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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ese Culture

쓰촨과 충칭은 원래 하나였다?

hanyuku 2020. 11. 18.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지리적인 재조합과 분리는 정치 관계의 부속물이었습니다. 중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성제(省制)의 변화를 말하자면, 어떤 것은 사라지고 축소되고 있을 뿐, 확대된 적은 없습니다. 한지(汉地)의 면적 만큼 인구 1위의 성인 쓰촨(四川)성이 빈약해진 것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관습과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충칭시(重庆市)를 중심으로 한 둥촨(东川) 지역을 잃고 난 뒤 쓰촨성 사람들이 이른바 충칭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지금의 충칭 사람들과 쓰촨 사람들은 하나일까요?

 

 

 

 

충칭은 현재 중국에서 보기 드문 직할시의 하나로, 경제 발전 방면에서 청두(成都)를 훨씬 능가하며, 북경, 상해에 버금가는 국제 대도시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이러한 부(财富)의 우월감 때문에 수많은 90년대, 00년대 청년들이 과거의 쓰촨과 충칭이 하나였다는 역사를 등한시하고 스스로 충칭 사람이라며 큰소리 치고 쓰촨과 충칭을 갈라놓으려고 했습니다.

 

 

충칭은 "위(渝)"라는 약칭 외에도, 옛 사람들이 "바(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주나라 때 고대 파국(巴国, 중국 발음으로는 바궈)이 현재의 충칭 성을 중심으로 지배범위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주 무왕(周武王, 주나라 무왕)이 주왕(纣王, 상나라 마지막 임금)을 토벌할때, 파국은 군사를 보내 참전시켰으나, 나중에 전국시대에 낙후되어 확장된 진나라와 초나라에 병합되었습니다.

 

 

 

 

 

 

한나라때 이곳에 파군(巴郡)이 설치되었지만, 군성은 지금의 충칭에 있는데, 이때 강주(江州)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동한(东汉) 말기엔 세상이 어지러웠는데요, 촉나라 땅과 파나라 땅이 역사상 처음으로 결합하였고, 유비는 청두(成都)에 들어와 두 곳을 합쳐서 익주(益州) 관할로 설정했습니다. 수나라 때, 쓰촨과 충칭의 인구가 과도하게 팽창하여, 양주(梁州)와 익주(益州)로 분리하여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송나라 때는 계속 이렇게 분리되어 있었고 쓰촨에게는 힘든 시기였는데, 왜나하면 송나라 시기 전체에서 모반을 일으킨 횟수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촨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중원은 이미 "천하가 혼란하면 촉은 평화롭고, 천하가 평화로우면 촉이 혼란하다.(天下已乱蜀未乱,天下已平蜀未平。)"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쓰촨에 대한 역대 통치자들의 걱정과, 훗날 남송(南宋)의 송광종(宋光宗)이 충칭에서 왕이 되고, 그 후에 황제로 등극하여, 그가 생각하기에 이중 경사(双重喜庆)라는 생각에 지금의 충칭(重庆)시라는 이름이 붙게 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쓰촨 지역의 역사적 기원

 

 

 

 

 

쓰촨의 줄임말에서 "천(川)"을 제외하면, "촉(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것은 진나라 이전의 역사로,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难)>에서 촉도의 난(蜀道之难)이라 하여, 청렴한 관료가 되기 어렵다는 묘사를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진나라 이전에는 촉나라 경내에 정말 길이 없었는데, 그 뒤에 진나라가 금우계(金牛计)를 사용하여 촉나라에 이르는 험요(险要)한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쓰촨은 예로부터 험요한 땅이었으며,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는 자는 모두 쓰촨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초나라 패왕인 항우가 천하를 분할하였는데, 유방은 쓰촨의 한중지방을 나누었습니다. 이후에도 이 지역을 뺏고 뺏기는 난세를 겪으며 쓰촨을 거쳐간 패왕이 즐비했습니다.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시작하여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멸망하기까지, 만 년의 시간 동안, 쓰촨 지역은 실로 너무 방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리적 위치도 매우 좋았습니다. 중간에 수천 리가 되는 쓰촨 분지와 평야, 동쪽에는 상서(湘西)를 비롯한 무릉산맥과 장강, 북쪽에는 산시의 한류를 차단하는 진령, 서쪽에는 말할것도 없이 5천 미터의 높은 산, 남쪽에는 구이저우(贵州) 운남으로 끝없이 펼쳐진 우림(雨林)이 있어서 적국의 패왕이 쓰촨 땅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겁을 먹고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분할 후 쓰촨과 충칭

