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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17대까지 대대로 부자인 이 가문은 어디?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에서 재벌 2세라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사람들은 5억 위안으로 63억 위안을 벌어들인 왕쓰총(王思聪)이나, 7차례나 중국 최고 여성 부자로 선정된 양후이옌(杨惠妍), 26세에 천억 기업을 다스리게 된 셰치룬(谢其润), 1년 만에 회사를 8천만 위안의 흑자로 돌려세운 옌하오(严昊)일 것입니다. 이러한 재벌 2세들은 아버지의 후광에 가려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렸습니다.
재벌 3세까지 말하자면, 중국에서는 마카오의 도박왕 허홍션(何鸿燊)의 손자들이나, 리쟈청(李嘉诚)과 함께 유명한 재벌 정위통(郑裕彤)의 손자 정즈강(郑志刚) 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재벌 3세들 역시 자기 능력으로 물려받은 가족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부(富)'는 3대에 불과하다'는 옛 말이 있을만큼, 많은 집안의 가산이 3대를 넘어가면 거의 소진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17대째 부가 전해지고 있는 집안이 있는데, 이 가문은 바로 "베이(贝)"씨 가문이라고 합니다.
아마 사람들에겐 베이 씨 가문이 낯설겠지만, 중국인들은 "베이위밍(贝聿铭)"이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2019년 5월 16일, "현대 건축의 마지막 대가"로 불리는 베이위밍 선생이 향년 10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한 순간 수많은 중국인들의 애환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베이위밍은 1017년에 태어났고, 상하이 세인트 존스대학 부속 중학교에 다녔으며, 린위당(林语堂), 쑹즈원(宋子文)과 동문입니다. 졸업 후 미국 펜실베니아대 건축학과에 진학한 그는 MIT와 하버드대로 옮겨 건축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에도 건축 분야에서 계속 일하며 자신의 건축학 지식으로 미국 건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1960년, 베이위밍은 자신의 건축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그후 베이위밍은 미국의 건축학회에서 금상을 수상한데 이어, 프랑스 건축학회 금상, 일본제상 상(日本帝赏奖), 프리커츠상 등 굵직한 상을 다수 수상하여 "현대 건축의 마지막 대가"로 불리게 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의 대표 작품들은 워싱턴 국립예술관 동관을 비롯해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미호미술관(美秀美术馆), 케네디 도서관, 샹산호텔, 쑤저우 박물관, 홍콩 중국은행 빌딩 등이 있습니다.
쑤저우에서 뉴욕으로 이어지는 그의 일생은 쑤저우의 베이씨 가문의 전승 뿐 아니라, 근대 중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이씨 가문의 15대 후손인 그는 건축적 재능으로 베이씨 가문의 '부자의 길'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이씨 가문의 발단은 명나라 중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비에씨 가문의 시조인 베이란당(贝兰堂)의 본적은 저장(浙江)에서 쑤저우(苏州)로 옮겨갔습니다. 처음에는 의원에서 약품을 파는 일을 했습니다. 베이란당은 근면하고 성실하여 조금도 소홀히하지 않았고, 자기 사업을 잘 경영했습니다. 청나라 건륭제 때에 이르렀을때, 베이씨 가문이 운영하던 중성약업(中成药业)은 쑤저우 4대 부자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베이씨 후손들은 다른 부잣집 도련님들과는 달리 세대에 걸쳐 정교한 장사 안목과 영리한 사업적 마인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의약 산업을 자본으로 삼아 다양한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베이씨의 상업제국을 더욱 확대시켜나갔습니다.
근대 시기에는 베이씨 가문의 13대 손인 베이룬셩(贝润生), 베이리타이(贝理泰) 두 명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베이룬셩은 베이위밍의 작은 할아버지인데요, 그는 당시 중국 상하이탄(上海滩)의 4대 안료(颜料)대왕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80만 은화를 들여 쑤저우의 유명 정원인 사자림(狮子林)을 매입했고, 이를 보수하여 가족 재산으로 사당을 세웠습니다.
