독립적인 행동에 더불어 리용의 용모까지 사랑을 받아서, 항상 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받았었는데요, 이들은 식사 후 이 괴짜에다 말수도 별로 없고, 어디를 가든 아트 바인더(画夹子)를 메고 다니는 남학생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습니다.

그렇지만, 리용은 그중 한 여자에게만 관심을 가졌는데, 그녀가 바로 하원이었습니다.

 

 

 

 

 

하원은 리용의 같은 반 친구로, 계단식 교실에서 수업할 때 하원과 리용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하원을 보고 나서 그때부터 그녀를 생각하며 잊지 못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파티를 기회로 리용은 하원에게 고백하였습니다.

 

 

"하원, 네가 바라는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키가 180cm은 되어야지!"

 

리용은 이 키 때문에 잠시 충격을 받았으나, 단념하지 않고 계속 물어보았습니다.

 

"가장 최저선은 어느정도인데?"

 

하원은 머뭇거리며 진지하게 생각하고는 말했습니다.

 

"175는 되어야지."

 

리용은 여기에 단번에 자신이 생겼고, 하원에게 말하였습니다.

 

"지난주 건강검진에서 나는 175.5cm 나왔어!"

 

 

 

 

하원은 리용에 대해 호감을 가졌지만, 그 둘은 한 명은 닭띠이고, 한 명은 원숭이띠였는데, 민간에서는 닭띠와 원숭이띠는 궁합이 안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원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결혼해서 평생을 같이하지 못할까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리용은 포기하지 않고, 설날에 하원을 공연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 고백했습니다.

 

"하원, 나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니까 오래된 굴레에 가두지 말고 나를 바라봐줘. 우리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대학에 가서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하셨는데, 내가 보기엔 당신이 제일 좋았어. 그래서 당신이 내 여자친구가 되어줬으면 해. 내 이런 조건때문에 당신이 손해를 보는걸까? 그렇다면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려줘, 그러면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게..."

 

이번에는 하원이 리용의 정성에 감동하여 리용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렇게 개학한 지 두 달 만에 두 사람은 연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원의 아버지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설에 리용은 먼저 하원의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하원의 아버지는 큰 효자였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면서, 리용은 하원에게 매우 잘해주었고, 종종 그녀에게 작은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하원은 회족(回族)이지만, 학교 회족 식당에서 국수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리용은 하원의 생일에 맞춰 바깥에 있는 회교식 레스토랑으로 장수면(长寿面, 생일이나 혼례에 축하의 의미로 먹는 국수)을 사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대학시절에는 나무 판자로 작은 책장을 만들어서 침대 맡에 놓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겨울에 추울 때는 이불 속에 웅크리고 앉아 책을 보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이지요.

리용은 하원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아주 정교하게 책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결혼 후, 리용 역시 하원을 매우 사랑하여 모든 일을 그녀의 말에 따랐습니다. 평소에도 번 돈은 모두 하원에게 주어서 갖고있게 하였고, 은행 카드 비밀번호도 모두 하원에게 알려주었는데, 이 중에 몰래 빼낸 것도 모두 하원을 위한 서프라이즈로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있으면 말을 하지 않아도 즐겁고, 말을 하면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그 두 사람은 현실이 아니라 동화같다고 말하였습니다.

 

 

02

 

 

결혼 후 두 사람은 처음에는 아이를 갖지 않은채 10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원은 두 사람만의 세상이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하여 리용과 아이를 갖는 것을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리용은 비록 책임을 지게 되겠지만, 이에 선뜻 동의했습니다. 얼마 후, 귀여운 딸이 이 가정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원이 회족이었기 때문에, 리용은 딸에게도 어머니의 그림자가 남아있기를 바랐고, 그래서 딸에게 '파투메이·리(法图麦·李)'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당시 파출소에 가서 호적에 이름을 올릴 때, 편경에게 한참 동안 원성을 들었는데, 편경은 그에게 "시스템에 아래 점만 들어가는데 그래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리용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이보시오, 칼 마르크스의 그 점이 아래에 있습니까 중간에 있습니까? 아래에 있으면 두 사람을 의미해서 한 사람은 칼이고, 한 사람은 마르크스입니다. 가운데에 점이있어야 한 사람이지요. 없으면 줘보시오 내가 그리게!"