 

 

 

 

 

쓰촨과 충칭은 송나라 때에도 분할 통치를 하다가 원나라가 세워졌을 때 합병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몽골인들이 전략적인 우회를 시작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쓰촨의 산전(山战)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몽골의 칸 몽고(大汗蒙哥)는 충칭에서 속임수에 걸려들어 죽었고, 후대에 원나라가 수립되면서 쓰촨과 충칭 지역의 인구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원나라는 충칭과 쓰촨을 합쳐 익주(益州)로 통합하여 고대의 파촉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이 상태는 명나라에서도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쓰촨과 충칭은 청나라 말기에 한 지역이었는데, 쓰촨은 한중(汉中)과 난촨 준이(南川遵义)시를 잃은 듯 합니다. 하지만, 충칭이 버티고 있어서 쓰촨은 서남쪽 1위 자리를 완벽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근대 이후, 청나라 중국은 실력이 급속히 떨어졌습니다. 아편 전쟁, 중불 전쟁, 청일 전쟁, 8개 연합군의 중국 침공, 항일 전쟁은 중국을 숨막히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쟁 시기에는 상군(湘军)의 증국번(曾国藩) 등의 사람들이 함께 굴기하여 전쟁 신화를 낳았지만, 후에 청일전쟁에서 상군이 조선 전쟁에서 패하고, 천군신화(川军的神话)가 뒤따르며 13년 동안 항일전쟁에서 쓰촨, 충칭 등의 지역에서 200여만 명의 출병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쓰촨 군벌의 유상증(刘湘曾)이 쓰촨 사람들의 기질에 대해 한 말이 있는데요, "집안 싸움할 때는 서로 싸우다가, 일본인이 오자 만장일치로 단결한다."고 하였습니다.

 

 

항일전쟁 시기에 이르러 충칭의 위치가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상해와 남경이 함락된 후, 전체 국가 중심이 서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인데요, 당시 충칭은 북쪽으로 가릉강, 남쪽으로는 황금 항로은 장강 등을 가지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서쪽으로는 끝없이 넓은 청두 평야가 퇴로로 이용되었고, 동쪽으로는 설봉산맥과 무릉산맥을 중심으로 상서북(湘西北)지역과 어서북(鄂西北)지역을 가로막고 있었지요. 이곳은 하늘이 내려주신 요충지였습니다. 중일전쟁으로 인해 충칭은 우연히 전국 공업지심(工业之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50년대 이후 청두와 충칭의 다툼에 화근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개혁개방이후, 연해로 일하러 나간 사람들은 쓰촨과 충칭 일대가 가장 많았습니다. 기술 뿐 아니라 관리 노하우까지 익힌 노동자들이 돌아와 청두 평야와 충칭 산성 사이에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90년대에는 충칭이 청두보다 훨씬 발전했습니다. 하나의 성이 두 개의 성급 경제 중심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점도 고려가 되어, 1997년 이전에 충칭과 완저우(万州), 여우양(酉阳), 첸장(黔江) 등이 현시로 분리되어 나갔고, 충칭은 단독으로 중앙직할시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한 충칭은 중국 10위권에 드는 도시가 되었고, 청두는 충칭을 멀리 떨쳐버리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들을 시행하였습니다. 이후 청두에서도 이 문제들을 깨닫고, 다른 현시의 역량들이 청두로 모이게끔 경제발전권을 전개하는 전략의 중심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사회적으로 새롭게 경제가 발전하고, 한복(汉服)문화가 발달하면서, 인터넷 지식산업이 청두에 배치되었고, 청두의 경제발전도 충칭을 따라잡게 되었습니다.

 

 

 

 

 

 

원나라가 충칭, 쓰촨을 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1997년에 이르러야 쓰촨과 충칭이 분리되어 통치되었습니다. 한때 가족처럼 지내던 쓰촨과 충칭이지만, 00년대 이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충칭의 문화를 자랑하며 충칭과 쓰촨의 시각을 갈라놓았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쓰촨과 충칭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9997350939221997140%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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