베이룬셩은 딸이 결혼할 때 '극동 제일의 저택'이라는 뤼팡즈(绿房子)를 혼수로 줬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유명 건축가 우다커(邬达克)가 설계한 이 집은 300제곱미터 짜리 부엌과 12개의 다른 색상의 화장실, 심지어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된 전자동 엘리베이터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100년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는 건축물이라고도 합니다.
부자들은 집을 사는 것을 좋아했고, 베이룬셩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1920년대 들어 땅을 사는데 많은 돈을 투자했고, 이후 부동산 업계 1위로서 상하이, 쑤저우 등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까지 베이룬셩이 상하이 시내에 갖고 있던 집은 1000채 가까이 되었고, 총 면적은 16만 제곱미터가 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베이위밍이 어린 시절에 매년 베이룬셩의 사자림에서 잠시 머물렀었고, 사자림은 베이위밍의 건축미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인 베이리타이의 경우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베이룬셩을 "안료대왕"이라고 불렀다면, 베이리타이는 "금융대왕"으로 불렸는데, 그는 바로 베이위밍의 조부였습니다. 베이리타이는 1866년에 태어났는데, 베이룬셩보다 4살 많은 그는 중국 최초의 금융인이자 상하이 상업저축은행의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는 중국여행사 설립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1915년, 베이리타이는 상해에서 상업저축은행을 설립하였는데, 은화 1위안으로 계좌를 개설하여 사용할 수 있는 첫 번째 은행으로, 보통 시민들이 편하게 금융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상하이에 중국 최초의 신식 여행사인 중국 여행사를 세우는 데도 일조했습니다.
"금융 집안"으로 불리는 베이리타이 가족은 아들 5명과 손자 4명이 모두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것은 3남인 베이주따이(贝祖诒)였고, 그는 바로 베이위밍의 아버지였습니다.
베이주따이는 1892년에 태어났는데, 쑤저우 둥우대학(苏州东吴大学)을 졸업한 뒤 중국은행 베이징 본점에 근무하다가 홍콩으로 파견되어 중국은행 홍콩지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후, 베이주따이는 또한 중국은행 사장과 중앙은행 총재 등을 지냈는데, 그는 "금융의 거두"라고 불릴 만큼 탁월한 경제 두뇌를 가졌습니다. 1973년 온 가족이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국적은 미국 국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베이위밍은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베이띵중(贝定中), 베이졘중(贝建中), 베이리중(贝礼中)입니다. 그들은 모두 도시계획, 건축설계업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아버지의 업적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이씨 가문의 17대에 와서 베이위밍의 손녀 올리비아 페이(Olivia Pei)도 가문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녀는 가족 전통을 따라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는데, 건축학보다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올리비아 페이는 국제관계학, 역사학, 국제무역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베이위밍의 자손들은 현재 뉴욕에 살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애정도 여전히 깊으며, 중국 문화도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17대에 걸친 부잣집 답게 베이씨 가문은 자신의 발전 과정 뿐만 아니라 중국의 발전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베이씨 가문의 부는 17대에 거쳐 내려오고 있는데요, 한가지 중요한 원인은 그의 후손들이 모두 하버드대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대는 세계 최고 대학으로, 두뇌와 지능,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하버드 대학을 다니는 것도 지식 영역의 확장, 각종 능력의 향상을 촉진하는 바탕이 됩니다.
베이씨 가문의 자손들은 어떤 업종에 종사하든, 어디에 정착하든 대부분 하버드대를 다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왜 사람들이 베이씨 후손들은 모두 하버드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식 교육을 잘 받은 것도 베이씨 가문의 전승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참고기사>
这个家族已富到17代!上海近千栋房都是他们的,后代都去哈佛读书
文:陶陶 说到中国的富二代,很多人都会想到用5亿赚取63亿的王思聪;7次成为中国最年轻女首富的杨惠妍;26岁掌管千亿帝国的谢其润;一年就使公司扭亏为盈还赚了8000万的严昊。这些富二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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