 

 

 

 

 

리용은 평소에는 성격이 좋았지만, 딸과 부인의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딸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기 위해, 리용은 CCTV(央视) 사회자의 일을 그만두고 미디어 대학으로 돌아와 평범한 교사가 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딸이 "아빠, 긴 머리 모양이 이상해."라고 무심코 말했는데, 리용은 두 말하지 않고 몇 십년 동안 고수하던 긴 머리를 잘랐습니다.

리용은 딸이 TV에 빠져들지 않도록 정위엔지에(郑渊洁, 중국의 동화작가이자 동화의 왕으로 알려져있다.)에게 부탁하여 교육법을 배웠고, 그의 방법대로 하여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딸이 집에 있다면, 그는 TV도 휴대전화도 하지 않고, 소파에서 책을 보며 공부했는데, 딸이 자신을 보고 책을 보며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승어언(行胜于言)" 교육법은 파투메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녀와 부모와의 관계는 친구처럼 평등했지만, 동시에 풍부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원이 임신한지 3개월 부터, 리용은 파투메이의 모든 것을 기록하였고, 딸의 성장을 일기로 기록하였습니다.

 

 

원래 딸이 시집갈 때 이 글을 선물로 주고 싶어했지만, 리용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03

 

 

2018년 10월 29일, 오전 9시 31분, 하원은 "미국에서 17개월간의 항암치료 끝에 2018년 10월 25일 오전 5시 20분, 내 사랑을 잃었다..."는 웨이보를 올렸습니다.

 

 

 

 

원래 그 날은 탕옌 뤄진(唐嫣罗晋)이 결혼하는 날이었지만, 이 슬픈 소식이 두 사람의 기쁜 소식을 희석시켰습니다.

이전에는 리용이 미국에서 자주 사진이 찍혀서 대중들은 그가 이민을 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화가 난 일부 네티즌들은 하원의 웨이보로 달려가 "리용이 이민을 갔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이런 질문에 하원은 두 글자로 "木有(没有아니다를 표현하는 중국식 인터넷 용어)"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네티즌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는 커녕, 해명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원은 이 질문에 침묵을 지켰습니다.

게다가 이때 리용의 친구들 역시도 한 명도 나서서 그를 위해 이민 간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지 않았는데요, 따지고 보면, 그 시기가 바로 리용의 병세가 가장 위독할 때였습니다. 그는 그대 죽음의 신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여론의 압박에도 짓눌려 있었던 것이죠.

리용의 곁에는 부인 하원과 딸 파투메이 단 두명 뿐이었습니다.

 

 

 

 

하원은 매일 숫자를 갱신하였는데, 훗날 대중들은 이것이 리용의 병을 치료하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그에 대해 말하자면, 매일 아침에 일어나 아침 인사를 건네는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했습니다.

리용은 "만약 생명이 다 하는 날이 오면, 조용한 곳으로 가서 조용히 있겠다. 사과도, 이별도, 불평도 없이, 오직 나만이 홀로 감사하면서 있겠다... 모든 TV앞의 시청자 여러분들,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리용은 유언비어를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생애 마지막 날에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충분했기 때문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리용이 훌륭한 사회자였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평범한 남편이자 평범한 아버지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리용이 떠난 뒤, 파투메이는 과한 노출 패션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리용은 파투메이가 무슨 옷을 입던지 개의치 않고, 그저 그녀가 건강하고 즐겁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파투메이도 아버지에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였는데, 컬럼비아 대학에 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필 서적을 출판까지 했습니다.

 

 

1년 후, 하원은 리용이 왜 미국에 안장되었는지 설명했는데, 이는 파투메이가 미국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딸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일종의 방법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만약 시신을 수습해 올 경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리용이 이렇게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꺼려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바로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동화속의 가정처럼 서로 믿고 의지한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서로가 서로의 필요한 것을 아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죠.

 

 

리용의 일생은 조금 짧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랑과 남들이 구하지 못하는 조화로운 가정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모두가 동경하는 것입니다. 비록 리용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리움과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사랑은 생사(生死)를 가르고, 생사는 영원할 수 있습니다. 리용의 생에도 그럴만 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9240953261940312278%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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